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자연의 위로
숲은 그 자체로 위로가 된다.
일상의 근심도 숲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스쳐 지나가는 바람결과 함께 흐트러지기 마련이다. 상처받았던 기억도 숲의 고요 속에 머무르고 있노라면 어느덧 아물어 버린다.
봄에는 꽃잎이 흩날리며 기쁨을 주고 여름에는 만발한 수국이 청량함을 준다. 또 가을에는 잘 물든 단풍이 감동을 준다.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수척해진 모습으로 마음의 겸허함을 갖게 한다.
이렇게 계절마다 아낌없이 즐거움과 위로를 주는 숲은 언제든 나를 반겨준다. 그래서 일상이 권태롭게 느껴지거나 걱정거리가 있을 때면 일부러 숲을 찾는다.
내가 자주 찾는 숲은 사람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사는 곳과 그리 떨어진 곳은 아니다. 너무 인적이 드물고 깊은 숲은 위압감을 줄수도 있지만 내가 찾는 숲은 조금만 내려가면 언제든 사람들과 어우러질 수 있어 부담이 없다. 고독과 어울림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숲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누구의 시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진다. 그렇다고 옷을 홀딱 벗거나 괴상한 소리를 지르는 일탈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타인과 주변에 시선을 두지 않고 오직 나에게 시선을 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그렇게 나에 머물며 더 깊은 곳으로 걸어가다 보면 주변의 소리에 민감해진다. 평소에는 느끼지 못하는 바람소리조차도 크게 느껴진다. 바람이 나뭇잎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 내 귓전에 닿는 소리마저도 매번 새롭다. 그렇지만 도시에서 들리는 공사음 소리나 차경적 소리만큼 거슬리지 않다. 오히려 맑아지는 기분이 들어서 좋다.
더 걸어 들어가면 빼곡히 들어선 대나무숲과 함께 오랜 세월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돌조각상들이 나온다. 옛 스님의 사리를 모셔 놓은 부도탑으로 보이는데 그 모습이 멀끔하기보다는 이끼와 풀들에 가려져 세월이 스며든 모습이다. 이곳에 햇빛이 비치기라도 하면 마치 신비로운 동화 속 세계에 발을 디딘 기분이 든다.
너무 잘 닦여놓고 관리된 부도탑이었으면 섬뜩함이 느껴졌을지도 모르지만 친근하게 느껴져 좋다. 부도탑의 주인이었을 어느 스님도 지금의 모습처럼 소박하고 친근한 수행자로 살았을지도 모르겠다.
좀 더 푸릇푸릇한 숲길을 걸으며 마지막으로 발길을 향하는 곳에는 양팔을 벌리고 있는 듯한 듬직한 소나무가 있다.
어머니 건강이 나빠지면서 건강회복을 위해 같이 이 숲길을 걷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이곳을 터닝포인트로 잡곤 했다. 그래서인지 이 나무에 손을 얹히면 어머니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 같다. 한참을 이곳에 손을 대고 마음속으로 중얼거리다 보면 마치 어머니와 한동안 못 나눈 수다를 나눈 것 같아 마음이 따스해지곤 한다.
이렇게 익숙한 코스를 모두 돌고 숲을 빠져나오면 두꺼운 옷을 한 겹 벗어던진 것 마냥 가벼워진다. 걸음도 한 결 경쾌해진다.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나를 귀찮아하는 기색이 없이 맞이해 주는 숲에게 항상 고맙다. 나이가 들면서 철도 드는지 요즘은 숲을 빠져나올 때마다 스스로 묻게 된다.
'숲에게 늘 받기만 하는데, 나는 숲을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