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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더티브 Apr 19. 2021

나를 낯설고 불편하게 만드는 질문들

[창고살롱] 첫 번째 스토리 살롱 - 영화 <브루클린>


창고살롱 시즌2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어요. 첫 번째 스토리 살롱에서 영화 <브루클린>을 보고 만났는데요.


아일랜드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란 에일리스의 뉴욕 이주기를 담고 있는 영화 <브루클린>은 새로운 기회를 위해 이국땅으로 떠난 이주 여성의 고군분투 서사예요. 안온하면서도 어딘가 불편한 고향을 뒤로하고 떠나야만 했던 에일리스의 이야기에는 한 여성의 수많은 내적 갈등과 고민, 그리고 성장이 섬세하게 담겨 있어요.


영화를 추천한 살롱지기 인성은 조직 안과 밖, 어느 곳에서 내 일을 지켜나갈지 고민하던 때에 이 영화를 인상 깊게 보았다고 해요. 커리어 방황기, 삶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찾는 창고살롱에서도 <브루클린>을 함께 보고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았어요.


창고살롱 시즌2 <브루클린> 스토리 살롱 ©창고살롱


영화 <브루클린> 스토리 살롱은 각 10명 내외의 레퍼런서 멤버들이 3개 소그룹으로 나뉘어 살롱지기들이 준비한 3가지 주제로 대화 나눴어요.


1. 나를 나아가게 한 새로운 시도나 선택이 있었다면?

2. 나에게 진짜 ‘집’은 어디일까?

3. 나라면 토니에게 ‘돌아온 이유’를 얘기할까?


영화 한 편을 보았는데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나눠준 레퍼런서 멤버들을 보며 역시 창고살롱이구나 싶었어요.


영화 <브루클린> 중


만나기 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을 사전 과제로 나눴는데요. 에일리스가 '각성'했던 장면이 많이 꼽혔어요. 그토록 그리워했던, 안온한 고향을 왜 또다시 떠나야만 하는지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선택을 앞둔 임팩트 있던 장면이라 많이 꼽아주신 것 같았죠.




창고살롱 시즌2 스토리 살롱에서는 살롱 후 글쓰기 과제도 준비했는데요. 이번 과제는 살롱에서 나눈 대화 주제 3가지 중 한 가지를 골라 500자 내외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해보기로 했어요.


1. 나를 나아가게 한

새로운 시도나 선택이 있었다면?


에일리스는 영화에서 시도와 선택을 통해 주체적으로 성장하며 점점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레퍼런서 멤버들에게도 이런 경험이 있었는지 듣고 싶었어요.


정은님은 모범생으로 살다 대기업에 취업, 번아웃을 경험하고 퇴사한 후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이어온 시도에 대해 나눠줬어요. 그러면서 "퇴사라는 선택을 후회하진 않는다. 나이가 들면서 열정에 비해 몸이 안 따라줘 그렇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며 "천직을 찾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어요.


정언님은 에일리스처럼 패기 있게 고향을 떠나 첫 직장 생활을 서울에서 시작했던 때를 떠올렸어요. "텃새도, 향수병도 극복할 정도로 의욕이 넘치고, 도전적"이었던 시절이었죠. 이어 출산 후에는 "그냥 그렇게 10년이 흘렀다"면서 "시도나 선택이 꼭 새로울 필요도, 과감하거나 그럴싸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알 법한 연륜(?)이 되었음에도, 젊고 생기 넘치던 그 시절의 그 결정이 항상 그리움으로 남는 것 같다"고 덧붙이기도 했어요.

바로 지금, 나를 나아가게 한 새로운 시도와 선택을 하고 있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최근 서울이 아닌 로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정인님은 이 선택이 가장 새로운 시도라고 했어요. 지역에서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는 사람들을 인터뷰하다 그 이야기의 에너지를 발견하고 지역에 대한 기대가 싹 터 로컬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로 선택했다는데요. 쉽지 않은 선택임을 잘 알기에 앞으로 정인님이 쌓아갈 이야기가 더욱 기대되더라고요.


가현님은 "대범한 시도를 해보지 않았던 것 같아 부끄러웠다"고 하면서도 이내 "다시 출발선에 선 지금이 새로운 기회일 것 같다고, 과제 글을 쓰는 이 순간도 한 걸음이 될 것 같다"고 했어요. 첫 번째 살롱 질문들이 "심오했다"는 가현님은 "이런 질문들로 저를 마주하니 조금 낯설고 불편한 마음도 생겼다"면서도 "이번 기회로 내 안의 갈급함이 무엇인지 찾고 조금은 대범한 시도를 계획해 보겠다"는 다짐을 남기기도 했어요.


