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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부꾸미 Jan 17. 2022

새벽이 온다는 것

새벽에 대한 단상





 새벽은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늦은 오후, 가벼운 술자리에 초대받는다. 모인 사람도 모인 명분도 캐묻지 않고 수락한다.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날이다. 막상 도착한 술자리엔 비슷한 생각으로 모인 한량들이 옹기종기 자리를 꿰차고 있다. 그나마 말 섞기에 덜 어색한 사람들이 모인 쪽에 대강 자리 잡는다.


 대화는 아무렇게나 흘러간다. 시답잖은 연예인 근황부터 쓸데없이 거창한 근 미래에 대한 토론. 요즘 유행하고 있다는 이상한 단어. 서로에 대한 무딘 호기심. 미처 입 밖으로 내지 못하고 어렴풋이 가늠해보는 내 위치. 그리고 남는 정신으로는 서로의 빈 술잔을 센스 있게 재깍재깍 채워야 한다.


 장소가 바뀌고 주종이 바뀌고, 어느 순간 몇은 사라지고 없다. 인사도 안 하고 그냥 가냐- 술 냄새 폴폴 나는 투정에 귀 기울이는 사람도 없다. 어물쩍 사라지는 쪽에 합류해 볼까 생각하는 순간 어깨 위에 무거운 팔 하나가 얹힌다. 

-너까지 가면 진짜 재미없지!

그런가? 내가 이 술자리에서 소소하게나마 재미를 담당하고 있었던가? 의문이 들지만 깊이 생각해볼만한 정신상태는 아니다.


 자정이 넘어갈 무렵부터 부자연스러운 조합의 정예 인원이 남는다. 술이 술을 마시고 있는 부류, 살면서 약간의 취기 이상을 경험한 적 없는 진짜 술 센 부류, 붙잡힌 채로 자리 뜰 타이밍을 잡지 못하는 굼뜬 부류, 멍하니 휩쓸리며 새벽 첫 차를 기다리는 부류. 대체로 나는 타이밍을 못 잡고 바깥 자리에서 눈치만 보다 첫 차를 기다리곤 했다. 


 속 깊은 대화를 가장하고 느릿느릿 가짜 대화가 이어진다. 긴 아침잠을 자고 일어나면 피차 기억하지 못할 이야기들이 은밀하고 진실 된 가면을 쓴 채 나른한 술상 위를 떠돈다. 몇 번이고 취하다 얕게 깨는 것을 반복한 몸이 진통제를 과하게 삼킨 것처럼 얼얼하다. 간신히 건져 올린 정신으로는 상황에 알맞은 대화를 하고 있는지조차 분간할 수 없다.


 알코올이 만든 시공간에 영원히 갇힐 것 같던 술자리도 끝나는 순간이 온다. 누군가 첫차가 다니기 시작했음을 인지하면, 순간을 의미로 받아들일지 아니면 금세 녹아버리는 얼음처럼 지워낼지는 각자에게 맡기고 자못 시원스레 돌아선다. 


 그렇게 몇 시간 만에 내던져지듯 마주한 거리는 무척 생경한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밤의 표정을 짓고 있지만 거리는 그런 부적응자를 곁눈질 하듯 차갑게 바라본다. 순식간에 어딘가 겁을 먹은 꼴이 되고 만다. 무심한 표정으로 한 발 이른 출근길을 서두르는 사람들과, 여태 눈치 없이 나뒹구는 밤의 흔적을 지우느라 바쁜 비질 소리와, 하루 동안 켜켜이 고여 있다 서늘한 기운에 스며 올라오는 땅의 냄새가 그렇게 만든다. 새벽 시간 땅의 냄새는 왠지 유황냄새와 닮아있다. 어딘가에서 지옥의 냄새가 그러하다는 말을 들은 이후로는 새벽 공기를 맡을 때마다 밤사이 내가 모르는 곳에서 지옥문이 빼꼼 열렸던 건 아닌가 상상하게 됐다.


 애써 침착한 얼굴로 발걸음에 속도를 붙여보지만 이미 새벽에 적응한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다. 아무리 애써본들 새벽의 나는 이방인이다. 검은 머리 속 흰 머리처럼 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눈엣가시처럼 도드라지는데도 의문의 눈길 한 번 주는 이가 없어 더 불편하다. 결국 이방인이라는 괴로움도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 그저 완연한 아침이 오기를. 땅에서 번진 어스름말고, 공평하게 내리쬐는 햇빛 아래 남들 틈에 섞일 수 있기를. 어둠 뒤에 서는 것보다 밝은 곳에 나와 있어야 더 감쪽같이 숨을 수 있으니까.


 이것이 내가 새벽을 싫어하는 이유다. 


 이것이 이 시간에 내가 늘 잠들어있는 이유다.


 미라클 모닝이라는 게 소소하게 유행하면서, 혹여 일찌감치 벌레를 잡으려는 새처럼 부지런한 누군가가 나에게 그걸 권하지는 않을지 지레 염려되어 장황하게 감성에 의존한 이런 지저분한 글을 남겨 둔다. 강조하자면 이른 새벽에는 되도록 잠들어 있는 편이 좋습니다. 사위가 밝기도 전 껌껌한 새벽, 차가운 교복을 입고 집을 나설 때의 울분을 떠올려보면 미라클이라는 단어를 함부로 쓰면 안 되겠다 생각이 드실 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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