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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목줄을 잡아끌어봤다

3. 생의 루틴 만들기

by 실타래

직장 생활을 하며 가장 힘들었던 건 과도한 업무나 인간관계가 아니었다. 인생에 주도권을 빼앗겼다는 자괴감이었다. 나이 먹는 거 싫다고 투덜거리면서 회사 컴퓨터 앞에 앉아 퇴근 시간이 되길, 주말이 오기만을 바라며 내 젊음을 죽여가고 있는 모습. 하루의 8할을 보내는 곳에서 그렇게도 우울해하면서 남은 일상에 어떻게든 행복을 욱여넣으려 하는 모습. 그런 게 싫었다.


이렇게 꾸역꾸역 버티며 살다 비슷한 스펙의 사람을 만나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을 꾸리면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삶의 의무'를 다하는 걸까? 인생이 퀘스트도 아닌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내 삶인데 내가 삶을 주도하는 게 아니라, 삶이 내 목줄을 잡아끌고 가는 것 같았다. 내가 원치 않는 어떤 길로 말이다.

꾸역꾸역 아침 출근을 하던 시절의(지금은 자켓 싫어 인간이 되어벌임..)

누군가 정해준 길을 따라가는 건 편하지만 스스로 길을 개척해 나가는 건 어렵다. 심지어 말도 더럽게 안 듣는 '생'이란 놈을 어르고 달래며 가야하니 고생이 훤하다.목적지를 정할 순 있지만 도착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정이 쌓여 생의 얼굴을 만든다.


회사 송별회 때 과장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00 씨가 하고 싶은 게 있어 나가겠다고 말할 때 눈빛이 너무 명확해서 잡을 수가 없더라. 나도 한 때 꿈이 있었어. 적당히 다니다 도전하려고 했지. 근데 연차가 쌓이고, 가정이 생기고, 책임이 늘어나면서 기회비용이 너무 커져버렸어. 이젠 내 꿈이 뭐였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 그냥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


흘러가는 대로 사는 거지. 이 말은 일정 부분 옳다. 이동진 평론가님의 블로그 글귀대로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 전체는 되는대로’가 내 모토기도 하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선장 없는 배처럼 생을 내팽개쳐둘 순 없다. 한창 퇴사를 고민했을 때 작사 선생님의 말씀이 내게 큰 용기를 줬었는데 여기에 짧게 적어본다.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도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한 번이라도 도전을 해 본 사람은 삶에 풍파가 닥쳤을 때 헤쳐나갈 용기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평생 삶을 두려워하며 살 거예요.



생을 어느 정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하려면 부지런해야 한다. 특히 프리랜서로의 삶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하루 일과를 잘 관리해야 한다. 지시관도 나고 수행원도 나이기 때문에 자칫 나태해질 수 있는 자기 자신을 면밀히 점검해야 하고, 근무나 여가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기에 보다 정확한 일상의 루틴이 필요하다. 나는 이를 '생의 루틴‘이라 명하는데 아래는 내가 가장 중요하게 지키고자 하는 생의 루틴들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 배우기

사람이 배움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야 성장하고, 뇌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주의이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을 하며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다. 문서 작업 방식부터 시작해 팀워크나 리더십,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추진하며 실제 현장에서 쌓는 경험 등은 이제 난 더 이상 배울 수 없다. 하지만 퇴사 후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것에 시간과 돈을 쓸 여유가 내게 생겼다.

한 때 직장인 밴드 창설이 꿈이였었는데../ 최애 수영복(이었던 것)

가장 먼저 드럼을 배웠다. 제대로 다룰 줄 아는 악기가 하나 있었으면 했는데 밴드 음악 애호가로서 드럼을 택했다. 드럼은 생각만큼 재밌었고 스트레스도 풀렸지만 집에서 연습할 수 없다는 게 큰 단점이었다. 레슨비도 꽤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곡을 직접 연주하는 데서 오는 쾌감도 그만큼 강렬해 1년 정도 수강했다.


다음으론 수영을 배웠다. 난 물놀이를 아주 좋아하지만 아이러니하게 물을 무서워한다. 물에 뜨지도 못하고 튜브에만 의지하며 줄곧 반쪽짜리 여름을 즐겼는데, 언젠가 이 두려움을 꼭 극복하리라 다짐했었다. 두려움을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을 아는가? 바로 정면승부다.


