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밤을 주울 수 있을까. 내가 순천에 온 첫 해, 두 번째 해 모두, 밤을 주우러 엄마, 아빠와 함께 뒷산에 올랐는데 말이야. 이번에는 엄마 혼자서 밤을 주워왔어. 뒷산 초입길에 소복하게 떨어져 있어서 고생하지 않고 주웠대. 그렇게 말했지만, 거짓말이라는 걸 알아. 엄마는 아마도 고생고생 하면서 주었을 거야.
밤이 귀에 좋대. 나는 엄마에게 말했고, 엄마와 아빠는 내게 많은 밤을 양보했어. 올해 먹은 밤이 제일 달고 맛있었어. 밤 까먹기를 귀찮아하는 나를 위해 엄마는 숟가락으로 미리 알맹이를 다 긁어모아 그릇에 담아 두었어. 나는 밤을 한 숟가락 퍼서 낼롱낼롱 먹기만 하면 되었지. 밤을 쪼개고 숟가락으로 긁고 부스러기가 떨어질까, 조심조심 먹을 필요가 없었지. 그득그득 퍼서 배부르게 밤을 먹었어. 밥 먹듯이 밤을 먹었어. 내 손으로 밤을 먹고 있는데도 내가 입을 앙 벌리면 엄마가 한 술 한 술 떠먹여 주는 아기가 된 것 같더라.
먹는 밤 이야기를 쓰면서도 자동으로 낮과 밤의 밤이 떠올라. 그게 한 글자 쓰기의 매력인 것 같아. 단어가 다른 단어로 대치되어 고정되지 않는 것. 밤의 시간과 공간은 확실히 낮과는 다르지.
올해 추석은 집이 아닌 절에서 엄마와 아빠와 함께 밤을 보냈어. 선암사 밤의 소리는 물처럼 흘렀는데 잠결, 꿈결, 물결이 뒤섞여 있었어.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부르자마자 사라지는 음률. 사라지면서 동시에 이어지는 눈 내리는 밤 같은 고요.
신성한 분위기는 인간계에서 나를 배제시켰어. 스님들의 새벽예불을 뒤에서 지켜보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웅크린 산짐승에 가까워졌어. 잔뜩 껴입었는데도 추웠어. 털이 수북한 짐승처럼 털들이 길고 두텁게 자라서 나를 온전히 덮어버렸으면 좋겠다 생각했어. 나를 감추고 싶었어. 그런 채로 예불이 끝날 때까지 있고 싶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