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아팠던 부분들을 요가와 명상을 통해 치유받으셨다는 다능님과 이번 기회에 같은 편이 되어주겠다는 나현 님의 말 모두 왠지 저에게도 위로가 됩니다.
또 지선님이 복싱과 요가를 병행하시게 된 계기가 무척 궁금했었는데, 요가가 복싱세계로부터의 안식처이자 안전지대였다는 이야기를 읽고, ‘아, 어쩌면 나도 안식처이자 안전지대로서 요가를 찾고 있었던 걸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칩니다.
지금까지는 글을 쓰는 게 가볍게만 느껴졌는데, 제 순서가 다가오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주제가 묵직하고 깊어지는 것 같아 오늘은 글을 써내려 가는 속도가 느려졌습니다.
글의 속도를 조금 채근해 보고자 과거의 기억을 꺼내보자면, 저도 한때 친구의 추천으로 ‘무에타이’를 배우러 다녀본 적이 있는데, 주먹으로 마구 때리는 것이 너무 무서워서 한 달 만에 배우는 것을 포기하고 그만두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그때의 짧은 기억에도 타인의 주먹이 내 몸 가까이 와닿는 공포는 매우 큰 것이었는데, 지선님이 몸 담고 있는 전쟁통 같은 복싱의 세계는 차마 제가 상상하지도 못할 정도로 더 무섭고 잔인한 세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직접 시합에 임하는 선수들은 자신이 상대방에게 줄 타격의 영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 줄 스스로 잘 알고 있을 테니, 선수들이 가정을 이루고 나이를 먹을수록 시합 상대를 적이 아닌 ‘같은 인격체’로서 느끼게 될 때 본능적으로 몸을 사리게 되는 것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상대방을 ‘해치면 안 되는 인격체’로 여기는 것이 ‘연약함’으로 여겨지는 스포츠의 세계가 한 편으로는 냉정하고 잔인하게 여겨지기도 하네요.
그곳과는 다른 성질의 세계이지만, 제가 몸 담고 있는 곳도 어떤 때는 가혹할 정도로 냉정하기도 하고 가열차게 – 비유적으로 그야말로 ‘피 터지게’ - 싸우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제가 직접 참가하게 되는 스포츠와는 달리,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니고 상대적으로 객관적일 수 있는 제3자인 대리인의 입장이기 때문에 상대방 당사자에 대해서나 상대방 변호사에 대해서 직접적인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소송사건 재판에서 상대방 변호사는 각자의 직업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 의뢰인을 대리하여 다투고 있는 상대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서 싸워야 하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저도 최선을 다해서 싸우는 거죠.
업무에 있어서 승부욕이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열심히 하는 만큼 더 자극받아 저도 더 열심히 싸우게 됩니다. 일단 싸움을 시작했으면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임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이렇게 ‘져서는 안 되는’ 곳에서 수많은 사건들을 다루며 쉬지 않고 싸웠기 때문인지, 로펌에서 한창 일하던 5년 차를 앞두었던 때에 저는 한 차례 위기를 맞게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까지 제가 로펌을 떠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 외의 커리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번아웃’ 증상이 왔을 때, 그야말로 대혼란의 시기를 겪었습니다.
번아웃이 왔을 때는 ‘싸우는 것’이 너무 지치고 싫어졌는데, “나도 그렇고, 의뢰인도 그렇고 이렇게까지 소모되는 출혈전이 필요한 것일까?”하는 생각도 하면서, “‘싸우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에 더 초점을 더 두고 일을 할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들도 많이 했었던 것 같습니다.
