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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종섭 Feb 22. 2021

하늘을 걷는 풍경

밴쿠버에서 서울까지

만남이 있는 하늘길은 짧고도 설렘이 있는 반면, 이별이 있는 비행은 길고 지루하기만 하다. 세상이 넓다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세상은 성냥갑처럼 작고 초라해 보인다. 손을 뻗으면 모래성 같이 무너질듯한 손바닥 만한 세상이 따로 없다. 땅에서 보았던 높고도 넓은 세상을 하늘 위에 서면 한꺼번에 눈으로 담고 엄지손가락 하나만으로도 세상 풍경이 가려가기에 충분했다.


공항에 가면 숱한 사연이 모여져 있었다. 그곳은 항상 만남과 이별이 교차했고 온갖 희로애락을 품고 웃음과 눈물이 존재되어 갔다.


항공기에 탑승하고 나면 좌석은 비좁고 고립되어 있다. 하늘을 나는 시간 동안 지루함을 덜고 갈 수 있는 지혜를 생각해 본다. 탑승의 시작은 맨 먼저 자석 주변을 중심으로 사람들 표정을 훑어보기에 바쁘다. 기내가 시끌벅적하다. 인종 구분 없이 토해내는 언어가 시끄러움으로 밀려들고 들어도 알아들을 수 없으니 영혼 없는 허공 속의 외침에 불과했다.


오월의 날씨가 심을 잃은 탓일까. 기내에서 강하게 내뿜는 에어컨 바람이 반갑기만 하다. 일찍부터 좌석을 침대 삼아 잠들어버린 사람들이 마냥 부러움의 대상이다. 장도의 기나긴 비행은 숙면만큼 더 좋은 보약은 없다. 이제는 비행 중에 쉽게 잠을 청하는 일이 익숙할 만도 한데 여전히 습관은 눈을 감고 잠들지 못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승무원 발걸음 소리의 흔적을 긴장감 있게 기억두었다. 빠른 숙면을 청해 보기 위해 기내 서비스로 제공되는 와인과 맥주를 마셔보지만 여전히 취기는 오르지 않았고 머릿속은 점점 투명해, 좌석 내에 설치되어 있는 모니터를 통해 볼만 한 것을 검색보아도 대충 원하는 것마저도 찾을 수가 다. 비행시간은  4시간을 넘어서고 있다. 체감의 시간보다도 훨씬 더 느린 느낌이다. 아직도 온 만큼의 시간을 더 보태어야 한다 생각은 지루함으로 가득 차 있다.


창공에 떠 있는 세상은 어둠 속에 잠들어 있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미지의 하늘을 걷고 있는 중이다. 날개 중심 부분에 적색 신호등 불빛 항공기 영역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해 쉴 새 없이 바쁘게 깜박인다. 불빛 빠른 움직임은 심장의 박동 소리와 흡사했다.


기내는 보고 느껴갈 만한 선택이 극히 제한되어 있다. 인터넷마저 단절된 상황은 마치 문명 없는 무인도와 같았다. 가끔은 인터넷 없는 세상을 상상해 보았다. 상상은 실제 상황으로 현실감 있는 체험을 해 나가고 있다.


지구촌 사람의 생김새도 다양하다. 말이라도 하나의 언어로 소통되면 좋을 텐데 소통의 단절은 행동의 자유까지 잃어간다. 기내식이 시작되었다. 대충 느낌을 보아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겠냐고 물어보는 말인 듯한데 중국말이라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다.

"I am a Korean"

한국인이라는 말에 언어가 순간 바뀌어졌다.

"I'm sorry. What kind of food would you like?"

이상하게도 승무원 눈에 내가 중국인으로 비추어졌다는 점이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물론 중국 국적 비행기라는 을 염두에 두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중국인으로 인식했을 것 같기도 하다.


오늘따라 유난히도 비행시간이 길게만 느껴진다. 이내 인내했던 비행시간이 8시간 30분이라는 지루한 시간의 터널을 지나가고 있다. 소등했던 불이 켜지고 착륙 한 시간 반 가량을 남겨 놓고 승무원들은 마지막 기내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비행기는 드디어 샤먼 공항 활주로에 날개를 접었다. 샤먼 공항을 통한 캐나다 방문과 고국으로의 귀국행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행히 대기시간 없이 인천비행기에 탑승할 수가 있었다. 앞으로  3시간이라는 짧은 비행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짧은 시간이 가져다주는 위로 때문일까, 내딛는 발걸음은 생각보다 가벼워진다. 


인천 앞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크고 작은 섬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 섬들의 이름을 기억해 내지 못했다. 분명 저 섬들 중엔 내가 기억하는 이름도 있을 것이다.


길고도 짧은 시간 동안 지구의 한 바퀴 이상을 돌아온 것 같다. 앞으로도 내가 살아있는 동안 수많은 비행이 오늘처럼 또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착륙을 알리는 기장의 안내방송이 들려온다. 바람이 비행기 동체를 거칠게 저항하면서 하강하기 시작했다. 무사히 비행기가 무거운 간을 내려놓고 공항 활주로무사히 착륙했다


핸드폰이 문명을 열어 놓았다. 몇 개의 카톡 알림 창이 소리음을 낸다. 

아내가 보내온 카톡이었다.

"사랑한다고 꼭 같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닌 듯...."

 "그냥 상대가 행복한 대로 살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닌가 싶어요 ㅎㅎ"

카톡 시간대를 살펴보니 밴쿠버 공항 배웅을 마치고 집에 도착해서 보낸 카톡인 듯했다. 한국으로 홀로 떠나보내는 남편을 위로하고 본인은 의연해지려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음을 느껴간다. 순간 가슴 뭉클해짐이 엄숙히 다가선다.


이 글은 2019년 5월에 쓴 글이다.

그리고 그해 늦가을  또다시 캐나다 밴쿠버로 돌아왔다. 코로나가 어느 정도 끝나고 나면 또다시 이별의 공항을 향해 떠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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