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사랑이라는 걸 할까.
때로는 혼자 있는 게
이리도 편하고 좋은데.
내 생각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항상 확신을 줄 만큼
준비돼있지 않아도 되는데.
먼 옛날에
나에게 사랑을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는 거절했다.
두려움은 아니었지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싫었다.
나의 존재를 먼저 볼 수 없는
사람이 아니면
나 역시 그의 존재를 볼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훨씬 더 지나
사랑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었다.
아낌없이
다 쏟아부으면
먼 훗날에 남을 후회의 씨앗조차
남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내 안에 더 해줄 것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주고 싶었다.
그것이 즐거움이었다.
그런 중에
나는 안정의 길을 버리고
경로를 이탈한
우주선처럼
방향을 잃은 채로
불안정하게 내 닿았다.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좀 돌아왔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더 나은 방법이었다.
사랑을 먼저 이룰 수도 있었지만
그게 더 나은 선택이었다.
그 선택으로 인해 나는
알 수 없는 미로 속으로
빠져들었다.
넘어지고
깨지고
때로는 방향을 잃고
헤매었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심지어
내가 있는 자리가
안전한지 조차
알 수 없었다.
그럴 때가 있다.
선택해야 했고
그래서 더 멀리 돌아가야 할 때가.
그게 나 혼자 밖에는
보이지 않는 길이고
나밖에는 이해할 수 없는
답이라고 해도
걸어가야 할 때가 있다.
눈물이 땅 위에
떨어지고
뜨거워진 눈동자에
다시 눈물이
흘렀다.
내 앞길도 알 수가 없는데
누가 사랑인지는
더더욱 알 수 없었다.
미로가 끝나갈 즈음에
비로소
잘 되었다는 마음이 들었다.
걷지 않았다면 알 수 없는 길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나의 모습을
스스로 지켜봐야 했다.
그래서 이렇게
아픔과 기쁨을 동시에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살다 보면
사랑이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은
외로울 때가 아니다.
누군가 만나고 싶을 때는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
그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났을 때다.
그 해답이 지금
당신 앞에서 웃음 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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