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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바다는 변하지 않는다(4)-태국 시밀란제도

VI. 나의 버디(Buddy), 우리만의 포인트(Point)

by 관계학 서설 II Mar 17. 2025
ChatGPT·DALL-E가 시밀란제도 포인트를 위치 정확도 50% 수준으로 그려봤다.

  지구의 여신 '가이아'가 있는 다이빙 포인트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스쿠버 다이빙 관련 격월간지는 3종정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이야 거의 온라인 매거진이나 블로그 또는 개인 카페로 발간 형태가 전면적으로 전환된 것으로 알고 있다. 격월간지 UW 수중세계 발행인이자 편집장인 이선명대표가 창립한 다이빙 클럽이 '가이아(Gaia)*'이다. 주로 고대 출신들 중심으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1세대 대학생 스쿠버다이빙 서클의 후신인 셈이다. 70년대부터 활발한 국내외 투어를 진행했으니 역사나 전통으로 가히 독보적이다라고 평할 수 있다. 다이빙샵도 제대로 없던 시절, 여름 전지 해양훈련으로 제주도 서귀포 문섬&새끼섬까지 공기통과 에어 컴프레서(Air Compressor)를 들고 메고 다녀왔다는 사실은 하나의 전설로 남아있을 정도이다

  태국 시밀란제도는 가이아 클럽과 다녀왔다.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회원으로 가입부터 해야 되는데 이 과정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가이아 입장에서는 회원 입회 심사 초기부터 우선 출신 대학교가 좀 께름칙했다고 한다. 물론 클럽 심사기준 역시 매우 까다로운 주관적인 절차로 정립되어 있어, 다이빙 스킬부터 인성까지 따지는 것으로 유명했다. 여하튼 삼고초려까지는 아니지만 수 차례 클럽 오프 모임에 직접 참석해서 기존 회원과 임원진에게 스쿠버다이빙에 대한 열정과 경험 등을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리를 가졌다. 다행스럽게도 기존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클럽 가입에 성공했다. 


  그리고 한두 달만에 그들과 함께 태국으로 향했다. 언젠가부터인지는 모르지만 비즈니스 출장을 포함해서 국내외 여행을 떠나면 목적지를 중심으로 한 인근 지역을 지도상에 표시하는 버릇이 생겼다. 블루 핀은 스쿠버 관련, 레드 핀은 중국, 러시아, 동유럽 지역, 그린 핀은 가족여행, 노란색은 출장 그리고 하얀색은 버킷리스트 지역 등으로 분류해서 정리해 두었다. 동남아지역에 또 하나의 블루 핀이 박혔다.


  바다만은 '진실'을 알고 있다!

  인솔자인 이대표가 버디를 정하면서 '강사'라는 이유로 혹시 모를 대열 낙오자를 챙기는 단독 후미 역할을 맡겼다. 낯선 포인트 동선과 수중 촬영이란 부담감으로 약간 불안하기도 했지만 신입 통과의례라 생각하고 쿨하게 받아들였다. 수심 30m 다이빙을 20여분 마치고 출수를 위해 일행과 돌아오는 길에, 좌측 방향으로 만타(Manta)*가 눈에 들어온다. 순간 망설이다가 부리나케 파워 킥으로 쫓아가면서 라이트 암을 펼치자마자 서넛 컷 셔터를 눌렀다. 돌아서서 일행을 보니 멀리 수중 암반 코너를 돌아 시야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정말 뭐 빠지게 따라가야만 했다. 그 순간 '과호흡'* 상태에 들어섰음을 직감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쪽 다리에는 쥐까지 나려는 찰나였다. 당장 응급으로 해당 다리의 오리발 끝을 힘껏 당겨 근육 경련을 풀었다.