동네 스포츠센터에 등록해 매일 주 3-4회씩 오전 수영을 다녔다. 그 시간대에 젊은이는 나밖에 없어서 흔히 말하는 텃세도 분명 있었지만, 먼저 어르신들께 다가가서글서글하게 굴다 보니 어느새 반에서 예쁨 받는 막내가 되어 있었다. 운 좋게 친절하신 강사님을 만나 금방 두려움을 타파하고 자유형, 배영, 접영, 잠영까지 어느 정도 기본기는 갖출 수 있게 된 후 아침 수영은 이제 나의 오전 루틴이 되어버렸다.(지금은 겨울이라 잠시 쉬며 집에서 링피트를 하는 중이지만...)


올해 목표는 스노우 보드다. 여름 스포츠를 하나 뗐으니 겨울 스포츠도 도전해보고 싶달까. 사실 여기에 다 적진 못했지만 배움을 시도하고 지속적인 흥미를 붙이지 못한 것도 많다. 하지만 ’도전‘에 의의를 둔다면 새로운 배움은 내게 늘 영감을 주고 한계를 극복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혼자만의 취미 갖기

내 오래된 취미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독서와 영화/음악 감상이다. 내적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허겁지겁 과식하듯 소비했던 터라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것도 많지만 이젠 꽤 많은 작품이 내 라이브러리에 쌓였다.


책은 주로 동네 도서관을 이용하고, 그중 소장하고 싶은 책만 따로 사서 책장에 보관해 둔다. 영화는 독립영화를 좋아하는데 상영관이 적어 올해는 전주나 무주로 가서 영화제를 즐겨볼 계획이다. 음악은 이를 업으로 삼기로 한 이후로 온전한 취미로만 즐기기가 꽤 어렵게 돼서 새로운 청취 경험을 만들어보자는 마음에 최근 턴테이블을 구매했는데, 굉장히 만족 중이다.

이 모든 취미는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게 아니라 나 혼자 즐긴다. 나만의 공간에서, 나만의 취향대로 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누군가에겐 사치이자 자유일 수 있다. 주로 아무도 집에 없는 오전 시간이나 모든 일과가 끝난 밤에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좋아하는 차나 술을 마시며 책을 읽거나, 빔 프로젝터를 틀어놓고 침대 위에서 영화를 본 후에 브런치나 블로그 글을 쓴다. 꾸준한 기록도 정말 좋은데 휘발되는 아이디어를 잡아 글로 남겨놓으면 실행되기가 쉬우며, 흘러가는 나 자신을 기록하는 것도 꽤나 의미 있다.


홀로 일하는 사람이 혼자만의 시간이 또 필요해?라고 반문할 수 있겠으나 일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갖는 건 무척 중요하다. 이 시간을 통해 나는 묵혔던 감정을 배출하고, 스스로를 치유하고 성찰하며 내일의 더 나은 나를 준비한다.


세상과 연결되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가장 경계하는 것은 세상과 단절되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자발적으로 고립되며 례술을 창조한다고 하지만 나는 대중문화예술, 즉 K-pop 작사가 지망생이기 때문에 대중과 멀어져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 꾸준히 뉴스레터를 구독해서 읽고 있다. 요즘엔 질 좋은 뉴스레터들이 정말 많아서 사회/경제/ 문화 트렌드까지 돈 한 푼 안 내고 빠삭하게 볼 수 있다.

작년에 참여했던 유기견 보호소 봉사활동

다른 업에 종사하는 친구들과의 만남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그들보다 내가 뒤처지고 있다는 자격자심에 만남이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내 삶의 만족감이 커지면서 거창한 결과물이 없더라도 스스로 자부심이 생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마다 얼굴 편해졌다- 단단해졌다-활기차보인다- 는 말을 듣는게 그게 참 기분이 좋다.


가끔 낯선 모임에 나가 의도적으로 다양한 사람들과 부딪히며 대화도 나눈다. 그런 이야깃거리가 때론 작사의 소재가 되어주기도 한다. 공동체에 관심을 갖고 반기별 봉사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나 홀로 잘 사는 삶은 그리 가치 있지 못하다. 서로가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공감과 위로를 나누고, 선한 영향력을 만듦으로써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 밝아진다. 세상과 나를 자꾸 연결시키고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야 내 생에만 함몰되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도 생을 잘 길들이기 위해 좋은 루틴들을 추가적으로 실행해보려고 한다. 독자님들도 있으시다면 댓글로 공유해 주시고, 설 연휴 잘 보내세요! :) 다음 이야기에서는 보다 현실적인 '돈' 얘기를 해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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