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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fferent Doors Jul 09. 2021

오늘도 문을 엽니다

밤의 작업실

안녕!


자꾸만 자꾸만 생각이 나요. 

준영이가 인상 깊은 말을 남겼어요. "샘, 저는 작업실에 오고 싶지 않은데 만들기가 자꾸 생각나서 오게 돼요."라며 강력한 한마디를 던지는데 어찌나 귀엽던지요. 작업이 준영이 일상에 자리 잡은 것 같아 기분 좋았어요. 


틈만 나면 가고 싶어요. 

내일모레 방학식을 앞두고 오늘 전 학년이 모두 단축 수업(4교시)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1시부터 아이들이 몰려서 2시경 30명을 돌파했어요. 물론 기존 학원 등의 일정으로 3시경 아이들이 또 훅 빠지긴 했지만, 작업실을 알고 좋아하는 아이들은 학원 사이에라도 시간이 나면 꼭 작업실을 들르는 것 같아요. 윤서는 중간에 바이올린 학원에 가지 않고 작업을 더 하고 싶다며 울기도 했어요. 더 많은 아이들이 작업실을 찾는 게 우리의 목표는 아니지만, 학원으로 스케줄이 빽빽한 와중에도 시간이 나면 작업실에 들르는 문화(?)가 생긴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그럴 때 아이들이 여기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가면 좋을지 또 한 번 생각하게 되네요.


내일도 모레도 열려 있어요. 

1시가 지나자 윤슬, 유빈이가 후다닥 뛰어오더니 숨어야 한다며 사무실로 들어오려고 했어요. 아이들이 흥분한 상태라 일단 이름 먼저 쓰라고 얘기했는데 매우 급하게 이름을 쓰고 작업실 책상 밑으로 들어갔어요. 더 장난이 격해지면 다시 주의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던 차에 어머니들이 들어오셨어요. 오늘은 작업실에 못 있고 바로 집에 가야 한다고 가방을 싸서 데려가려고 하셨는데, 숨어있던 윤슬이가 서럽게 울었어요. 다음 일정이 있는 걸 아이들 모두 알았는데도 작업실에 오고 싶었나 봐요. 내일도 다음날도 올 수 있으니 또 오라고 얘기해주었어요. 


지나가다 들렀어요. 

지연이가 작업실에 들어오더니 한번 쓱 훑고 다시 발걸음을 돌렸어요. 오늘 작업하러 온 거 아니냐고 물었더니, "오늘은 샘들 잘 있나 보러 온 거예요. 잘 있는 거 봤으니 이제 갈게요. 다음에는 작업하러 올게요."라며 쿨하게 인사하고 갔어요. 오며 가며 저희의 안부를 묻고 밝게 인사하고 가는 모습에서 작은 애정이 느껴졌어요.


문 닫은 줄 알았어요. 

1~2시 사이에 태건, 연흠 두 아이가 왔다가 곧 갔어요. 잠시 작업실이 텅 빈 시간이 있었는데, 지후가 작업실 밖 유리창에서 기웃거리고 있었어요. 한참을 서 있었는지 볼이 빨갰는데, 사실 아무도 없어서 오늘 안 하는 줄 알았대요. 유리창 밖 초조했던 표정과 작업실 안 안도하고 즐거워하는 표정의 대비가 재미있었어요.


일곱 개!

지안이가 오늘 들어오자마자 환하게 웃으면서 손가락 일곱 개를 펴 보였어요. 저희가 다 무슨 뜻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해하다 나중에 물어보았는데, 알고 보니 일주일(=7일)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다 왔다는 뜻이었어요. 사실 지난주에도 다 와서, 방학한 뒤로는 매일 온 셈이에요.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매일매일 왔고, 또 그걸 인지하고 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했어요. 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 유대감이 강해지고, 또 결속력이 높아져 더 자주 오게 되는 것 같아요. 계속 꾸준히 온다면 뭔가 개근상(?) 같은 것을 주고 싶어요. 


전학 안 갈래요. 

유리는 오늘 큰 감동을 주었어요. 집이 장암동으로 이사 가서 멀어졌다는 이야기를 하길래, 그럼 전학을 간 거냐고 물어봤더니 작업실이 마음에 들어서 안 가겠다고 했대요. 그래서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엄마와 함께 등교한다고 했는데, 물론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마음이 뭉클했어요. 유리를 위해서라도 오래오래 작업실이 이어질 수 있도록 잘 가꾸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업실 왜 해요? 

준식이가 힘들게 왜 작업실을 운영하냐고 물어봤어요. 그래서 작업실에 오는 게 즐겁냐고 물어봤더니, 그렇다고 하길래 그래서 운영하는 거라고 이야기해주었어요.











그러게요, 우리는 왜 작업실을 할까요?

솔직히 투자가 없을 땐 작업실 운영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때때로 작업실 운영을 위해 돈이 되는 다른 일들을 해내야 합니다. 논쟁은 머리가 띵 합니다. 우리가 하는 것이 교육인지 아닌지, 자극인지 아닌지, 혹 간섭은 아닐지, 이야기를 이어가다 보면 어느새 또 하루가 훌쩍 흘러갑니다. 실존은 현실입니다. 이렇게 근사한 작업실 역시 코로나를 피해 갈 수는 없습니다. 


준영이와 지연이와 윤슬이의 얼굴에서 나를 봅니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집에 가는 길, 준식이의 질문이 머릿속을 맴돕니다. 그러게, 우리는, 나는 왜 작업실을 하나. 문득 작업실에 오기 싫은데 자꾸 만들기가 생각난다는 준영이, 샘들 잘 있는지 보러 오는 지연이, 작업실에 못 가 서럽게 우는 윤슬이를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그 시절 나의 장소를 생각합니다. 틈만 나면 가고 싶었던, 엄마가 찾으러 오면 냉큼 숨었던, 사라졌을 때 마음 한 켠이 시큰해졌던, 기억 저 편 나의 장소들. 그 시절 나의 장소와 오늘 아이들의 장소가 이어집니다. 집에 가는 길, 왠지 기분이 묘해집니다. 


내일도 우리는 문을 엽니다. 

우리의 마음과 달리, 작업실 문을 열지 못하는 나날들입니다. 코로나로 문을 닫은 텅 빈 작업실에 앉아, 우리가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요리조리 궁리해봅니다. 팝업으로 소규모 워크숍을 열어볼까? 온라인 작업실을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 관찰일지랑 작업노트 이야기를 살살 풀어볼까? 어떤 방법이 좋을지는 해봐야 알 수 있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계속 계속 새로운 문을 열어갈 겁니다. 언제든 언제든 놀러 오세요, 디프런트 도어즈!




하루에 질문 하나, 매일력








2017년부터 2021년까지.

아이들의 작업실을 운영하며 기록한 5년 동안의 관찰일지. 사소하고도 소중한 우리의 발자취를 하나하나 여러분과 나누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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