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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편 데이터로 본 오픈이노베이션 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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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Dr. Jin입니다.


요즘 대기업 혁신담당자들과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면 공통적으로 듣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픈이노베이션, 정말 효과가 있나요?" 혹은 "투자 대비 성과가 나오고 있나요?"라는 질문입니다. 당연한 질문입니다. 지난 몇 년간 오픈이노베이션이라는 단어가 혁신의 대명사처럼 회자되었지만, 막상 구체적인 성과 데이터를 보여주는 경우는 드물었으니까요.


오늘은 그 질문에 일부 답을 제시해봅니다. 숫자로, 데이터로, 그리고 실제 사례로 말입니다. 2024-2025년 최신 통계를 기반으로 국내 기업의 PoC 도입률, 스타트업 투자 연계율, 그리고 이노브랜치를 비롯한 주요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의 성과를 분석해보겠습니다.



1. 한국 오픈이노베이션의 급성장: 숫자가 말하는 진실


폭발적 성장의 5년

2018년부터 2023년까지, 한국의 오픈이노베이션 활동은 문자 그대로 '폭발'했습니다. 2018년 겨우 7건의 프로그램에 18개 기업이 참여하던 것이, 2023년에는 87건의 프로그램에 361개 기업이 참여하는 규모로 성장했습니다. 5년 만에 프로그램 수는 12배, 참여 기업 수는 20배 증가한 것입니다.

오픈이노베이션 참여현황.PNG

이런 성장세는 단순한 유행이 아닙니다.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전환의 가속화 속에서,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 선택한 필수 전략이었습니다. 바이오와 소재부품장비 등 제조업 중심으로 시작된 오픈이노베이션은 이제 플랫폼, 핀테크, 헬스케어 등 서비스 산업 전반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2022년 벤처 불황을 기점으로 관련 CVC 투자는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고, 2025년 활동 계획 역시 위축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성장통이 시작된 것입니다.


전망의 온도차: 대기업 vs 스타트업

흥미로운 점은 2025년 오픈이노베이션 환경에 대한 전망에서 대기업과 스타트업의 시각이 엇갈린다는 것입니다. 한국무역협회가 234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대기업의 54.3%는 2025년이 2024년과 유사한 수준일 것이라고 보수적으로 전망한 반면, 스타트업의 52.5%는 확대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이 온도차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대기업은 이미 충분히 많은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성과와 효율성을 저울질하는 단계에 접어든 반면, 스타트업은 여전히 오픈이노베이션을 성장의 기회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실제 성과는 어땠을까요?


2. PoC에서 도입까지: 험난한 여정의 실체


PoC, 성공의 첫 관문

PoC(Proof of Concept, 개념검증)는 오픈이노베이션의 첫 번째 관문입니다. 스타트업의 기술이나 서비스가 실제로 대기업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검증하는 단계죠. 하지만 이 관문을 통과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습니다.

대기업이 PoC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 1순위는 '자사 전략 수요와의 적합성(Fit)'이었습니다. 스타트업 제품이나 서비스 자체의 우월성보다 자사 전략과의 정합성을 더 중요하게 본다는 뜻입니다. 이는 매우 현실적인 접근입니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라도 기업의 전략 방향과 맞지 않으면 도입에 어려움을 겪거나 설령 도입하더라도 기대하는 혁신 효과를 창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도입률의 진실: 낮지만 의미있는 숫자

그렇다면 PoC를 통과한 기술이 실제 도입으로 이어지는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정확한 통계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 관계자들과의 인터뷰와 사례 분석을 통해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여러 오픈이노베이션 사례들을 비교해 보면, PoC 단계를 거쳐 선행 검증(Pretotyping) 단계로 넘어가는 비율은 대략 20-30% 정도로 수렴합니다. 그리고 선행 검증을 거쳐 최종 양산이 결정되는 비율은 다시 30-40% 정도입니다. 즉, PoC를 시작한 기술 중 최종적으로 실제 제품에 탑재되는 비율은 대략 10-15% 내외인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제가 참여한 현대건설의 오픈이노베이션 발표 내용을 보면 '22년부터 '25년까지 4년 동안 총 963개사를 발굴하여 (평균 200개사 내외), 4년간 총 47개사를 선발하여 (평균 10개사 내외, PoC 등 참여), 이중 '24년까지 17건이 실제 후속 협업(투자, 적용확대, R&D 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숫자가 낮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이 정도도 상당히 높은 성공률입니다. 대기업 역시 혁신 관리를 1년에 3~4건 실제로 해내는 것도 자원과 인력이 소모되는 투자입니다. 신약 개발의 경우 임상 1상을 시작한 물질이 최종 승인을 받을 확률이 10% 미만인 것을 생각하면, 오픈이노베이션의 PoC-도입률은 결코 낮지 않은 수치입니다.


