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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fferent Doors Jun 25. 2021

재료를 준비합니다

밤의 작업실

오와아아아아아…!

재료바 스테디셀러, 나무젓가락.

• 승우는 오자마자 나무젓가락이 들어왔냐고 물으며 입장했어요.

• 나무젓가락은 정말 부동의 인기 재료네요. 나무젓가락이 다시 들어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려오던 아이들의 방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 대량으로 나무젓가락을 쓰는 아이들의 작업물은 주로 무기인데요. 종이나 빨대 등의 재료보다 강도가 높고 단단해서 좋아하는 것 같아요. 무기 만드는 아이들에게 작업에 관해 물어보면, "전투"라는 단어를 많이 써요. 그리고 서로 누가 무기를 잘 만들었네 하면서 비교하고 참고하며 작업을 이어가더라고요. 잘 휘어지지 않고 단단한 재료를 사용해서 무기를 만드는 것이 일종의 집단놀이 형태로 보여요.

• 오늘을 기점으로 나무젓가락은 동이 났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재료를 다시 채우는 날에 채워 넣으려고 합니다.

• 태근이는 들어오자마자 “오늘은 설마 나무젓가락이 있겠지?"하고 재료바로 직행했어요. 재료 제공 규칙을 얘기해주니 “한 번 채워질 때 정확히 몇 개를 채워요?"라고 물어봤어요. 400개씩 채운다고 답하니 “앞으로 1,000개씩은 채워야 할 것 같은데요?!"라고 했어요. 나무젓가락이 없어서 아쉽다는 얘기를 반복하며 재료바를 계속 서성이다가 결국엔 "윤태근의 겨울방학 생활계획표"를 만들었어요. 퇴장할 때도 나무젓가락 얘기를 하며 갔어요.

• 태근이는 지난번 방문했을 때, 나무젓가락이 없어서 매우 실망했어요. 다행히 오늘은 나무젓가락이 재료바에 추가된 날이었어요. 지난번처럼 태근이는 입장하자마자 나무젓가락 코너로 가더니 풍성한 양을 보고 매우 기뻐했어요. 지난번엔 나무젓가락이 없어 빨대로 총을 만들었는데 너무 약했다며 이번에 다시 튼튼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했어요.

• 오늘은 나무젓가락이 없어 태균이, 태근이, 온담이가 빨대, 옷걸이, 두꺼운 골판지 등 대체 재료를 찾아 무기를 만들었어요. 옷걸이로 화살을 만들고는, "나무젓가락 아닌 거로(!) 화살을 만들었어요!”라며 자랑했어요.

• 재료가 소진되는 순서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나무젓가락 -> 빨대 -> 골판지 순으로 대체재를 찾아서 이동하는 모습이 보여요.

• 평소에 채워 넣으면 거의 당일에 소진되는 나무젓가락이, 오늘은 거의 그대로 남았어요. 연령대가 낮았던 것도 있고, 평소에 무기 만들기를 즐기던 아이들이 다른 재료에 눈을 돌렸어요. 재연이는 나무젓가락 대신 우유 팩+옷걸이를 활용해서 총을 만들었고, 온담이와 태훈이는 아예 골판지를 잔뜩 집어 와서 뽑기 기계를 만들었어요. 워낙에 인원수 자체가 적었던지라, 하루만 보고 나무젓가락의 인기가 떨어졌다고 볼 수는 없겠지만 아이들이 사용하는 재료가 다양해진 것은 고무적인 일 같아요.

• 오늘 오랜만에 한혁이가 왔는데, 오자마자 나무젓가락이 있는지 물어봤어요. 그래서 아주 조금 남았다고 했더니, 언제 또 들어오냐고 물어봤어요. 당분간은 오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는데 그랬더니"재료가 다시 다 차면 올게요." 하면서 나가려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언제 또 재료가 다 찰지 모르는데, 그럼 영영 안 올 거야?" 했더니 약간 당황하면서 "오긴 올게요"하고 나갔어요. 한혁이는 나무젓가락 때문에 작업실에 오나 봐요.


