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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수은 Feb 21. 2024

봄비

며칠 전부터 비가 내렸다.

오락가락한 비에 어제는 일기예보만을 믿고 우산을 가지고 나가지 않았다가 걷는도 중 이슬비가 오기시작했다. 다행히 머플러를 가지고 나와 머리에 두르고 걷고 또 걸지만, 빗줄기는 더 굵어졌다.


비가 조금만 와도 맞기 싫어서 약속을 취소하곤 했던 내가 비가 오는데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걷다니!

걷기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상상조차 못 할 일을 하고 있다.


곰곰이 그동안 내가 왜 비를 맞기 싫어했는지 생각해 보았다. 비가 와서 옷이 젖는 느낌이 싫었다. 그리고 무서웠다. 어제처럼 갑자기 비가 올 때 우산도 없이 빗속을 걷는 나의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처량하다고 생각할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내가 우려했던 것과 달리 우산 없이 빗속을 걸어보니 별거 아니었다. 그냥 걷는 것일 뿐이었다.


왜 빗속에서 우산 없이 걸을 때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에 대한 남들의 시선을 먼저 생각했을까?

빗속을 걸으며 비를 맞는 건 나의 일이고 내가 할 일은 어떻게 하면 비를 덜 맞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 그리고 비에 젖은 내 몸이 감기에 걸리지 않게 돌보는 것 같은 나를 챙기는 것들이어야 했을 텐데.


우산 없이 빗속을 걸어도 나이고, 우산을 쓰고 걸어도 나이다. 비를 맞는 나를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지 ‘나’라는 사람은 나일뿐이다. 비가 오는 상황은 바꿀 수 없다. 그저 내가 할 일은 비가 그치기 전까지 계속 걸을 것인지 우산을 가지러 집으로 빨리 갈 것인지 둘 중 나에게 더 좋은 선택을 하는 것뿐일 것이다.



어제는 봄을 반기듯 날이 따뜻했다.

그런데 오늘은 그새 봄이 오는 걸 시샘하듯이 날이 몹시 추웠다. 어제의 봄날의 기운을 생각하고 옷을 얇게 입고 걷다가 다시 롱패딩을 꺼내 입고 빗속을 걸었다.

걷다가 만난 고양이야, 안녕?


봄을 좋아하지만 시샘도 하는 이 봄비가 그치고 나면

겨우내 잠 자고 있던 꽃들이 활짝 피리라.

그때는 그 꽃들을 보며 꽃길을 행복하게 걸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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