성공까지 걸리는 시간: 평균 2-3년

오픈이노베이션 성과사례.PNG 한국무역협회(2025), 오픈이노베이션 주요 사례 분석

더 중요한 것은 '시간'입니다. 한국무역협회의 우수사례 분석에 따르면, 대부분의 성공 사례는 최초 시작부터 유의미한 성과 창출까지 평균 2-3년 전후의 기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또한 밋업이 성사되는 것도 평균 7.2회의 도전 끝에 이루어졌습니다.

이는 중요한 시사점을 던집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단기 프로젝트가 아니라 중장기 투자라는 것입니다. 올해 PoC를 시작했다면, 실제 매출이나 가시적 성과가 나오는 것은 빨라도 2-3년 후라는 뜻입니다. 흔히 '인삼농사'에 비유하는 오픈이노베이션 농사에서 조급함은 금물입니다.


실제 사례: 현대차그룹의 링 타입 센서 클리닝

현대자동차그룹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줍니다. 2020년 오픈이노베이션 라운지의 PoC에서 처음 선보인 '링 타입 센서 클리닝' 기술은 콩스버그(Kongsberg)와의 협력을 통해 2024년 현재 양산 검증 단계에 있습니다. PoC부터 양산까지 무려 4년이 걸린 것입니다.

하지만 이 4년은 헛된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기술을 검증하고, 양산 가능성을 검토하고, 실제 차량에 적용하며 최적화하는 과정이 모두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이 기술은 실제 차량에 탑재되어 소비자에게 가치를 전달하게 됩니다.


3. 투자 연계율: 오픈이노베이션이 만든 투자의 파이프라인


NextRise, 오픈이노베이션 1:1 밋업의 양적 집대성


오픈이노베이션의 또 다른 중요한 성과 지표는 투자 연계율입니다. 특히 2025년 6월 코엑스에서 열린 NextRise는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4년, '25년의 경우 이틀간의 행사에서 2만 명 이상이 방문했고, 373개 스타트업이 사업협력 등의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중 '24년 참여 102개 스타트업은 약 4,000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연합뉴스, 2025). 참여 스타트업의 27.3%가 투자 유치에 성공한 것입니다.


여기서 소위 아시아 최대 규모의 혁신페어라는 수식어의 통계적 근거가 되는, 2일간 3,600건에 달하는 1대1 비즈니스 밋업이 이루어졌고, 삼성, 현대, LG, SK 등 국내 주요 대기업은 물론 BMW, 벤츠, LVMH 등 글로벌 기업 220여 개사와 20여 개국의 스타트업 및 투자자들이 참여했습니다. 1건에 20분 남짓 진행되는 1대1 밋업에서 깊이 있는 많은 내용을 검증하기는 어려우나, 수요기업이 관심있는 혁신포인트와 스타트업의 가능한 제안 사이의 fit을 가늠해보기에는 충분합니다.


오픈이노베이션-전략적 투자 연계의 메커니즘

오픈이노베이션은 1대1 밋업, 그리고 후속 협의 등을 통해 아래와 같은 소위 오픈이노베이션 박스(Open Innovation Box), 즉 PoC 목표가 되는 혁신 검증 과제를 발굴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대체로 대외비가 되지요. 이를 PoC를 통해 유의미한 지표 달성을 이루며 검증한 순간, 이 때가 아래 그림의 투자, 개발 참여 모멘텀이 됩니다. 이는 선 PoC, 후 투자 모델이며, 경우에 따라 현대차 제로원과 같은 대기업은 선 투자, 후 PoC, 이후 사업부서 통해 R&D(최소 1.2억원 이상)를 진행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오픈이노베이션 투자모멘텀 그래프.PNG


투자 연계의 조건

그렇다면 오픈이노베이션은 어떻게 투자로 연결될까요? 메커니즘은 이렇습니다.


