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아홉 번째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보고
얼마 전 유럽 풍경이 잘 드러나는 영화를 인스타에 소개할 때, 이 영화가 확 눈에 들어왔다. ‘나중에 봐야지’라고 생각만 하다가 존재조차 잊고 있던 영화였는데, 요즘 유럽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져서 대리 만족할 겸 보게 됐다. 뉴욕에서 잘 살고 있던 주인공이 어느 날, 진짜 자신을 찾고 싶어서 다 던지고 떠났다는 내용 또한 대리만족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행동은 유럽 여행보다도 훨씬 힘든 것이니까.
나도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홀로서기를 시작한 지 4년째다. 비록 나는 퇴사 후 떠난 2주간의 여행에서 먹기만 했지만, 저자는 1년간 먹고 기도하고 사랑까지 했다니 굉장히 공감하는 부분도 많고 동경하는 부분도 많을 것 같았다. 노트북 하나 들고 다른 나라에서 생활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로망이므로.
그런데 주인공의 심리를 따라가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특히, 초반에 뉴욕에서의 일상생활이나 결혼 생활 등 어떤 면에서 힘들고 불행했는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갑자기 이혼을 결심하고, 바로 연애를 하다가 그마저 또 버리고 이탈리아로 향한다. 원작인 에세이에서는 어떻게 그려졌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영화에서는 중2병처럼 그려진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이탈리아 여행에서 나온 한 마디 크게 공감했다.
“Ruin is a gift. Ruin is the road to transformation.”
변화를 위해서는 한 번은 무너뜨려야 한다.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동시에 내가 원하는 다른 삶을 계획하는 것은 힘들 것 같았다. 차라리 한 번 리셋을 해야 한다면, 가능하면 다른 사람의 손이 아니라 내 손으로 무너뜨리는 편이 타격이 적을 것 같았다. 퇴사를 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보통 이럴 것이다. 나도 한창 돈이 많이 들어갈 40대 중반에서 50대 초반에 잘리느니, 차라리 30대 초반에 나오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다. 그런 나의 복잡한 마음을 명료하게 한 마디로 정의해줬다. 몰락은 변화를 위해 필요하다고.
그리고 지금처럼 생활에 제약이 없는 1인 기업가로 살면, 늘어져 쉬고 있을 때 죄책감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렇다고 안 쉬는 것은 아닌데, 어딘가 마음 한편이 불편하다. 어차피 쉴 거면 편하게 쉬는 것이 좋은데, 그게 좀처럼 잘 안 된다. 나와 같은 미국인들의 삶을 비판하며, 한 이탈리아인이 ’달콤한 게으름’이라는 말을 한다. 일부러 무기력해지고 게을러질 필요는 없겠지만, 적어도 쉬는 동안에는 일과 분리해서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렇듯 이탈리아 편에서는 공감 가는 부분도 많고, 가고 싶은 유럽의 풍경도 보여줘서 좋았는데 ‘기도’의 인도와 ‘사랑’의 발리에서는 그렇게 공감 가는 부분까지는 없었다. 둘 다 안 가본 나라이기에 저런 곳은 한 번 가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마치 여행 가이드를 보듯 보게 됐다. 내가 ‘나를 찾아야’ 할 정도로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오히려 절절하게 공감이 되고 인도로 떠나 나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또 그거대로 안 좋은 사인일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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