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님 접견
초밥집에서였지. 제시어 '똥'이 툭 튀어나온 건. (리얼한 상상이 가능한 문장이군.) 동네이름을 딴 오천초밥집, 수수곰돌씨와의 두 번째 만남 때 뼈해장국을 먹고 난 뒤, 대뜸 초밥 좋아하냐고 물었더랬지. 동네에 맛있는 초밥집이 있다며. 뼈해장국으로부터 한 달 만에 거기에 가게 된 거야. 회전초밥집이 아니라서 좋았어. 회전초밥집에 가면 불편하거든. 뱅뱅 더 돌기 전에 뭐든 골라야 한다는 압박. 대화보다는 어떤 초밥이 나오는지가 더 큰 관심사가 되어버리지. 뭘 먹어야 하나. 먹고 있으면서도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이 되고, 먹어도 먹어도 배부른 느낌을 모르겠고. 먹으면서 얼마인지 대략 암산도 해봐야 하고. 내게 회전초밥집은 그러고 싶지 않은데도 머리가 뱅뱅 회전되는 오토매틱 시스템이랄까.
초밥을 절 반쯤 먹었을 때, 수수곰돌씨는 자기 몫의 참치 뱃살 하나를 내 접시 위에 놓았다. (괜찮은데, 나 참치뱃살 별론데) 먹으니 후확 비렸다. 에라 모르겠다. 뱀 이야기나 해보련다.
수수곰돌씨에게 사사 프로젝트를 설명했고, 그에게 나의 제시어를 부탁했어. 한 글자 단어. 어떤 단어가 나올까, 단어의 발화는 무의식의 발현. 뭐 어쭙잖게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똥이요”
아.. 네... (무의식의 발현, 변비인가) 왜 똥이 떠올랐냐고 물었더니, 얼마 전에 변기의 과학적인 구조에 대해서 읽었던 게 기억났다고 했다.
아... 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나의 제시어는 똥이 된 거야. 내가 본 '기가 막힌 똥'과 '부러워하는 똥'을 소개할게. 몰랐어. 내게는 1일 1똥을 하는 게 당연한데, 그게 당연하지 않은 사람이 많다는 걸. 다행히 너는 유산균의 도움으로 바나나를 내어 놓는다 했지. 여전히 노랗고, 멀끔한 바나나니? 그렇다면 참 다행스러운 일이야.
우리 앞으로 떵떵거리지는 못해도 똥똥거리면서는 살자.
인간 똥 vs 새똥
저렇게 크다 못해 거대한 똥은 어떻게 나오는 거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인체의 신비.
똥이 변기를 휘휘 감고 돌아 꽉 들어차 있었다. 인간 똥구멍 신축성은 한계가 없단 말인가. 화장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훅 훅 불길한 기운이 끼쳐왔다. 누군가가 똥을 누고 간 뒤 잔향이겠지 생각하고 변기 뚜껑을 열었는데, 흐헉.
똥을 싸다 못해 쌓아 놓은 것 같음, 뭐랄까, 촉망받는 설치 미술가의 구조물에 가까웠다. 한치의 무름 없이 단단해 보였다. 어딘가에 신고를 해야 할 것만 같다. (세상에 이런 일이) 차마 물을 내릴 엄두도 나지 않는다. 혹시라도 변기가 막혀버리면 당혹스러운 일들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쌌다고 오해받기 싫음, 내가 아니라 해도 안 믿을 게 뻔함) 차마 물을 내리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
똥을 눈 당사자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혹시라도 변기가 막혀 더욱더 난감한 일이 발생할까 봐 똥만 두고 자리를 뜬 것일까. 아니면 물을 내렸는데도 물의 힘으로는 똥의 힘을 밀고 나가기 역부족이었던 걸까. 차마 자기 집에서도 해결하지 못하고 참았다가 이곳에 똥을 풀어놓은 건 아닐까.
세상에 이렇게 어마무시하게 거대한 똥은 한 번도 누어 본 적도 본 적도 없다. (방금 보았으니 이제 본 적은 있는 셈) 강력한 냄새까지 최강이었다. 거대한 똥은 무섭고 미스터리했다. 그리고 살아있었다. 냄새가 똥의 생명력을 증명했다. 메스꺼워져서 숨을 참고 다음 칸으로 가서 오줌을 눴다.
그러다 문득,
얼마나 오랜 날들, 똥을 누지 못했던 걸까.
얼마나 뱃속에서 묵혀 두었으면 백 년 묵은 구렁이를 내어 놓았을까. (이전 제시어가 뱀인데, 그곳에 써도 손색없다)
도서관 3층 열람실 옆 화장실이다. 3층은 주로 시험 대비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이용한다. 거대한 똥은, 어쩌면 시험에 대한 거대한 압박과 스트레스에 대한 증거가 아닐까.
누군지 모르는 당신을 신이라 부르겠습니다.
변신(便神)님!
이렇게 거대한 똥은 변신님만이 가능하십니다.
저의 똥은 변신 님 앞에 하잘 것 없습니다.
앞으로는 부디, 쾌변 하시길. 비나 옵니다.
변신 님의 똥 접견 이후, 닫힌 변기 뚜껑을 열기 직전에 변신님의 구렁이 한 마리가 똬리를 튼 모습을 본다.
인간의 똥과는 다른 새똥이야기로 전환한다. 걷다 보면 새똥을 자주 본다. 입에 나뭇가지를 물고 있는 새가
똥 싸는 걸 목격한 적도 있다.
새똥을 보면 잭슨 폴락의 그림이 떠오른다. 그 기법 또한 새가 똥 누는 방식에서 착안하지 않았을까.
제주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가 제주에 사는 새는 새똥도 곱다고. 새하얗다며. 새하얀 새똥에 감탄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그 말을 하는 남자가 말하기 전보다 더 좋아졌다.
새가, 유독 똥을 많이 싸놓은 곳을 보면
“새들의 공중 화장실인가 봐요.”라고 표현한 새콤의 말이 떠올라 미소를 머금게 된다.
새똥 색은 계절의 변화를 보여준다. 버찌, 뽕, 열매가 여물면... 여름에 가깝다.
흰 봄에서 검 보랏빛 여름
비가 오면
새똥은 씻겨 내려간다
그런 똥이라면
마음껏 싸도 좋겠다.
새들은 눈치 안 보고 똥을 싼다.
사람 머리에도 똥이 가끔 떨어진다.
새똥이 내게로 떨어질까 봐,
새들의 공중화장실을 피해 걷는다.
바닥에 떨어진 새똥을 보면서 걷다 보면
혼자여도 심심하지 않다.
나보다 위에 있는 생명이 바닥에서도 전달된다.
새똥
팍 튀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