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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래 Jun 18. 2024

끝까지 다 읽고 보지 못한 서로의 결말이 되어보자

사람들은 해 본 것에 대해 ‘그때 하지 말 걸’ 하는 후회를 더 많이 할까, 아니면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 ‘한 번은 해볼걸’ 하는 후회를 더 많이 할까. 후회라는 건 해보지 못한 것에 대해 후회하는 쪽이 더 클 것 같다. 이미 한 것을 후회하더라도 그때의 내 판단이 옳다고 여겼기에 했던 일 일 테니까 지나간 일에 대한 미련은 아무래도 좀 더 적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간만 지나 더 이상 해볼 수도 없게 된 일은 시간이 흘러도 마음에 남아 기억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너와 결국 미처 다 읽고 쓰지 못한 서로의 결말이 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 가장 먼저 한 행동은 너와 연결된 것들을 하나씩 끊어내는 일이었다. 아직까지 차마 전화번호와 SNS를 지우고 차단하지는 못하겠지만, 공유된 넷플릭스 계정은 로그아웃 시켰다. 공유된 계정을 통해 네가 언제 어떤 콘텐츠를 봤는지 알 수 있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았고, 굳이 내가 너를 위해 애써 좋은 일을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금 더 솔직하게 나쁜 마음으로는 네가 보고 있는 드라마의 결말이 궁금해 미치도록 만들고 싶기도 했다. 마치 우리가 쓴 이야기처럼 말이다. 끝까지 다 보지 못한 드라마는 언제가 다시 생각이 날 테니까. 그 드라마가 재밌었다면, 무엇보다 중반부 이상 흘러온 이야기라면 그 끝이 어떤 결말이든 궁금할 것이다.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고,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관계를 경험하며 우리의 삶은 연결되기도 끊어내기도 쉬운 세상에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의 SNS를 통해 쉽게 일상을 접할 수 있는 만큼 쉽게 연결될 수도 있고, 또 내가 원하는 시기에 아무도 모르게 지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연결된 계정을 지우고 끊어내는 일은 쉽고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지만, 사람의 감정이 섞여 있는 일에는 분명하게 끊고 정리하는 일은 마냥 쉽지만은 않다. 내가 다른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연결감은 나를 불안함에서 멀어지게 하지만, 영원히 연결될 수 없기에 언젠가 멀어지게 되면 자연스럽게 분리되어야 한다. 그리고 동반되는 당혹감과 불안함 역시 같이 견뎌내야 할 몫이다.      


네가 원한 이 애매한 관계를 끝내는 법은 너에게 아쉬움과 미련, 후회를 남기는 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애매한 관계를 원하지 않았고, 내가 준 확신이 부족하다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써진 결말이 나 혼자 책을 덮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네가 끝날 듯 끝나지 않게 만드는 감정에 내가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결국 내가 먼저 손을 놓는 것이 더 마음이 편할 거 같았다. 내가 준 확신이 오히려 너에게 당연함과 안정감을 준 게 문제라면, 원래 그렇게 당연한 것은 없다는 걸 확인시켜주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너와의 관계에서 결말이 궁금하지 않다.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어떻게든 써지겠지. 그래 이제 나는 아쉽지 않다.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우리의 이야기는 완성되지 못한 서로의 한 페이지로 남아보자. 누구도 그 결말을 모른 채로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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