두근두근, 새 재료 들어오는 날.

• 토요일을 맞이해 새로운 재료들을 대방출했어요! 한혁이 어머니가 기부해주신 재료 중에서 양이 적은, 장식 재료들을 칸막이 상자에 정리해서 내놓았고, 다윤샘이 손질해주신 시트지도 채웠어요. 평소에 자주 오던 아이들(지은이, 지후)도 눈을 반짝이며 오랫동안 재료를 구경했어요. 확실히 새로운 재료가 들어온 날에는 특유의 활기가 있네요.

• 일부 재료에는 라벨링을 했어요. 인기 있는 재료만 쓰는 것 같아 다른 재료에 관심을 가지거나, 재료 이름을 알 수 있도록 라벨링을 했는데 생각보다 반응이 있네요. 키트 재료는 딱히 이름을 붙이기 뭐해서 ‘??? 열어보세요'라고 이름을 붙였는데, 아이들이 자주 열어보고 있어요.

• 오늘은 정기 재료 추가일이었어요. 1시경 방문한 아이들이 새로 추가된 재료를 먼저 사용해 작업하고 있다가, 이후에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어떤 재료가 추가되었는지 신나게 설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어요.

• 오늘 새로 오픈된 재료는 자석 테이프였는데요, 아이들이 새로운 재료를 가지고 새로운 작품을 만들 기회가 되어서 좋았습니다. 아이들이 새로운 재료를 보고 새로운 영감을 받는 모습은 참 좋은 것 같습니다.

• 또 다른 특별 재료인 충전재도 인기였어요. 승연이는 충전재를 납작하게 눌러 떡을 빚고 색종이로 고명을 올려 떡국을 만들었어요.

• 예찬, 지후, 현수를 비롯한 12살 남자아이들 대부분은 항상 무기를 만드는데요. 오늘 새로 준비한 옷걸이를 무기 업그레이드에 적극적으로 사용했어요. 옷걸이의 고리 부분을 무기 끝에 달아 갈고리처럼 활용하는 친구도 있었고요. 삼각대 부분을 펼쳐 나무젓가락에 감아 내구성이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든 아이도 있었답니다.

• 샘들끼리 ‘수요일밖에 안됐는데 재료가 너무 많이 비었다. 아이들이 많지 않았는데 무슨 일일까.' 같은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그걸 들은 지언이가 ‘처음 보는 재료가 들어오면 빨리 없어지는 것 같아요.'라고 얘기했어요. 저희도 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들이 보기에도 마찬가지 인가 봐요!

• 이번에 처음 사본 재료인 돌멩이를 지윤샘이 깨끗하게 씻어서 준비해주었어요. 과연 아이들이 어떻게 쓰는지, 관심 있게 지켜봐야겠어요.

• 지윤이가 돌멩이를 보자마자, 깨뜨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어요. 자와 송곳, 망치 등을 이용했는데 역시나 단단한 돌을 깨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자칫 잘못하다가는 다칠 수 있을 것 같아 주의를 주었는데, 그래도 깨고 싶었나 봐요. 다윤샘이 지윤이에게 여기에는 돌멩이를 깰만한 도구가 없는 것 같다고, 어떻게 하면 돌멩이를 깰 수 있을지 물어보았어요. 지윤이는 화산에다 녹이면 된다는 재치 있는 대답을 했어요.

• 새롭게 재료로 들어온 조약돌을 아이들이 다양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요. 오늘 하온이는 어항을 만들면서 조약돌을 장식으로 사용했고, 성진이는 텐트에 얹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고, 지아는 돌에 표정을 그려 넣었어요. 눈알도 붙이고요. 결이와 진이는 백 자갈을 사인펜으로 색칠하고 있어요. 어떤 용도로 쓸 거냐고 물어보니, 딱히 용도는 없대요. 가만 보니 그냥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예쁘네요. 아이들은 딱히 어떤 용도로 만든다는 생각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그 자체가 즐거운 경험인데, 이런 질문을 던지는 건 ‘어른들의 질문’이라는 걸 알게 되네요.