첫째, 대기업과의 PoC 또는 파일럿 프로젝트를 통해 스타트업은 '검증된 기술'이라는 꼬리표를 얻습니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신호입니다. "저 스타트업의 기술은 현대차가 검증했어"라는 메시지는 천 마디 말보다 강력합니다.


둘째, 실제 매출이 발생합니다. PoC를 넘어 실제 도입 단계로 가면 스타트업은 대기업으로부터 매출을 일으킵니다. 이는 재무적으로도 건전성을 높이고, 투자 유치 시 밸류에이션을 높이는 데 기여합니다.


셋째, 네트워크 효과가 발생합니다. NextRise와 같은 행사에서 한 대기업과 협업한 스타트업은 다른 대기업이나 투자자의 눈에도 띄기 쉽습니다. 성공은 성공을 부르는 법입니다.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의 효과

중소벤처기업부가 2024년부터 본격 시행한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사업도 주목할 만합니다. 선정된 스타트업에는 시제품 개발 및 PoC 수행에 최대 1억 2천만 원의 자금이 지원되며, 후속 R&D 자금도 연계됩니다.

2024년 사례를 보면, 현대코퍼레이션과 스타트업 SILI ENERGY가 협업하여 태양광 폐유리로부터 차세대 배터리용 규소소재 재활용기술을 개발하고 국내외 특허 출원까지 이르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KT와 협업한 '아스타'는 마케팅 콘텐츠 생성 AI '아비카'를 도입해 제작 시간 99.5% 감소, 업무 처리 비용 60% 절감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냈고, 협업 기간 중 4억 원의 외부 투자까지 유치했습니다.


투자 시장의 현실: 2024년의 냉혹함

하지만 현실은 늘 장밋빛만은 아닙니다. 2024년 스타트업 투자 시장은 전반적으로 위축되었습니다. 혁신의숲 투자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스타트업 투자는 1,416건에 6조 7,564억 원으로, 전년 대비 약 20% 감소했습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의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4에 따르면, 창업자와 투자자 10명 중 6명(각각 63.2%, 64.0%)이 투자 시장이 지난해 대비 위축되었다고 평가했습니다. 실제로 투자 유치 및 집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창업자 48.4%, 투자자 53.5%에 달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은 스타트업에게 더욱 중요한 생명줄이 되고 있습니다.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매출을 만들고, 그 성과로 투자를 유치하는 전략이 더욱 절실해진 것입니다.



4. 오픈이노베이션 선정 스타트업의 압도적 성장률


수출 실적으로 보여지는 오픈이노베이션 참여 스타트업의 장기 성장율

오픈이노베이션의 진정한 가치는 장기적 성장률에서 드러납니다. 한국무역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0년 사이 창업한 기업 중 오픈이노베이션에 선정된 스타트업의 연평균 수출 성장률은 일반 창업기업 대비 월등히 높은 89.7%~164.5%대 성장세를 보였습니다. 전체 누적 평균을 비교해보아도 일반 창업기업(43.8%) 대비 오픈이노베이션 밋업 선정기업(57.6%)은 더욱 높았지요.

오픈이노베이션 기업 수출증가율.PNG 일반 및 오픈이노베이션 참여 스타트업의 연평균 수출 성장률 비교

이 숫자를 다시 한번 봅시다. 95%~180%입니다. 즉, 매년 거의 두 배에서 세 배 가까이 수출이 증가한다는 뜻입니다. 일반 창업기업의 성장률이 10-20%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10배 가까운 차이입니다.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할까요?


성장의 선순환 구조

첫째,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획득합니다. 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검증된 품질 기준과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이 이들과 협업하며 자연스럽게 글로벌 스탠다드를 익히게 됩니다.


