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지락이 머금고 있는 모래와 펄은 불순물이 아니라 생명의 숨이 남겨 놓은 고향의 흔적이다.
하지만 칼국수와 어울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어둡고 춥고 따가운 소금물에 담겨 스스로 속을 게워 내는 고통스럽고 외로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는 누군가에게 진정한 위로를 건네기 전, 먼저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편견, 욕심, 날카로운 말과 감정을 덜어내는 과정과 같다.
진정한 정성은 화려하게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상처가 될 만한 것을 먼저 비워내어, 순수한 존재 본연의 모습을 지켜내려고 진하게 우러나는 배려의 육수이기 때문이다.
바지락은 적당한 온도, 적당한 기다림이 있어야 열린다. 그렇게 자신이 품고 있던 감칠맛을 조심스레 세상에 풀어놓아야 관계의 국물이 깊어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팥은 바지락처럼 비우기만 해서는 안된다. 한참을 우려낸 쓴 첫 물을 비워내고, 뜨거운 물에 푹 삶아지고 으깨어져야 한다. 즉, ‘자신을 버리는 과정’을 거쳐야 칼국수를 만날 수 있다.
이는 타인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기꺼이 자신의 단단했던 경계를 허물고 상대방의 처지가 되어보는 완전한 공감의 향기와 같다.
하지만 팥은 덜 삶아지면 떫고 단단하다. 역시, 기다려야 하고, 기다리는 내내 마음을 저여야 한다. 그렇게 팥은 내면을 다독이는 시간의 힘을 일러준다.
그제야 으깨진 팥은 면발을 진득하게 감싸 안아 하나가 된다. 이는 너의 아픔이 곧 나의 아픔이 되는 동화의 위로다.
‘네가 힘들 때, 나는 너와 따로 있지 않고, 너를 통째로 껴안아 너와 하나가 될게.’라고 고백하는 뜨겁고 걸쭉한 포옹이다.
살아가면서 때로는 ‘바지락 칼국수’처럼 상대방과 함께 속 시원하게 풀어내야 하고, 때로는 ‘팥 칼국수’가 되어 진한 위로를 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바지락 하나하나를 건져 올려 속살을 옮겨 주면서, 뜨겁게 으깨진 진한 팥을 한 숟가락 천천히 음미하면서 그 속에 담긴 이야기에 가슴을 가져다 대어 본다.
진정한 관계는 서로에게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먼저 비우고 다듬고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깊어진다. 누군가에게 따뜻함을 건넨다는 것은 그 사람 곁에서 함께 열리고, 서로 녹아들어 하나가 되어주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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