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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fferent Doors Jun 11. 2021

기다립니다

밤의 작업실

연후 어머니와의 대화

서원이 친구 연후가 오늘 오랜만에 작업실에 왔는데, 뭘 할지 몰라 고민하는 것 같았어요. 여유가 좀 더 있었으면 지켜보면서 말도 걸었을 텐데 오늘은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래서인지 연후 어머니가 자꾸 들락날락하시면서 도와주시는 것 같더라구요. 한참을 지켜보시다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으셨길래 다가가서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렸어요. 아이들의 작업실은 노 어덜트 존으로 운영되고 있다구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바로 알겠다고 하시면서 나가시더라구요. 


그러다가 나중에 제가 재료바를 정리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들어오셔서, 연후가 뭘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제가 작업실의 가장 중요한 약속이 ‘내가 할 작업은 스스로 정해요'이고, 여기서는 누가 알려주는 것을 하기보다는 스스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고 뭘 할지 도저히 모르겠으면 어떻게 하냐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연후가 원래 수줍음도 많고, 다른 친구들이 자기가 하는 걸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비교도 많이 하는 편이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여기서는 사실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곳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렸어요. 하기 싫은걸 억지로 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안 하더라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게 떠오를 때까지 마음 놓고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라는 점을 설명해드렸어요. 다행히 어머니도 이해를 하시고, “제가 너무 성급했나 봐요.”라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자칫 오해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성의 있게 설명을 들어주시고 이해해주셔서 감사했어요. 


연후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연후와 잠깐 따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어머니와 같이 만든 걸 들고 있길래 '뭐 만든 거야? 화분이야?'하고 물어보았는데, '몰라요. 엄마가 만들라고 해서 만들었어요.'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뭘 할지 생각이 안 났냐고 물어봤더니,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여기에는 그런 친구들이 많다고. 그럴 때는 보통 다른 친구들이 뭐 하고 있는지 구경을 하거나, 아니면 책을 찾아보기도 한다고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그러고 나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기서는 연후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고. 하고 싶은 게 생각날 때까지 천천히 자기 시간을 보내면 된다고 이야기해주었어요.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니니, 더 잘하거나 더 빨리 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그러고 나서 하고 싶은 게 생겼는데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으면, 같이 고민할 테니 언제든 와서 이야기하라고도 했어요. 마지막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오늘 선생님이 많이 신경 써주지 않아서 서운했냐고 했더니 웃으면서 그런 건 아니었다고 하더라구요. 마음이 놓였어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난 뒤에, 연후가 바느질을 할 수 있냐고 찾더라구요. 그래서 가은 샘이 바느질 도구를 빌려줬더니 작업실이 끝나는 시간 직전까지 열심히 하다가 갔어요. 결국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나는 하고 가는구나 싶어서 기특했어요.











아이가 자기만의 작업을 펼치기를 바랐습니다만.

‘아이가 스스로 자기만의 문을 찾고 열어갈 때까지 기다리고 응원한다.’ 작업실의 철학은 참 근사합니다. ‘그래, 여유를 가지고 아이의 속도를 기다리자.’ 마음먹은 것도 잠시, ‘어? 다른 애들은 다 만들기 시작했는데 우리 아이는 아무것도 안 만드네?’ 싶어지면 금세 또 마음이 조급해집니다.


불안 앞에서 기다리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불안은 안도감이나 확신이 상실된 심리 상태입니다. 우리는 불안이라는 감정을 없애기 위해 본능적으로 확신을 구합니다. 그래서 ‘우리 아이만 뒤쳐지는 게 아닐까?’하는 불안은 종종 ‘뭐라도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자!’하는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조급한 마음에 아이에게 이것저것 결과물을 제시하다 보면, 어찌어찌 결과물은 나왔는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정작 아이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기다리기 위해, 우리는 기록합니다. 

작업실에는 5년 동안 이어지고 있는 두 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하나는 아이가 하루의 작업을 정리해 스스로 기록하는 ‘작업 노트’, 다른 하나는 샘이 아이들을 관찰해서 기록하는 ‘관찰일지’. 두 기록을 통해 우리는 아이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변화를 발견합니다. 연후의 관찰일지를 읽어 내려가며 우리는 이 사건이, 작업의 주제가 화분에서 바느질로 바뀐 것이 아니라, 연후가 자기만의 작업을 시작하는 첫 발을 내디딘 사건이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관찰일지가 아니었다면 발견하지 못했을 이 작고 여린 성장을 바라보며, 우리는 조금씩 불안을 걷어냅니다. 그리고 내일의 연후 이야기를 기대하며, 오늘도 기록합니다.




하루에 질문 하나, 매일력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아이들의 작업실을 운영하며 기록한 5년 동안의 관찰일지. 사소하고도 소중한 우리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여러분과 나누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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