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이 솟는 고지대 도시 파더보른(Paderborn) 지역 빵
게으름으로 잠식되는 날이 있다. 꾸물거리기를 몇십 분 만에 꼼짝도 하기 싫은 몸을 일으켜 집을 나섰다. 움직이는 것은 귀찮지만 맛없는 빵은 먹기 싫다는 식탐이 귀차니즘을 이겼다.
버스로 몇 정거장 거리에 있는 나만의 숨은 빵집.
독일 전역에는 다양한 브랜드의 마트가 있다. REWE, Lidl, ALDI, tegut, Penny 등. 같은 듯 미묘하게 다른 특징들이 있기에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비 오는 날이면 마트로 산책을 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각각의 마트 내부에는 여지없이 빵집이 있다. 또한 마트 내부뿐만 아니라 마트 입구에 자리한 빵집도 있다. 선택의 폭이 넓다고 할 수 있다. 유사한 빵이라 할지라도 빵집들이 다 다른 특징과 맛을 낸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게으름 피우고 싶은 강한 욕망을 이긴 빵집.
프랑크푸루트 Rödelheimer Landstraße 근처 tegut... 마트 입구에 있는 베이커리카페.
가끔 가지만 무엇을 고르든 맛있다.
어느 시간에 가든 어떤 직원이 있든 그렇게 다들 늘 친절할 수가 없다. 독일 사람들은 대부분 차갑다. 표정이 없거나 무관심하거나. 가끔 친절하거나. 독일에서 오래 사신 분들에 따르면 독일 사람들이 무뚝뚝해도, 친절해도 속을 알 수 없다고들 한다. 그래서 단정 지어 판단하지 말라고 주의를 준다. 상처받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그런 와중에 활짝 웃으며 친절하게 대하는 점원들을 만나면 그래도 속없이 맘이 놓인다. 발음이 좀 서툴렀더래도 눈치 덜 보이며 당장은 긴장이 풀린다.
맘이 편해진 김에 빵 이름을 꼼꼼히 살폈다. 한 참을 살피다 발견한 Paderborner. 곡물 이름은 아닌 것 같은데, 지역인가?
잠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절반만 산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쳤다. 아... 정말...
1kg을 언제 또 다 먹냐고!? 크지도 않은 냉동실이 또 복잡해지겠구나.
예상대로 Paderborn은 독일 Nordrhein-Westfalen 주의 도시 파더보른(Paderborn)에서 유래한 빵이다. 그래서 “Paderborner” = “파더보른식 빵”이라는 뜻이다. 독일에서는 특정 도시 이름을 딴 지역 전통 빵이 많은데, Paderborner도 그중 하나이다.
도시 이름은 파더(Pader) 강과 보른(Born, 샘)에서 유래되었다. 즉 “파더 강의 샘” 정도로 번역하면 될 듯. 실제로 파더보른 시내 중심에는 200개 이상의 샘이 솟아나며, 이 샘들이 모여 독일에서 가장 짧은 강인 파더 강(Pader, 약 4km)을 이룬다고 한다.
Paderborn은 내륙 고지대라 해양성 기후의 온화함이 줄어들고, 상대적으로 서늘하고 습한 기후이다. 밀은 따뜻하고 건조한 여름에 더 잘 자라는 반면, 호밀은 추위·척박한 토양에도 강해서 이런 조건에서 더 안정적으로 수확 가능했을 것이다. 물론 이용할 수 있는 물도 풍부했을 터.
Paderborner Brot는 다른 호밀빵과는 다르게 호밀가루와 밀가루를 섞어 만든 빵이다. 일반적으로 호밀 70%, 밀 30% 정도의 비율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네모난 파운드케이크 같은 직사각형 Kastenform(틀빵)으로 구워진다. 따라서 네모난 형태와 호밀과 밀을 섞어 만들었기 때문에 샌드를 해서 먹기 수월하다. 그래서인지 호밀 100%로 만들어진 빵보다는 다소 덜 묵직하고. 샌드위치를 만들어서 먹기에도 좋은 식감이다. Paderborner Brot에 에멘탈치즈 같은 힘 있는 치즈와 슬라이스 된 햄 또는 살라미 한 장 넣어 샌드 하고, 커피 한잔 내려 함께 먹으면 아침으로 매우 든든하다. 샌드위치 만들 때 약간 꼼꼼한 냄새나는 치즈와 블루베리 잼이나 복숭아 잼을 조금 발라도 맛 좋다.
이렇게 거의 매일 빵을 사는 데도 불구하고 또 새로운 이름의 빵을 만나게 된다. 독일에 약 3500종류의 빵이 있다고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
지역이름을 붙인 빵을 먹고 있자니 Paderborn이 궁금해졌다.
샘이 많은 도시라고 하니 맥주 양조장도 많지는 않을까?라는 호기심이 더해져 구글 지도를 켜고 경로를 탐색해 본다. 약 250km 떨어진 곳이라니. 꽤 멀긴 멀구나. 가고 싶은 장소로 저장해 둔다. 머지않은 어느 날 가봐야겠다.
몇 분 거리에 있는 빵집에서 몇 백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곳 스타일의 빵을 먹을 수 있고. 궁금한 빵의 정보도 찾아볼 수도 있는 문명에 새삼 감사한다. 그나저나 게으름신은 언제 물러가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