미국에서 '미라클 모닝'으로 참여해 주신 미정님도 "창고살롱 시즌2에 참여하기로 결심한 것"이 새로운 시도와 선택이라고 했어요. 작년 사업 기획안을 들고 남편에게 투자를 의뢰해 자신만의 콘텐츠를 세상에 내놓은 미정님. "창고살롱을 통해 초심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고 동료들의 레퍼런스를 접하며 정신적 소통 창구를 발견하길 바란다"고요.


영화 <브루클린> 중


시즌1 레퍼런서이기도 했던 젤라님과 진아님은 최근 크고 작은 굴곡을 겪었기 때문일까요. 위로가 되는 글을 남겨주기도 했어요.


"생각해 보니 저를 나아가게 하는 건 뭔가 큰 결심이나 전환점이 아니라 삶 속에서 제가 좋아할 만한 것을 찾아서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무리하지 않으면서 제 삶을 무기력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 나를 나아가게 하는 선택인 것 같아요" - 젤라님


최근 '로컬, 일, 여성'을 화두로 매거진을 창간하기로 결심, 로컬 콘텐츠를 수집하며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진아님은 건강 문제로 숨 고르며 잠시 속도 조절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요. "속도보다는 방향이라는 말을 믿으며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에 많은 레퍼런서 멤버분들이 진심으로 위로하고 응원했어요.


두란님은 최근 남편과 '애증의 바이크'를 함께 타기 시작한 새로운 시도를 따뜻한 글로 남겨주었어요. 더 나은 관계를 위한 애정 어린 시도가 멋졌어요.


"너무 다른 두 사람이 만나 사는 것은 정말 치열하다. 이번 바이크는 내 이름으로 대출을 하고, 양가 부모님께는 내가 통보하였다. 명목은 남편과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 이 방법뿐이었다고. 이건 정말이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남편이 정말 좋아하는 걸 함께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결혼 9년 차, 연애 4년을 합하면 13년 동안 한 번도 남편 바이크에 타 볼 생각을 안 했다. (...) 우리가 조금 가까워진 것 같다. 바이크를 타기에 선선하며 따뜻한 날씨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가능한 때에, 아니 일부러 시간을 내야지." - 두란님




2. 나에게 진짜 '집'은 어디일까?


<브루클린>의 주인공 에일리스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새로운 곳에서 지어 올리는 나의 삶 사이에서 "이제 집이 어딘지도 모르겠다"며 혼란스러워 하기도 해요. 그렇다면 나에게 '진짜 집'은 어디일지, 레퍼런서 멤버들과도 대화 나눴는데요. '집'이라는 키워드 하나로 각양각색 글이 쏟아져 흥미로웠어요.


영화 <브루클린> 중


지금까지 통틀어 9번 이사 했다는 은애님은 "돌아갈 고향이나 집이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어요. 이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나를 반겨주는 가족이 생긴 지금은 "돌아갔을 때 나를 반겨주는 사람들, 반가운 동네가 있는 이곳이 진짜 내 집인 것 같다"고 했고요.


은정님은 "모든 집이 '따뜻하고 즐거운' 것은 아니"라며 “에일리스는 어쩌면 원가족과의 관계를 끊어냄으로써 보다 자유로워지길 욕망했던 것은 아닐까”라고 질문을 던졌어요. 자신도 집에서 벗어나길 갈망하면서도 돌봄의 책임에 얽매여 방황했던 경험이 있다면서요. 그러면서 "많은 이들은 여전히 눅눅한 집 안의 공기를 맡으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조차 모른 채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라며 "또 다른 많은 에일리스들이 용기를 낼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어요.


은진님도 "원가족으로부터 독립한 후에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다"고 했어요. "지금 돌아보니 원가족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건데 그걸 몰라 오래 혼자 방황하고 힘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내가 누군지, 어떤 곳을 원하는지, 누구와 함께 하고 싶은지 아는 지금의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이름 지은 집 '다풍옥'이 진짜 집"이라고 강조했어요.


밑줄 긋고 싶은 띵언도 쏟아졌어요. 써니님도 처음 독립을 마음먹었을 때를 떠올리며 당시 일기를 공유해 주셨는데요. “우리가 긴밀하게 느껴지지 않을 때라도 자신이 살아가는 힘을 갖자”는 문장이 인상 깊었어요.


어린시절 미국으로 이민 간 윤승님은 "미국에선 한국인, 한국에선 미국인”이었던 이민자로서 "지역보다는 정체성에 대한 공감대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집'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해요. 그러면서 "어디에서 사는 지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스스로 누구인지 잘 아는 것 - 그래서 어디서도 나만의 ‘집’을 형성하며 견고히 살 수 있는 것"을 강조했어요.