“협상을 하든, 설득을 하든, 회유를 하든, 공감을 하든, 조정을 하든, 우리에게 덜 중요한 것을 양보하고 더 중요한 것을 받아 내든, 꼭 일방이 100% K.O. 가 아니더라도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법’은 의외로 다양할 수 있고, 변호사가 할 수 있는 역할이나 업무가 더 다양할 텐데... 덜 소모적이고 덜 지치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이미 벌어져 있는 사건에서 후발적으로 서로 뺏고 빼앗기는 것 말고, 일이 벌어지기 전의 앞단에서 무언가를 생산적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을 경험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로펌을 그만두기로 하고, 지쳤던 몸과 마음을 조금 추스른 후에 '서비스를 만들어 내는’ ‘기업行’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것과 그 이야기를 대변해서 정리해주는 것, 누군가를 설득할 자료들과 논리를 찾아내는 것, 호기심 있는 것에 대해서 새롭게 배우고 연구하고 적용해 보는 것을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성향인데, 그 때문인지 ‘서비스를 만들어 내고’ ‘이야기들을 입혀야 하는’ 기업에서의 생활에도 엄청 흥미를 느끼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가 좀 길어졌는데,
그렇게 택한 기업들에서의 생활도 5년 정도가 지나 ‘법적인 프로세스의 뒷단과 앞단을 모두 경험했으니, 이제 홀로 독립해서 무언가를 만들어 가고 직접 어떤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 봐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쯤,
거창하게 ‘용기를 내고말고’ 할 것도 없이 후다닥 저의 사무실을 개업하게 되었고, 지금은 과거에 저를 그렇게나 심하게 지치게 만들었던 “싸우는 일”에도 전념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사라는 게 나쁜 것과 좋은 것, 유리한 것과 불리한 것, 모든 것들이 섞여 있게 마련이라, 오랜 시간 동안 피 터지게 싸운 결과 모든 당사자들에게 득 될 게 없이 모두 녹다운(Knockdown) 되는 출혈적 다툼보다는, ‘최대한 빨리 원하는 것을 얻어내고 각자 원래의 일상이나 생업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고 건설적인 방법인 것 같다는 과거의 저의 생각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기나긴 소송 기간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로 무척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기도 하고, 전부 얻으려고 욕심을 부리다가 전부 잃게 되는 경우도 왕왕 발생하게 되기 때문에, 각자가 가진 자원과 에너지를 아껴서 미래에 더 좋은 곳에 쓰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다고 생각이 들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와는 달라진 점이 있다면, 거쳐온 시간과 경험만큼 “싸우는 일”에 대해서 혹은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에 대해서 좀 더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임하게 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나이가 어리고 연차가 적을 때는 업무에 몰입하는 만큼 의뢰인에게 공감을 하다못해 감정적으로 아주 몰입을 하게 되어서 같이 흥분하거나 같이 화를 내기도 했는데요.
경험상 그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차차 사건에 업무적으로 몰입은 하되, 감정적으로는 동요하지 않는 법을 터득해 간 것 같습니다(다만 저도 기계가 아닌 사람이기 때문에 이 부분은 아직도 더 노력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더불어서 제가 생각하기에 결과론적으로 과연 싸울 필요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결과 상관없이 의뢰인을 위해서 ‘싸워주는 것 그 자체’가 필요할 때가 있다는 것도 더 느끼게 되었고요.
또 싸움에 임하게 되는 과정에서 만나는 모든 관련자분들의 입장이나 상황을 두루두루 살피고 이해하고 숙고해 볼 수 있는 직간접적인 경험들이 조금 더 생기다 보니, 예전보다는 주어진 상황에 대해 좀 더 겸허해지고 더 신중해지게 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 이기면 누군가는 지고, 누군가 얻으면 누군가는 잃게 되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제3의 피해가 생기지는 않을까 고려하는 마음이나 당사자들에 대한 공감능력, 측은지심도 연차와 함께 더 늘어나게 된 것 같아요.
요가를 하다 보면, 5가지 전사(戰士) 자세, 즉 “워리어(Warrior) 동작”들을 하게 되는데, 그중 “험블 워리어(Humble Warrior, Baddha Virabhadrasana / Virabhadra Mudra)” 동작이 있잖아요.
기본 워리어 동작에서 양손을 등 뒤로 모아 깍지를 낀 채로 고개와 몸통을 앞으로 깊게 숙이는 동작인데, 뭉쳐 있던 어깨를 쫙 펴주면서 등 뒤를 모아주고 골반을 풀어주는 동작이라, 평소 저와 같이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긴 사람들은 이 동작을 하는 동안 굳어있던 어깨와 골반이 서서히 풀어지면서 아주 시원해집니다.
저는 이 동작의 이름 때문인지, 이 동작을 할 때마다 고개를 깊이 숙인 상태에서 심호흡을 하면서 “나는 한 주간 ‘Humble Warrior’로 살았나... 경솔하게 행동했던 것은 없나”를 한번 쭈욱 돌아보게 되고는 하는데, 주어진 업무나 상황에 열정적으로 임하더라도상황과 사람에 대한 겸허함을 잊지는 않았는지 한 번 더 되돌아보게 됩니다.
지선님이 함께하고 계시는 선수분들 또한 나이를 먹을수록 공감능력이나 측은지심, 상대방에 대한 인간적 존중의 마음이 짙어지기에 유해지고 연해지는 과정에서 상대방과 격투를 하는 과정이 괴로워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섣불리 말씀드릴 사항은 아니지만, 저도 비슷한 고민과 괴로움을 가진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런 마음들은 극복하거나 없애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포기하지 않는 한 계속 함께 가야 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마음과 함께하면서 괴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가 있지만,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그 일을 해야 서로 덜 고통스럽게 잘 해낼 수 있는지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은 동기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더 진지하게 임하게 되고 그러면서 더 강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지선님의 질문이 정말 많은 생각을 끌어올리는 것이었네요.
오늘은 이례적으로 편지를 오래도록 고민하며 써본 것 같습니다.
그럼 바통을 다능님께 넘기면서, 질문을 던져봅니다.
제가 “험블 워리어” 아사나를 하면서 항상 같은 생각들을 되뇌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것처럼, 다능님도 특히 자신에게 의미 있거나 애착이 가는 아사나나 그와 관련된 경험이 있으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