무궁무진한 재료의 세계.

• 민우는 오늘 밖에서 가져온 공 벌레를 위한 작업을 했어요. 언젠가 의릉에 현장학습을 가자고 했었는데, 그때 아이들이 직접 재료를 구해와서 작업을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직접 자연 재료를 가져와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참 신선하네요.

• 날씨가 좋아지니까 자연재료를 활용하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자연재료를 쓰는 아이들을 보면 새로운 재료를 들이는 것만큼 기분이 좋아요.

• 아이들은 다 쓴 테이프 심, 제품 박스 등 기능을 다 했다고 생각되는 사물들을 적극 재료로 활용하더라고요. 재료가 소진되면 바로 배출하기보다 활용 가능성을 한번 더 고민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 채준이가 작업실에 무거운 재료는 없냐고 물었어요. 현재 재료바에는 가벼운 재료밖에 없다는 걸 저도 처음 깨달았습니다. 임시방편으로 골판지나 두꺼운 도화지 여러 장을 덧대어 붙이는 방법을 제안했어요. 그러자 채준이가 그 방법은 귀찮기도 하고 그림 그릴 수 있는 재료를 쓰는 것 같다고 꺼렸어요. 잠시 고민을 하더니 야외에서 돌멩이를 채집해와도 괜찮냐고 물었어요. 안전에만 유의한다면 현재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방안인듯하여 안전 약속을 하고 허락했어요.











오늘 하루, 아이는 무엇을 스스로 선택했을까요?

아침부터 한 겨울에 엘사 옷을 입겠다는 아이와 한참 실랑이를 벌입니다. 콩 좀 먹여보려고 쌀밥 아래 살짝 숨겼는데, 아이는 귀신처럼 찾아 골라냅니다. 마트에서 저녁 메뉴를 고민하는 사이, 아이는 갖고 싶다 노래를 부르던 장난감을 발견하고 카트에 슬쩍 밀어 넣고는 딴청을 피웁니다. 늘 아이는 무언가를 원하지만, 그 소망(?)은 대체로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하얀 바구니 하나 들고 재료바 앞에 섭니다.

나무젓가락, 털실, 찍찍이 등등등. 작업실에 들어선 아이들은 예외 없이 하얀 재료 바구니 하나를 손에 들고 수십 가지 재료가 가득한 재료바 앞에 섭니다. 누군가는 만지작만지작 고민하며, 누군가는 재료의 이름을 보고, 누군가는 필요한 개수를 세어가며, 누군가는 서슴없이 쇼핑(?)을 시작합니다. 오롯한 선택권을 부여받은 이 순간, 아이들의 눈빛은 진지하게 빛납니다. 우리가 사랑해 마지않는, 작업실의 소중한 순간입니다.


선택의 경험으로 쌓아 올릴 단단한 힘을 믿습니다.

아이들은 원하는 재료를 마음껏 재료 바구니에 담습니다. 인기 대폭발 나무젓가락에 집중하다가, 자기만의 해석을 덧붙인 새로운 재료로 근사한 작업을 해내고, 더 새로운 재료를 찾아 작업실 밖을 누비기도 합니다. 선택의 경험이 쌓여갈수록 아이들은 점점 더 자신감 있게 적극적인 방식으로 선택합니다. 이렇게 쌓인 나만의 기준은 일상 속 수많은 선택의 순간 앞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줄 거예요. 우리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을 오롯한 자신의 선택으로 채워나가길 바랍니다.

        



하루에 질문 하나, 매일력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아이들의 작업실을 운영하며 기록한 5년 동안의 관찰일지. 사소하고도 소중한 우리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여러분과 나누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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