둘째, 레퍼런스가 생깁니다. "우리 제품은 현대자동차에 납품하고 있습니다"라는 한 문장은 해외 고객을 설득하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대기업의 브랜드 파워는 생각보다 강력합니다.


셋째, 비즈니스 역량이 성숙해집니다. 대기업과의 협업 과정에서 스타트업은 계약, 품질 관리, 납기 준수, 사후 관리 등 비즈니스의 전 과정을 경험합니다. 이는 단순히 제품을 만드는 것을 넘어, 지속 가능한 기업을 만드는 역량으로 이어집니다.


넷째, 투자가 따라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대기업과의 협업 실적은 투자 유치로 직결됩니다. 그리고 그 자금으로 해외 시장 개척, 연구개발, 인력 채용 등에 투자하며 더욱 성장하게 됩니다.


우수사례로 본 성공의 패턴

한국무역협회가 분석한 우수사례들을 보면 성공의 패턴이 보입니다.


대기업 측에서는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신사업 개발의 계기를 학습하거나, 혁신 기술과 솔루션을 도입하여 기존 제품을 혁신하고 신규 서비스를 개발했습니다. 궁극적으로는 재무적 가치와 비재무적 시너지를 창출하는 혁신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스타트업 측에서는 글로벌 경쟁력 획득의 계기를 얻고, 협업 과정에서 비즈니스를 완성하고 사업화하며 신규 매출처와 투자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일부는 인수합병(M&A)을 통한 Exit까지 성공했습니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의 사례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파나시아와 협업한 뉴라이즌은 신소재를 활용한 공기 정화 측정 솔루션을 개발해 공기질 68% 개선이라는 성과를 냈고, 실제 파나시아 3공장에 솔루션을 납품했습니다. 롯데글로벌로지스와 테라클은 폐기물 순환 장치 솔루션을 개발했고, 롯데웰푸드와 바다플랫폼은 안심식자재 QR 서비스를 개발해 실제 계약까지 성사시켰습니다.



5. 만족도 격차: 기대와 현실 사이


숫자로 본 온도차

흥미롭게도, 오픈이노베이션에 대한 만족도는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에 상당한 격차가 있습니다. 한국무역협회 조사에 따르면, 5점 만점 기준으로 스타트업의 만족도는 4.51점으로 매우 높은 반면, 대기업의 총평은 3.58점, 성과에 대한 평가는 3.25점으로 상대적으로 낮았습니다. 다만 투자 및 PoC 등 협업 자체의 만족도는 4.00점으로 나쁘지 않았습니다.

이 격차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스타트업의 높은 만족도

스타트업 입장에서 오픈이노베이션은 거의 모든 것을 제공합니다. 첫째, 검증의 기회입니다. 자신들의 기술이나 서비스가 실제로 시장에서 통하는지를 대기업이라는 까다로운 고객을 통해 검증받습니다.

둘째, 매출의 기회입니다. 특히 초기 스타트업에게 대기업과의 계약은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한 건의 대형 계약이 향후 1-2년의 런웨이를 확보해줄 수 있습니다.

셋째, 학습의 기회입니다. 대기업의 프로세스, 품질 기준, 요구사항 등을 경험하며 스타트업은 급속도로 성장합니다. 이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치입니다.

넷째, 네트워킹의 기회입니다. 한 대기업과의 연결고리는 다른 기회로 확장됩니다. NextRise 같은 행사에서 만난 인연이 몇 년 후 큰 계약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흔합니다.


대기업의 아쉬운 만족도

반면 대기업의 상대적으로 낮은 만족도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반영합니다.

첫째, 눈높이에 맞는 스타트업 부족입니다. 대기업이 애로사항 1순위로 꼽은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대기업의 요구 수준은 높습니다. 단순히 좋은 아이디어를 넘어, 즉시 적용 가능한 완성도, 대규모 양산 가능성, 안정적인 품질 등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이를 모두 갖춘 스타트업은 많지 않습니다.

둘째, 내부 조직의 저항입니다. 실무 부서들은 각자의 KPI가 있습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단기적으로는 일만 늘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파트너와 협업하고, 검증하고, 내부 프로세스에 맞추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셋째, 성과 측정의 어려움입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의 성과는 2-3년 후에야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기업 내부의 평가는 보통 1년 단위로 이루어집니다. 장기 프로젝트의 가치를 단기 지표로 평가하기는 어렵습니다.


