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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Apr 29. 2024

나의 물

영화_shape of water

  너와 나는 자꾸 오줌이 마려웠다. 너는 나보다 더 자주 화장실을 찾아서 나는 주로 너를 따라 화장실로 들어갔지. 걷다가 물소리가 들리면 우린 그쪽으로 갔어. 그런 다음 화장실에 갔지. 


  “물소리를 듣다 보면 오줌이 마려워.” 나는 그렇게 몇 번이나 말했고 너는 웃었어. 

 

   ‘물’하면 떠오르는 영화 한 편이 있어. 쉐이프 오브 워터 shape of water : 사랑의 모양


  인트로가 시작될 때부터 이 영화를 좋아하겠구나. 예감했어. 어둡고 깊은 물속. 길게 자란 물풀이 춤을 추듯 흔들리고 그 사이로 물고기들은 유영해. 좀 더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의자, 테이블이 바닥에 둥 떠 있어.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일상적 공간으로 접어들어. 


  침대도 둥실 떠 있고, 잠이 든 여자도 침대에 붙어 있지 않고 둥둥 떠 있어. 알람 소리가 들리면, 모든 사물은 제자리(놓인 표면)로 돌아가. 내가 돌아간다고 표현했네. 마치 사물들도 꿈속에 빠져 있다가 알람소리 한 방에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느낌이랄까. 


  단조롭기만 하던 여자의 일상에 사건이 하나 발생해.  여 주인공은 온몸이 비늘로 뒤덮인 흡사 물고기와 사람이 뒤섞여 있는 낯선 생명체를 만나게 돼. 자신의 점심인 삶은 달걀 하나를 그 생명체에게 건네. 홱 채가듯 가져가는 생명체. 달걀 하나가 여러 개가 되고, 음악을 함께 들으면서 시간을 보내지. 여자는 손짓으로 ‘음악’을 알려줘. 둘만의 첫 수신호는 음악이 되는데, 그 손짓이 말이야. 물결을 연상시켜. ost도 참 신비로워. 영화의 무드와 잘 어울려. 


  물과 사랑은 어딘가 비슷한 거 같아. 

  문득, "사랑을 하게 되면 고체 상태에서 액체 상태로 변한다"는 엘의 말이 떠올라. 물의 다양한 형태. 호수, 강물, 시내, 바다, 연못 등 그만큼 사랑의 모양도 다양할까. 물은 어디에 담기느냐에 따라 양도 모양도 달라지잖아. 흠. 이런 이야기를 늘어놓으려고 한 건 아닌데 말이야. 비록 시작은 고루하고 물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찌어찌 헤매더라도 잘 찾아갈 것이라는 믿음은 있어. 


  너는 연못을 바라보길 좋아하지. 

  초등학교 뒤에 연못이 있었어. 거기에 무엇이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마냥 기다리는 게 되었던, 아무것도 나오지 않아도 실망스럽다거나 시간이 아깝지 않았던 혼자 있어도 괜찮았던 연못은 나의 유년. 


  각자 유년의 연못을 품고 살면서 타인에게 내보이는 일. 연못을 공유한 타인은 친구가 되고, 자기만의 연못에 친구의 연못을 들여. 연못에도 지각변동이 생기는 거지. 어떤 변화 말이야. 

 

  다시 너를 만나 손바닥을 맞대고 만남의 기쁨을 표현하고 싶어. 이런 소리가 날 것 같아. 철벅철벅. 물은 갇혀 있지 않으면 어디론가 흐르고, 갇혀 있다면 그 속에 생명체를 품어야 썩지 않겠지. 내 안에는 어떤 생명체들이 있니. 


  비가 오면, 엄마는 빗물을 받아 두어. 

  열대어는 빗물을 먹고 제법 컸어. 

  옥수수, 오이도

  생명은 비만 먹어도 크나 봐. 

  

  우리도 이렇게나 넘쳐나는 음식들을 먹지 않아도, 

  자신을 키울 수 있는 몇몇 음식만 알아내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으면서 잘 살 수 있을 것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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