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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르히아이스 Sep 24. 2019

애인이 생겼죠



한번쯤 찾아오리라

믿었어요.


너무 빠르지 않게

또 너무 직설적이지 않게


그렇게

내가 웃음을 찾아갈 즈음에

내 옆에 올 거라고 믿었어요.


웃음과 빛


그게 내가 

걸어온 길은 아니었어요.


나에게도

아직까지

보이지 않던 부분에

하얗게 먼지가 쌓였지만

그래도

남아있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래요.


웃는 얼굴로

지내오지 못한

다소 거친 시간을

살아왔어요.


나도 그것 때문에

모든 게 망설여지게 돼요.


눈부신 태양을 봐도

어지러운 향기를 뽐내는

이름 모를 꽃 앞에 서도


그대로 받아들이기

겁이 나는 게 

나였지요.


내 옆에 생겼어요.


많은 눈물과

처절한 몸부림

익숙해지기 어려운

몸짓의 언어들 속에

보이는

작은 가능성.


그게 내 옆으로

와서 앉아 있어요.


아직

서두르지 않아요.


그래도 될 만큼

나는 기다려왔어요.


믿고 있었어요.


엇갈리는 우연

손조차 닿지 않는

무관심


그 속에서도

하나씩

하나씩

피어나고 있었다는 것을.


그 먼길을 돌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분노에 가려졌어도


당당하게 

조금 더 의연하게


그렇게 

내가 허리를 펼 수 있을 때 즈음


내 옆으로 와 

함박웃음을 지으며

왜 이렇게 늦었냐고

귀여운 핀잔을 줄 거라는 것을.


하지만 알아요.


이제 내가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아름답고 

향기로운

만남이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언젠가

눈이 마주칠 때는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필요도 없고


나의 진심을

다만 나직이 

고백하면 된다는 것도 


이제 알아요.


내 약한 부분을

알고


내 눈물을 알고


작은 몸짓으로

내 앞에서

나를 

위로하려 노력하는


그런 애인이 생겼어요.


눈이 크고


밝은 와인색을 좋아하고


또박또박

말투가 맘에 드는


내 모든 실수와

미덥지 못한 

잘못들을 기억하지 못하는


그런 애인이 생겼어요.


볼을 한번 

잡아당기고 싶은


눈 내리는 

밤에

미끄러운 길을

같이 걷고픈


돌고 돌아

답 없는 방황을 했던 

여행자를 반겨준


나의 애인이

여기에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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