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önigstein im Taunus의 동네빵집
Königstein을 동네라고 표현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프랑크푸르트 중심지역에 사는 나한테는 작고 조용한 동네이다. 이곳에 가면 서울역 건너편 동네인 후암동 같은 좁은(차가 겨우 지나가거나 못 지나가는) 아기자기한 골목길이 있다.
간혹 집 앞마당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가족들도 볼 수 있고. 불규칙한 창의 높이에 따른 집들의 다른 얼굴들도 구경하고. 집 앞에 놓인 집주인들의 취향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오브제들도 구경하면서 살살 탐험하는 즐거움이 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적응하느라 어리바리할 때 주변 지인들이 놀러 가라고 알려준 첫 번째 지역이기도 하다. 독일 도착 일주일 정도만에 놀러 간 곳에서 주차위반 딱지도 떼어보고. 주차하다 기둥을 보지 못해 자동차 사이드미러도 깨 먹고. 이래저래 이불 킥할만한 경험을 한 곳이다. 뭐 거의 혹독한 신고식을 했다고나 할까.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는(거금 지출로 보나 사이드미러가 깨지는 그 순간이 떠올라 아찔함에) 그런 동네가 뭐 그리 또 가고 싶은 곳인지. 참...
Königstein은 프랑크푸르트에서 북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타우누스(Taunus) 산맥 남쪽 기슭에 위치하는데, 고도가 약 300~400m이고, 주변이 숲으로 둘러싸여 있어 공기가 맑고 경관이 꽤 수려하다. Königstein에서 내려오는 길에 프랑크푸르트 낮은 지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높은 건물들이 없으니 가능한 전경인 것 같다. 그래서인지 마을 중심에는 낡은 성이 우뚝 자리한다. 아마도 저 먼 옛날 언덕아래 평지의 움직임을 면밀히 감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예상해 본다.
요즘은 프랑크푸르트 근교의 전형적인 주거와 휴양 도시로 알려져 있고, 가까운 곳에 국제학교로 인해 주재원들도 다양하게 살고 있다.
맨 처음 갔던 날. 고즈넉하고 운치 있는 그 동네를 산책하다 들어간 베이커리 카페에서는 갓 구워진 크로와상의 버터향과 커피 향이 가득했다. 언덕 위에 자리한 창이 넓은 창가에 앉아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길에 주차해 둔 차에 경찰관들이 딱지를 떼는 모습을 영화처럼 감상하며... 이런... 내 차였다.
아무튼. 그런 곳이다. 내가 단골로 가끔 들르는 그 카페는.
이른 점심을 먹고 집을 나서 S반을 탔다. 먼저 오는 S반을 타고 중간에 내려 버스를 타려고 맘먹었더랬다. 차를 몰고 오면 25분 정도 걸릴라나? 그런데. 역시나 독일 대중교통이 계획을 꼬이게 했다. 시간표에 있는 재시간에 와야 하는 버스는 오지 않고(1시간 간격). 다른 버스는 20분이나 늦게 도착하여 출발을 하지 않고. 다시 집에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다 어찌어찌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3시 가까이되어 도착한 그 카페. 역시나 남아있는 빵이 거의 없다.
그래도 그 와중에 재밌는 이름을 발견했다. pane hell. pane는 이탈리아 빵인데. 그럼 hell이 붙었으니. 연한, 밝은 빵? 아님. 플래인이라는 뜻이겠지? pane hell과 커피 한잔, 초코브로첸 하나를 샀다. 넓은 창가에 앉아 일단 버스 기다리며 씩씩거리던 화를 다스린다.
앉아서 pane hell을 검색도 해보고. 역시나 일반적이지 않은가 보다.
독일 맥주에는 hell이라는 것이 있다. 지옥 아니고. 매우 맑은 맥주를 말한다. 그래서 pane hell이라는 이름을 보면서 생각했다. 흰 밀 빵이구나. 먹어보지 않아도 맛이 예상되었다. 심플한 흰 밀가루로 만든 빵에 약간의 신맛이 도는 정도의 맛이려니 했다.
버스 시간이 다 되어 남은 커피를 빠르게 마시고 카페를 나섰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 길에 죽 늘어선 상점들을 기웃거렸다. 무심코 빵 봉투를 열고 뜯어먹으면서. 그런데. 너무 익숙한 향이 입에 가득하다. 올리브오일의 향이었다. pane라더니 올리브 오일을 넣었나 보다. 독일 빵에 길들여지던 혀에 오래간만에 올리브오일의 존재감이 훅 치고 간다.
독일에서 만난 이탈리아의 향기.
재시간에 오지 않는 버스로 인해 머릿속이 hell(지옥)이었고. 수많은 독일 것들에 대해 욕을 퍼부었더랬다. 독일 빵은 꼴도 보기 싫은 타이밍에 이탈리아 냄새 짙은 pane hell 이라니. 어쩜 이렇게도 절묘할 수가!! 빵 이름을 곱씹으며 피식 웃어버렸다. 이게 독일이다 하면서.
혹시 여행 중 프랑크푸르트에서 잠깐의 시간이 생겨서 알뜰하게 좀 더 독일의 작은 마을을 보고 싶다면, 추천한다. 전철과 버스를 타도 금방 갈 수 있다. 단, 버스나 전철의 시간을 아주 잘 맞춰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