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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fferent Doors Jun 04. 2021

다양한 자리를 제공합니다

밤의 작업실


   나 혼자 자리

- 은우는 처음에는 매번 승우를 찾으러 작업실에 왔다가, 점점 혼자 오고 있어요. 구석의 동그란 자리에 혼자 앉아서 조용히 작업했어요. 

- 1시 이후 지윤, 민서, 유경, 채윤 9살 여자아이들이 함께 왔어요. 눈이 소복하게 와서인지 여느 때보다 살짝 들뜨고 신나 있었어요. 지윤이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작업을 안 하고 카페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어 정원샘이 주의를 주었는데요. 작업실에 돌아와서도 모여 앉아 시끌벅적하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지윤이는 오자마자 ‘스마일 인형'을 만들기 위해 도구 정거장을 예약하고 자리에 앉아 작업하고 있었어요. 다른 아이들이 떠들자 다른 자리로 옮겨 혼자 작업에 집중했어요. 이전 관찰일지에 언급한 것처럼 지윤이는 작업할 때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한 아이임을 다시금 느낍니다.

- 지환이와 경훈이는 큰 테이블에서 작업하다가, 중간에 창가 쪽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각자 혼자서 작업에 집중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 도은이는 중앙 작업 책상에서 배를 만들고 난 후에는 창가 자리에 혼자 앉아있었어요. 나무막대를 만지작거리고 있길래 무얼 하냐고 물어봤더니 할 게 없다고 했어요. 그냥 유경이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심심해했어요. 제가 공작 도감 책을 보여주며 흥미로운 게 있는지 탐색해보는 걸 제안했어요. 마침 집에 가야 할 시간이라 다음에 오면 책을 보고 만든다고 했어요.

- 다은샘이 지난 금요일에 관찰일지에 기록해주셨던 소정이가 오늘 왔어요. 들어오면서 지난주에 와서 가입신청서 썼다고 말하더라고요. 뭔가 만들려고 생각하고 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오자마자 유리창 앞자리를 잡고 집중해서 작업했습니다. 정문으로 다니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했어요. 정문으로 다니는데 작업실 있는지 몰랐냐고 했더니 몰랐대요. 학교 바로 옆인데도 친구들이 작업실이 있는지 잘 모르는 걸까? 했더니 옆에 있던 현민이가 '작업실'이라고 쓰여 있으니까 어른들이 작업하는 덴 줄 아는 것 같다고 얘기했어요. 그럴 수도 있겠다고 대답했습니다. 홍보를 좀 더 해야 하나 봐요.


둘이서 자리

- 은이는 민아와 창가 자리에 같이 앉아 작업했어요.

- 은이와 민아는 함께 작업하는 것을 좋아해요. 오늘도 둘이 함께 똑같은 통을 만들었어요.

- 은이와 함께 색지로 책을 만들었어요. (내용은 비밀이래요) 민아는 작업하기 위해 각종 색칠 도구가 든 상자를 갖고 왔어요.

- 은이와 비밀일기, 비밀쿠폰을 만들었어요. 지우개를 가위로 파서 도장을 만들었어요. 작업을 마치고 다음 주 화요일 작업실에 와 비밀일기의 내용을 채우자고 약속하고 갔어요.

- 은이와 민아는 비밀일기, 비밀쿠폰, 비밀 책 그리고 이것들을 보관할 가방까지 함께 만들었어요. 창가 자리가 다른 친구들의 관심을 덜 받으며 둘만의 작업을 하기에 최적의 공간 같네요.


함께하는 자리

- 은미, 채은이가 일렬로 앉아 작업하자 다른 작업 책상을 쓰는 동수, 승윤이가 그 주위로 자주 모이네요.

- 채은이는 유정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데 둘이 같이 앉을자리가 없다고 해서 의자를 하나 옮겨주었어요.

- 윤아는 채은이와 소은이 옆에서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이미 승윤이가 쓰고 있는 자리였어요. 그래서 그 자리는 승윤이 자리니 다른 자리에 가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윤아가 속상했는지 그냥 집으로 갔어요.


