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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연히 우면산

어쩌면 작고 어쩌면 큰 다짐

by 젊은 느티나무

건강검진을 했다.

비타민 D가 부족하다고 했다. 그리고 근육도 너무 없었다.


전부터 운동을 해야겠다고는 생각했다. 현대인들은 열 명 중 아홉은 꾸준히 하는 운동이 있다. 나도 그런 인간이 되고 싶었다. 남들이 다 그래서 그런 건 아니고, 다들 그렇게 하는 데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전부터 워낙 체력이 약했는데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늘 너무나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체력이 안 좋고 컨디션이 나쁘면 당장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건강한 생각을 못 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건강하지 못하다. 내 몸이 힘든데 어떻게 남을 챙기겠냐.


낙엽 인간이라 그런가, 아니면 성향 탓인가. 원래도 건강염려증이 있는 편이라 건강하게 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 강하다. 그런데 정착할 운동을 찾지 못했다. 웬만한 운동은 거의 다 해봤는데, 마음 붙일 운동이 없었다. 현재의 결론은 '나는 건강을 목적으로 운동을 꾸준히 할 수 있는 인간은 아니다'라는 것이다.


웬만한 운동은 싫어하지만, 그렇다고 움직이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집에서 누워 있는 걸 안 좋아한다. 걷는 것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신체 활동은 ‘산책’이다. 단지 '운동'이라는 개념이 싫은 것뿐이다. 하나의 운동을 5개월 이상 꾸준히 해본 적이 거의 없기에 이번에도 오래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등산’이다.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산책보다는 조금 더 운동 같고, 그렇다고 본격적인 산악인은 아닌 초보 수준 정도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 이제 등산할 거야"라고 공표만 하고 시간이 흘러가던 중, 아침에 일이 있어서 과천엘 갔다. 일이 정오에 끝났는데, 기껏 여기까지 나온 김에 그대로 집에 가기는 아쉬웠다. 운동하기 좋은 차림새는 아니었지만, 대뜸 ‘우면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어려운 산은 아닌 것 같았다.

둘레길은 아마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오른 길은 메인 등산로가 아닌, 가장 가까이에 있던 어느 좁고 가파른 산길이었다. 낙엽 인간인 나에게는 너무 가파르고 숲길이 었다. 게다가 ‘이 길이 정말 등산로가 맞긴 한 걸까?’ 싶은 험한 길이기도 했다. ‘아, 나 등산을 취미로 삼지는 못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반, ‘그래도 사람들이 산에 매번 오르는 데엔 이유가 있네’라는 감탄 반. 풀숲의 향기는 좋았고, 생각보다 더웠고, 꽤나 가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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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획했던 경로의 거의 80%쯤을 마친 시점에서, 이대로 끝내긴 아쉬워 정자에 누웠다. 바람소리를 듣는데 기분이 좋았다. 그냥 이렇게, 별일 없이 일하다가 하루쯤 등산하면서 사는 삶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등산하게 될 줄 모르고 가져온 책도 읽었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다. ‘당분간 등산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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