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나는 ‘김장’을 1년 치 반찬을 확보하기 위한 고된 노동이라고만 여겼다.
클릭 몇 번이면 마트에서 포장 김치가 배달되는 효율의 시대에, 굳이 이 비효율적인 수고로움을 자처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테가 하나둘 늘어갈수록 진하게 깨닫는다.
“올 해가 정말 마지막이야.”를 몇 해 동안 선언하시면서도 김장을 멈추지 않는 어머니를 보면서 느낀다.
사람들이 이 고단한 과정을 기꺼이 감내하며 지켜온 것은 단순히 ‘김치’라는 결과물이 아니었음을.
만약 김치가 유일한 목표였다면, 이토록 비효율적인 방식을 진작에 폐기했을 것이다. 유네스코가 인류가 함께 지켜내야 할 문화 유산으로 보지도 않았을 거다.
김장은 음식을 만드는 일을 넘어,
서로의 시간을 섞고 온기를 나누는 제의(祭儀)와도 같다.
살아 있음을, 함께 살아 있음을 칼칼하게, 매콤하게 확인하는 항아리 속의 축제이다!
이 오래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된 건, 며칠 전 있었던 작은 사건 때문이다.
지난봄, 우리 동 앞 분수대에 벚꽃이 눈처럼 흩날리던 무렵이었다. 앞집에 젊은 부부가 이사를 왔다. 네 살, 한 살배기 어린 자매를 둔 단란한 가족이었다.
얼마 전, 출장으로 아내가 집을 비운 늦은 저녁에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여니 앞집 부부였다. 유모차 안에는 자매가 서로 머리를 맞댄 채 곤히 잠들어 있었고, 부부는 묵직한 김치통 하나를 내게 건넸다.
사실 그전에도 아내와 아이 엄마는 시금치무침이며 깻잎장아찌 같은 반찬을 소소하게 나누곤 했다. 알고 보니 이번 김치는 어린 자매의 외조부모님께서 오랫동안 해오신 ‘김치 나눔 봉사’의 결과물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나눔의 명단에 ‘나’를 올려준 건 다름 아닌 네 살배기 꼬마 언니였다고 한다. 발그레한 볼에 입을 앙다물고 천사처럼 잠들어 있는 아이가, 김장을 하던 중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옆집 아저씨도 갖다 주자.”
아파트라는 거대한 콘크리트 벌집 속에 살면서도, 우리는 서로의 꿀을 나눠 먹지 못하는 ‘고립된 벌’처럼 살아간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무관심이 오히려 안전이라 믿으며, 스스로 쌓은 단절의 벽 안을 은신처처럼 여긴다.
하지만 아이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맛있는 것을 혼자 먹으면 단순한 ‘섭취’에 불과하지만, 나누어 먹으면 그 순간 ‘축제’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네 살 아이는 김장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김장은 배추를 버무리는 게 아니라, ‘우리’를 확인하는 매콤하고 아삭한 축제라는 것을.
우리는 끊임없이 계산한다. ‘이걸 주면 부담스러워할까?’, ‘빈 그릇을 돌려받을 땐 뭘 채워야 할까?’ 하지만 아이에게 그런 계산 따위는 없었다. 맛있는 게 있으니 ‘옆집 아저씨’도 먹어야 한다는, 그 단순하고 순수한 다정함뿐이었다.
김치는 갓 담근 겉절이도 맛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발효되며 깊은 맛을 낸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오늘 건네받은 김치 한 통은 당장의 보상을 바란 게 아니다. 그 행위 자체가 삭막한 이웃과의 관계를 발효시키는 ‘유산균’이 된 것이다.
아이가 내게 건넨 것은 김치가 아니라, 도시 생활을 견디게 해 줄 ‘사람 냄새’라는 귀한 양념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그동안 오가며 만난 그 아이에게 어떤 에너지를 전해 주었을까?
생각해 보면 지난 1년, 나에게도 작은 변화가 있었다. 읽고 쓰는 삶을 살며 내 안의 에너지가 조금은 더 보드랍고 따뜻해진 덕분일까. 남의 아이라 해서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옅은 미소로 바라보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치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아이들이 내릴 때까지 기다려주고 손을 흔들어 준 것, 그게 전부였다.
그런데 아이는 그 사소한 몸짓을 스펀지처럼 흡수했고, 그것을 “옆집 아저씨도 드려야 해”라는 사랑의 언어로 번역해 주었다. 이전과는 달라진, 나의 작은 에너지가 아이의 마음속에서 발효되어, 붉고 따뜻한 김치가 되어 돌아온 것일까.
맞다. 우리에게 김장은, 핑계다.
‘우리’를 확인하는 가장 붉고 따뜻한 핑계! 우리는 김치를 매개로 잊고 있던 이웃의 안부를 묻고, 서로의 체온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건네받은 김치는 너무나 달고 아삭했다. 칼칼하고 깊은 맛이 났다. 며칠 뒤, 아내가 고르고 골라 사 온 감귤 한 박스를 들고 앞집 초인종을 눌렀다. 먼저 아이 엄마가 나왔다. 아내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나는 들고 있던 박스를 현관 안에 들여 놓았다.
그때 아이 엄마가 닫힌 중문 너머 외쳤다. “옆집 아저씨 오셨네.” 그러자 이내 분홍색 내복에 보라색 털장갑을 낀 아이가 뛰어 나왔다. 엄마 옆에 수줍은 듯 딱 붙었다. 배꼽 위에 포슬포슬한 털장갑 낀 두 손을 포개고 배꼽인사를 하는 아이 앞에, 나는 무릎을 굽히고 앉아 눈을 맞췄다.
“아저씨를 생각해 줘서, 목록에 넣어줘서 정말 고마워.”
나의 말에 아이는 볼록 나온 배도, 팡팡한 두 볼도 씰룩거리며 환하게 웃어 보이며, 한 번 더 배꼽인사를 내게 건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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