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우리 사이, 또 애매할 만큼 시간이 흘러 돌아가기에도 다시 시작하기에도 어중간했다. 그걸 아는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지내다 보니 정말이지 아무렇지 않았다. 처음에는 모른 척, 애써 괜찮은 척, 별일 아닌 척 넘기려는 데 집중했다. 마음이 몸을 지배하듯 내가 괜찮아하면 괜찮은 거였다. 내 마음을 먼저 정리하는 게 가장 빨리 내가 일어서는 법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좋은 감정이 있었던 것은 맞지만, 이어지지 못하고 끝난 사이에 처음에는 이렇게 지내는 것이 맞는지, 너는 지금 이 상황, 감정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날 보고 정말 아무 생각 안 하고 있는 것인지 고민하기도 했고, 또 이런 날 쉽게 보는 건 아닌지 걱정도 했다. 그렇다고 서로 얼굴 못 볼일이 뭐가 있겠나 싶었다. 괜히 내가 먼저 피해버리는 건 잘못한 것도 없는데, 지는 거 같아 억울해서 싫었다.
최고의 복수는 원망하고 욕하며 혼자 속 끓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 나 혼자 잘 사는 것이라는 말이 맞았다. 꿀릴 것 없는 내가 더 자신감 있고 당당해야 오히려 아쉬운 쪽은 내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관심보다 무관심이 더 무서운 법. 내가 잘 살아야 후회하는 건 네가 될 테니 말이다. 떠나간 인연에 지나간 관계에 붙잡고 아쉬워할 필요 없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는 너의 일상을 궁금해하고, 너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을 넘어서 네가 다른 사람과 웃고 떠들고 즐기는 모습을 부러워하고 질투하는 나를 확인할 때다. 이미 가득 차버린 애정에 너의 기분과 태도가 내 하루의 감정에 영향을 미친 날이 많았다. 그런데 이제는 나와하던 장난을 다른 이와 하고, 내가 모르던 행동을 보여도 ‘너는 원래 그런 사람이구나’ ‘어떻게든 네가 알아서 하겠지’ 그러려니 넘기게 됐다. 나 아무렇지 않은 거 보니 정말 괜찮아졌나 보다.
솔직히 예전만큼 좋아하지 않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애정이 식었다면 식었다. 내게 질투가 없다는 건 사랑이 없다는 거다. 피드백 없는 사랑, 믿음 없는 리액션은 결국 너에 대한 내 사랑의 온도를 줄어들게 했다. 사랑은 혼자서 채워질 수 없다. 나는 사랑하는 만큼 나와 함께 하길, 다른 누구도 아닌 나랑만 하기를 바랐는데, 그게 아니라면 나를 두고 떠나가도 괜찮다. 나를 놓고 멀어져도 상관없다. 더 이상 나는 너에게 사랑을 구걸하고 매달릴 만큼의 사랑은 없다. 혼자서도 아무렇지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