  "주변 고정물에 손을 짚고 머릿속의 불안과 긴장감을 즉시 비우고 최대한 호흡을 천천히 하는데 집중해라!"라는 교육과정 중 위기대처법이 생각났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봐도 기댈 고정물이 전혀 없는 망망대해이다. 천근만근 같은 촬영장비를 놔 버릴까 하는 유혹을 다잡고 겨우 부력기 클립에 끼웠다. 중성부력을 유지한 채, 오른손 검지로 왼손 검지와 엄지로 만든 둥근 원주변을 살짝 짚고 호흡을 고르기 시작했다. 단 몇 초동안 지옥과 천당을 몇 번을 다녀왔는지 모른다. 가까스로 평정을 되찾고 겨우겨우 후미를 놓치지 않고 보트밑 수심까지 따라잡았다. 얼마 지나니 않아 일행 모두 하나둘씩 3분의 안전감압을 마치고 출수가 끝나 버렸다. 홀로 감압정지 시간까지 꽉 채우고 나서야 배안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사진기 세트와 장비를 내려놓는 뒤통수가 왜 그리 따가운지? 클럽 회원들의 말없는 시선이 느껴졌다. 창피해서 자초지종을 설명도 못하고 혼자서 한참 동안 끙끙 삭혀야만 했다. 지금도 그들은 모르지만 변하지 않은 바다만은 진실을 모두 알고 있다.


  과호흡(Hyperventilation)과 프리플로우(Free Flow)  대처법은 다이브마스터와 강사 교육과정에서 배웠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시밀란제도 투어 이후, 내가 겪은 그 사건을 거울삼아 오픈워터 교육 중 가장 우선순위로 설명하는 위기상황 대처법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After finishing a 20-minute dive at a depth of 30 meters and heading back with my group for surfacing, I caught sight of a manta ray to the left. Hesitating for a moment, I quickly kicked my fins into full power and sprinted toward it, instantly extending my light arm as I pressed the shutter button at least three times.


  When I turned around, I saw my group slowly fading into the distance as they rounded a corner of a submerged rock formation. I felt a strong urge to follow them, and that's when I sensed that I had entered into a state of hyperventilation. To make matters worse, just as I was about to push myself harder, a cramp started to form in one of my legs. Without hesitation, I yanked the tip of my fin with all my strength, easing the muscle spasm as best as I cou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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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이아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지구의 여신"을 의미하고 지구 자체를 상징한다. 그녀는 신화 속에서 모든 생명의 어머니로 간주되며, 자연과 생명, 환경 보호, 지구의 순환과 관련이 깊다. 따라서 가이아 스쿠버다이빙 클럽은 자연과 바다, 지구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다이빙을 통해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려는 실천 철학을 담고 있다. 


* 만타는 가오리목에 속하는 큰 날개를 가진 바다생물로, 몸길이는 5~7미터, 날개폭은 7~9미터에 달할 정도로 바다의 코끼리로 불릴 만큼 몸집이 상당하다. 이들은 주로 플랑크톤과 작은 물고기를 먹으며, 물속에서 입을 크게 벌려 물을 흡입해 먹이를 잡는다. 만타는 대여섯 마리가 색끼와 함께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경우가 많다, 수중생물 중에는 거의 유일하게 우주선처럼 직각으로 우아하면서도 빠른 방향전환 유영 방식으로 다이버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관찰 대상이다.


* 과호흡은 호흡이 너무 빠르고 깊어지는 상태로, 이때 체내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나치게 낮아진다. 이산화탄소는 호흡을 조절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농도가 낮아지면 뇌는 산소가 부족하다고 착각하게 된다. 그 결과, 뇌는 산소 부족을 감지했다고 느껴 호흡을 더 빨리 하도록 신호를 보낸다. 실제로는 산소가 충분히 공급되고 있지만, 과호흡으로 인해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균형이 깨져 뇌가 혼란스러워지는 것이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숨이 차고 어지러움, 불안감 등을 느끼게 되며, 심한 경우에는 의식을 잃거나 경련을 일으킬 수도 있다. 과호흡을 방지하려면 차분하고 규칙적인 호흡이 중요하며, 과도한 긴장이나 스트레스를 피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 스쿠버다이빙 시 호흡기 프리플로우 현상은 호흡기에서 공기가 비정상적으로 계속해서 빠져나오는 상황을 말한다. 주로 호흡기 밸브의 고장이나 차가운 수온에서 호흡기 내부의 습기가 결빙되면서 발생할 수 있다. 이 현상은 공기 공급을 차단하거나 조절하기 어려운 상황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다이빙 전 후에는 호흡기를 점검하고, 발생 시 즉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숙지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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