격차를 줄이는 방법

이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양측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요구 수준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단순히 좋은 기술이 아니라, 대기업의 전략과 맞는 솔루션을 제시해야 합니다. 한국무역협회 조사에서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준비도'에 대해 가장 낮은 점수(4.93점)를 준 것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기술력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기업은 오픈이노베이션을 단기 프로젝트가 아닌 장기 투자로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내부 조직이 협업할 수 있는 환경과 인센티브를 만들어야 합니다. 오픈이노베이션 성공 사례에 대한 보상, 실패에 대한 관용적 문화, 장기적 관점의 평가 체계 등이 필요합니다.



6. 글로벌 트렌드와 한국의 위치


2025년 글로벌 전망: 조심스러운 낙관

Mind the Bridge의 「Open Innovation Outlook 2025」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전망은 "조심스러운 낙관"으로 요약됩니다.

2024년은 오픈이노베이션에 있어 전환점이 된 해였습니다. 세계적인 거시경제 압력과 경기 둔화로 많은 기업이 기존 혁신 전략을 재점검했습니다. 2023년 말 설문에서 27%의 기업이 2024년에 오픈이노베이션 예산을 삭감할 것으로 내다봤는데, 이는 전년 6%에 비해 크게 증가한 수치였습니다.

하지만 2025년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예산 계획은 한층 긍정적입니다. 86%의 기업이 오픈이노베이션 예산을 기존 수준으로 유지하거나 확대할 전망이며, 25%는 예산을 늘릴 계획입니다. 반면 예산을 축소할 것으로 예상한 기업은 14%로 감소했습니다.

이는 기업들이 오픈이노베이션을 단기 유행이 아닌 장기 전략 자산으로 보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어려운 시기에도 혁신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입니다.


벤처 클라이언트 모델의 부상

글로벌 트렌드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벤처 클라이언트(Venture Client) 모델의 확산입니다. 거의 모든 기업(90%)이 이미 이 접근을 활용하고 있고, 아직 도입하지 않은 소수 기업 중 7%도 가까운 시일 내 도입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벤처 클라이언트란 대기업이 유망 스타트업의 고객이 되어주는 협업 형태입니다. 파일럿 프로젝트를 발주하거나 제품을 구매하여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동시에, 자사는 혁신적 솔루션을 얻는 윈윈 모델입니다.

이 모델이 인기를 끄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실질적인 비즈니스 연계를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성과가 비교적 즉각적이고, 현업 부서의 관여를 이끌어내기 쉽습니다. 투자나 액셀러레이팅보다 리스크가 낮고, 양측 모두에게 명확한 가치를 제공합니다.

한국에서도 이 모델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의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이 바로 이런 접근을 제도화한 것입니다.


유럽과 일본의 사례

유럽에서는 레고, BMW, 유니레버, 쉘, 노바르티스 등 다양한 산업의 대기업들이 오픈이노베이션 플랫폼을 운영하며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특히 레고는 2008년 개설한 LEGO Ideas 공개 플랫폼을 통해 팬들이 디자인한 제품을 출시하여 30여 개의 성공작을 만들어냈습니다.


BMW는 2015년부터 스타트업 개러지 프로그램을 통해 유망 스타트업을 선정하고 부품을 공동 개발하여 자사 차량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벤처 구매(Venture Client)를 통해 자동차 업계 전반에 외부 혁신 도입이 확산되었습니다.


일본은 대학을 중심으로 한 오픈이노베이션이 활발합니다. 2017년 기준 총 2,093개의 대학 출신 스타트업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 중 약 45%가 흑자를 내고 있습니다. 전기자동차 스타트업 GLM, 바이오 벤처 펩티드림 등이 대표적 성공 사례입니다.


일본 정부는 2013년 도쿄대, 교토대, 오사카대, 도호쿠대 등 4개 대학에 1,000억 엔을 출자하여 대학의 연구개발 성과를 사업화하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시별로 특화된 오픈이노베이션 허브를 조성하여, 도쿄는 핀테크와 모빌리티, 오사카는 바이오의약, 후쿠오카는 스타트업 친화 도시로 각기 강점을 살리고 있습니다.