창가 자리

- 창가 자리를 가장 먼저 온 친구들이 차지했어요.

- 뒤뜰 쪽 나무판이 사라지니 뒤뜰이 보이는 창가 자리 인기가 더 많아졌어요.

- 빈이는 인도 쪽 창가에 앉는 것을 좋아해요. 카페에서 간식을 먹을 때도 창가 쪽에 앉아서 먹었어요. 예전에 한 친구는 거기서 낮잠을 자더라구요. 보기 좋았어요. 

- 태효가 창가 자리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형들이 태효에게 인사를 하며 지나갔어요. 

- 아이들은 창가 자리를 가장 많이 이용했어요. 창가 자리의 단점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구경하는 거래요.

- 은영이는 어제도 창가 자리에 앉았는데, 자꾸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는 게 싫다고 했어요. 그래서 재료 바구니로 가리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는데, 좋은 생각 같았나 봐요. 오늘은 오자마자 창가 자리에 앉아서 창문을 가리고 작업을 하고 있네요.

- 희수와 함께 온 친구들 인도 쪽 창가에 앉았고, 초원이와 예은이는 항상 앉는 뒤뜰 창가 쪽, 훈이와 현이 형제는 인도 쪽에서도 첫 번째 책상! 자주 오는 친구들은 항상 같은 자리에 앉는 것 같아요.


편안한 자리

- 훈이 현이 형제는 동그란 테이블을 이용했고, 빈이는 뒤뜰 창가 자리에 앉았어요~ 아이들이 쉬고 싶은 공간은 뒷마당으로 가기 전에 있는 소파예요! 다들 그곳에서 편안함을 느끼며 좋아하더라구요. 빈이도 저번에 다치고 나서 ‘쉬어야겠어요.’ 하면서 찾아간 자리가 그 소파였어요. 저도 가장 좋아하는 자리예요!


샘 가까운 자리

- 소은이는 중간에 샘 책상 옆 작업 노트 쓰는 책상에서 잠깐 작업을 했어요. 샘들과 가까운 곳에서 작업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아이가 무슨 취향이 있나요?

하얀 벽에 나뭇결을 살린 가구들이 간결하게 배치된 아이들의 작업실. 간혹 아이들의 작업실에 오는 분 중에 ‘왜 아이들 공간인데 색깔이 없나요?’ 하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 질문을 받을 때면, 예전 작업실에 처음 방문했던 한 아이의 표정을 전하고 싶어 집니다. 한낮의 햇살이 가득한 작업실 책상을 쓰다듬으며 ‘아, 여기 참 세련됐네요.’라고 말하던 그 표정을요.   


취향이 뭐 별건가요? 

우리의 일상은 수많은 선택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옷을 입을지, 점심엔 무엇을 먹을지, 오늘 저녁은 어떻게 보낼지. 선택을 하고 나의 오늘은 조금 더 기뻐졌다면 다음에 또 그 선택을 할 테고, 그 선택이 아쉬웠다면 다음엔 다른 선택을 할 겁니다. 그렇게 선택의 경험이 차곡차곡 쌓이면, 나만의 취향이 싹틉니다.


선택의 기회를 더 자주 주세요.

혼자 집중하고 싶어서, 둘이 속닥속닥하려고, 친구들과 함께, 편안해서 또는 샘 곁에서 작업하는 게 좋아서. 저마다의 이유로 자기만의 자리를 찾아가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면, 대충 ‘아이들은 이런 걸 좋아하겠지.’ 넘겨짚은 시간들이 미안해집니다. 이제 아이들에게 선택권을 넘겨줄까요? 일상 속 자기만의  기쁨을 찾아갈 수 있도록, 소중한 선택의 기회를 아이들에게 더 자주 주세요. 자리 선택만큼이나 사소한 선택의 경험들이 쌓여 아이만의 근사한 취향이 만들어질 거예요. 




하루에 질문 하나, 매일력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아이들의 작업실을 운영하며 기록한 5년 동안의 관찰일지. 사소하고도 소중한 우리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여러분과 나누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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