실제 브루클린에 살았던 현정님에게 그곳은 조금 다른 곳이었어요. 조직에서 어려움을 경험하며 "나약함과 우유부단함을 자책하게 만든" 곳이었다고요. 유학과 이주로 많은 곳을 오가며 여러 집에서 살았던 현정님은 "이제 공간적인 배경에 대한 의심과 질문은 내려놓고 나와 가족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집’이라는 깨달음에 집중하려 한다"고 했어요. 이어 "더 이상 '여기 말고 저곳의 삶'을 동경하지 않는다"며 "그저 제 마음의 평수를 넓혀 그 안에 새롭고 튼튼한 집을 짓고 싶다는 간절한 바람만 있을 뿐"이라는 띵언을 남기기도 했죠.


통찰력 있는 비유도 돋보였어요. "나의 진짜 집은 브래지어를 벗어던지고 자유롭게 있는 곳"이라고 남겨주신 한혜진님의 강렬한 글에 모두 격하게 공감했고요.


샤브샤브님은 자신에게 집은 '쌀밥' 같다고도 했어요. “제일 좋은 주식이지만 매일 먹으면 질리고, 밥만 먹다 보면 빵이나 국수같이 다른 것이 먹고 싶어지는 마음이 집을 향한 제 마음과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요. 그러면서 "집이 집구석이 되는 순간은 한 끗 차이이지만 천국과 지옥을 오가게 한다"며 집의 "야누스적인 양면성"을 얘기하기도 했어요.




3. 나라면 토니에게

'돌아온 이유'를 얘기할까?


<브루클린>을 보지 않은 분이라면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영화 <브루클린> 중


끝내 브루클린으로 다시 돌아간 에일리스가 토니와 행복하게 재회하며 영화가 끝나는데요. 이후의 선택도 궁금했어요. 만약 나라면 토니에게 아일랜드에서 짐에게 흔들렸던 일, 다시 떠남을 망설였던 것, 그리고 돌아온 이유에 대해 얘기할까에 대해서요.


토니에게 '돌아온 이유'를 말하겠다는 더쿠작가님. "인생의 가장 큰 결정이자 사랑 그 자체이며, 과거와의 결별 선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이 영화가 해피엔딩인 이유를 정리했는데요." 에일리스와 토니가 다시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어떤 미래가 펼쳐지든 뉴욕에서의 삶이 나의 삶이라는 걸 받아들이기로 한다는 에일리스 스스로의 삶에 대한 결정 때문"이라고요. 격하게 공감했어요.


살롱 당시에는 이 질문에 대해 말을 하겠다, 안 하겠다 의견이 갈리기도 했는데요. 선택은 달랐지만 이유가 같은 분들이 있었어요. 얘길 하든 안 하든 '신뢰' 때문이라고요. 이 또한 정답이 있기보단 각자의 선택과 책임이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영화 <브루클린> 중


홍하언니님은 대화 주제 외에 다른 관점으로 글을 남겨주기도 했어요. 에일리스가 세상을 떠난 로즈 언니에게 쓰는 편지 형식의 글이었는데요. #여성독립 #가족탈출 #여성연대 등 최근 읽은 책들의 키워드와 연결해 영화 속 또 다른 여성의 서사를 주목한 글이라 인상 깊었어요.


"문득 언니가 죽음을 선택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아주 오랫동안 집안의 기둥이자 엄마의 희망이자 친절한 이웃이었던 언니는, 단 한 번도 언니를 위한 결정을 내린 적이 없잖아. 항상 엄마의 건강과 집안의 재정과 주변의 안락을 먼저 생각하며 적당한 것을 선택했지, 원하는 것이 아니라. (...) 캄캄한 방 안에서 언니는 자신의 몸을 갉아먹는 질병을 그래서 반가워한 것은 아닐까. 모성의 겁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를 찾았던 거야. 나는 브루클린으로 돌아왔어. 언니가 죽음으로 벗어난 그곳을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해. (...) 누군가에게 종속되지 않고 증명할 필요 없는 하루를 살아내 볼게. 나는 내 삶을 돌볼 능력이 있다고 믿으니까. 언니도 믿지?"


창고살롱 시즌2 두 번째 스토리 살롱은 박완서 작가의 장편 소설 <그 산은 정말 거기 있었을까>를 읽고 만나요. 또 어떤 심도 있고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 벌써 기대되네요.




정리/편집 : 창고살롱 살롱지기 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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