한국의 강점과 약점

한국은 ICT 인프라와 제조 역량이라는 강점을 바탕으로 AI, 바이오, 모빌리티, 배터리 등 분야에서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허브가 될 잠재력이 있습니다. NextRise가 아시아 최대 스타트업 페어로 성장한 것도 이런 잠재력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약점도 분명합니다. 첫째, 글로벌 진출 준비도가 부족합니다. 한국무역협회 조사에서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준비도에 4.93점을 준 것은 이를 반영합니다.


둘째, 장기적 관점이 부족합니다. 성과를 2-3년 후가 아닌 당장 요구하는 문화는 오픈이노베이션의 성공을 방해합니다.


셋째, 실패에 대한 관용이 부족합니다. PoC의 10-15%만 성공한다는 것은 85-90%는 실패한다는 뜻입니다. 이 실패를 학습의 기회로 보지 못하고 비난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누구도 혁신을 시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7. 성공을 위한 제언: CREATE 전략

한국무역협회는 오픈이노베이션 활성화를 위한 6가지 CREATE 전략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정책 입안자뿐 아니라 기업 실무자들에게도 유용한 지침입니다.


C: Collaboration (협력 강화)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 정보 및 인식 격차를 해소해야 합니다. 대기업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공개하고, 스타트업은 대기업의 요구 수준을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OI마켓 같은 플랫폼을 활용하여 양측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합니다.


R: Resources (자원 지원)

PoC 지원 수요에 부응하여 대기업 주도 및 오픈이노베이션 과제 중심의 Top-Down PoC 지원을 확대해야 합니다. 현재 최대 1억 2천만 원인 지원금도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PoC 이후 실제 도입까지의 '죽음의 계곡'을 넘을 수 있도록 후속 지원이 중요합니다. 기술 검증은 되었으나 양산 단계로 넘어가지 못해 좌초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E: Ecosystem (생태계 조성)

장기적이고 전문적인 팔로업과 중개가 필요합니다. 평균 7.2회의 밋업 시도 끝에 협업이 성사되고, 2-3년 후에야 성과가 나온다는 것은 지속적인 관리와 지원이 필수라는 뜻입니다.

창조경제혁신센터, 산업은행, 무역협회 등 중개 기관의 역할이 여기서 중요합니다. 단순히 매칭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이 성공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A: Accessibility (접근성 향상)

딜 소싱 기회를 확대해야 합니다. NextRise 2025는 500여 개의 스타트업과 150여 개의 대기업, 100여 개의 VC가 참여하는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런 기회를 더 많이, 더 자주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지역 스타트업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울 중심의 오픈이노베이션에서 벗어나, 부산, 대구, 광주 등 지역 거점을 활성화해야 합니다.


T: Training (역량 강화)

스타트업의 글로벌 진출 준비도를 높여야 합니다. 단순히 좋은 기술을 넘어, 글로벌 기준의 품질 관리, 계약 협상 능력, 지식재산권 관리 등 종합적인 역량이 필요합니다.

대기업 내부에서도 오픈이노베이션 담당자의 전문성을 높여야 합니다. 스타트업을 이해하고, 협업을 이끌어내며, 내부 저항을 관리하는 것은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일입니다.


E: Exit (출구 전략)

성공적인 협업의 출구 전략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현재는 주로 투자나 M&A에 집중되어 있지만, 라이선스 계약, 조인트벤처 설립, 전략적 제휴 등 다양한 형태의 Win-Win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중견기업으로의 성장 경로를 명확히 해야 합니다. 유니콘만이 성공은 아닙니다. 꾸준히 성장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내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하는 것도 훌륭한 성공입니다.



