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과 최악의 선택지가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까. 어떤 선택이 잘한 선택일까. 극악의 밸런스 게임은 선택하는 과정을 마치 내 얘기라면, 내 앞에 펼쳐진 상황이라면 어떨지 상상하다가 진심으로 몰입하게 된다.
“육체적인 바람과 정신적인 바람 중에 어떤 게 더 싫어?” 친구들과 현실적인 연애 얘기를 하다 보면 꼭 나오는 얘기가 있다. 둘 다 최악으로 생각만으로도 너무 싫다. 전자는 본능이 앞서 사람과의 믿음을 깨버리는 것이고, 후자는 사람 마음으로 장난치는 기만하는 일이다. 그럼에도 굳이 반드시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내가 더 쉽고 빠르게 포기할 수 있는 걸 택하겠다.
상대가 어떤 마음이었든, 의도였든 아니든 바람핀다면, 육체적 바람은 내가 끊어낼 명분이 더 확실하다. 그래서 후회도 미련도 없이 한 번에 완전한 이별이 가능하다. 정신적 바람은 마음까지 줘 버리면 모든 걸 다 준 거 같아서, 연결되어 있던 마지막 하나의 끈을 놓는 것 같아 상처가 더 오래 기억될 거 같다. 사랑이 오랫동안 상처로 기억되는 일은 있어선 안 된다.
육체적 바람은 상대한테 정이 떨어지지만, 정신적 바람은 그런 상대를 믿었다는 나 자신에게 오히려 더 큰 실망을 할 거 같다.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먼저 앞서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라서 감정을 나누는 행위들을 더 상상하고 싶지 않다. 사랑은 처음이었든, 실수였든 한 번이라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믿기에, 신뢰 관계가 한 번 무너지면 상대가 어떻게 하더라도 되돌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냥 원래 너는 그런 사람이구나’ 하며 내가 포기하는 게 내가 덜 상처 받고 빠르게 회복하는 길이다.
정신적 바람이 더 싫은 이유는 감정 없는 사랑은 노동이 아닐까. 감정 없는 사랑은 존재하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일상을 공유하고, 마음을 나누는 것만큼 명확한 사랑의 형태는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상대에게 어떤 감정도 없다면 굳이 시간과 돈을 들일 필요가 없다. 그 에너지들을 모아 내가 아끼고 소중한 사람들에게 쓰기에도 벅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정된 에너지를 나눠줄 여유까지 있다는 건 이미 마음이 움직였다는 것이다. 마음이 가는 곳에 몸이 간다. 아무리 마음이 바다와 같이 넓다거나 모든 인간을 받아들이는 따듯함이 아니고서야 의미 없는 행동, 마음 없는 행동은 모든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본성 같은 것이다.
나라면 두 상황이 내게 닥친다면, 제대로 된 증거를 찾지 못하더라도 육감으로 느껴진다면 서서히 상대를 포기하고 마음을 접겠지. 사랑인 척 포장된 것들이 결국 빈 껍데기 뿐이었다는 것도 알게 해주겠지. 온전히 스스로 너의 잘못을 깨우치고 뉘우칠 때까지 말이다. 물론 용서도 없고 받아줄 리도 없을 것 같다. 한 번 끝이면 영원한 끝과 다름 없으니까. 이런 막연한 상상과 고민 따위는 시간 낭비라는 그런 믿을 만한 사람과 안정적인 사랑, 설레면서도 편안한 감정 교류를 하고 싶다. 진짜 사랑하는 일이 사랑받는 일이 어떤 건지 눈에 보이는 사람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