8. 미래 전망: 2025년과 그 이후

선택과 집중의 시대

2025년 기업들의 예산 및 투자 방향은 "선택과 집중"으로 요약됩니다. 2024년의 흔들림 이후, 이제는 효과가 검증된 오픈이노베이션 활동에는 지속적으로 투자하거나 확대하고, 성과가 미흡하거나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은 과감히 축소하는 양극화된 접근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는 오히려 건강한 신호입니다. 무분별한 확장보다는, 검증된 모델을 심화하고 고도화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나은 성과를 만들어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AI 시대의 오픈이노베이션

AI는 오픈이노베이션의 판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조사에 따르면, 창업자의 41.6%가 회사에 AI를 도입했고, 그중 19.6%는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주로 연구개발(48.1%)과 마케팅(33.7%)에 활용되고 있으며, 업무 효율성 증대(16.5%)와 비용 절감(9.9%)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AI 분야에서는 언어 지능이 가장 유망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창업자, 투자자, 재직자, 취업준비생 모두 40% 이상이 언어 지능을 유망 분야로 꼽았습니다. 전반적으로 지능형 에이전트, 추론과 지식 표현, AI 특화 하드웨어 등도 유망한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NextRise 2025의 슬로건도 "Accelerate Innovation with AI"입니다. AI를 중심으로 혁신을 가속화하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습니다.


글로벌 진출의 가속화

2025년 이후 한국 오픈이노베이션의 핵심은 '글로벌화'가 될 것입니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해외 20여 개국의 대기업과 스타트업, 투자자들이 참여하는 NextRise의 성장세가 이를 보여줍니다.

한국무역협회의 분석에서 오픈이노베이션 선정 스타트업의 수출 성장률이 95-180%에 달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익히고, 레퍼런스를 확보하며,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2025년 NextRise는 독일을 주빈국으로 선정했습니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하여, 한국 스타트업의 유럽 진출 교두보를 만들겠다는 전략입니다.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

단기적인 유니콘 추구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의 말처럼, "실력 있는 기업들은 고객을 찾아 글로벌로 나가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지원금에 의존하며 버티는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이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는 도구입니다. 대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실력을 검증받고, 매출을 만들고, 글로벌 경쟁력을 키우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맺음말: 숫자 너머의 진실

지금까지 데이터로 오픈이노베이션의 성과를 살펴봤습니다. PoC 도입률, 투자 연계율, 수출 성장률, 만족도 등 다양한 지표들이 오픈이노베이션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는 숫자 너머에 있습니다.


대기업에게 오픈이노베이션은 조직의 경직성을 깨고 외부의 신선한 아이디어를 받아들이는 문화적 혁신의 시작입니다. 스타트업에게는 단순한 매출을 넘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으로 성장하는 디딤돌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게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함께 성장하며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혁신 기술을 세계에 수출하며, 경제 전체의 역동성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입니다.

평균 2-3년이 걸린다는 것, 7.2회의 시도 끝에 성사된다는 것, PoC의 10-15%만 성공한다는 것. 이 모든 숫자가 말해주는 것은 하나입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쉽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보상이 온다는 것입니다.


2025년, 그리고 그 이후. 한국의 오픈이노베이션은 계속 진화할 것입니다. AI를 중심으로 한 기술 혁신, 글로벌 시장으로의 확장, 그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의 정착. 이 모든 것이 우리 앞에 펼쳐진 기회입니다.

이제 데이터는 충분히 봤습니다. 중요한 것은 행동입니다. 대기업은 더 과감하게 문을 열어야 하고, 스타트업은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며, 정부와 중개 기관은 더 효과적으로 지원해야 합니다.

숫자는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오픈이노베이션은 효과가 있습니다. 이제 그 효과를 극대화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입니다.

함께 만들어가시죠, 오픈이노베이션의 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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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및 데이터 출처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 "한국의 오픈이노베이션 현황 및 활성화 정책 제언", 2024

NextRise 2024 공식 성과 보고서, 한국산업은행·한국무역협회, 2024

Mind the Bridge, "Open Innovation Outlook 2025", 2025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스타트업 트렌드 리포트 2024", 2024

혁신의숲, "2024 투자결산 리포트", 2024

중소벤처기업부, "민관협력 오픈이노베이션 지원사업 성과", 2024

현대자동차그룹, "오픈이노베이션 라운지 2024", 2024

대한상공회의소, "2023년 스타트업 애로 현황 및 실태 조사",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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