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뻔뻔해지기
서른의 모습을 상상했을 때, 모두가 적어도 스스로 '무언가'를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을 거쳐 좋은 가정을 꾸릴 어른이 될 준비가 되어있을 거라고.
이 가정의 기본 조건은 직업이다. 기본 생활을 영위하고,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는 직업이 있는 것.
나의 직업은 지망생이다.
지망생: 어떤 전문적인 분야의 일을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나 어떤 조직이나 단체에 들고자 하는 사람
바람대로 나는 상위권 학교를 졸업하고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에 취직했다. 이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고, 남들만큼 열정적으로 임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년도 되지 않아 정해진 이 길에서 보란듯이 벗어났다. 애초에 직장생활이 맞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알았고, 가슴 깊이 진정하고 싶은 일이 꿈틀거리는 걸 느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잃을 게 없는 20대 때 지망생이 되기로 결심했다. 무슨 지망생이냐고? 바로 작사다.
전공이나 경력과 전혀 관련 없는 음악 쪽으로 길을 튼 건 순전히 허상이나 우연만은 아니었다. 나는 무언가를 표현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내 안에 차고 넘치는 감정들과 말들이 너무나 많아서 그걸 표현하지 않으면 죽을 것만 같은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 그 표현수단은 글, 소리, 그림 등 모든 것이 될 수 있으나 스스로 판단한 나는 글 외엔 재능이 없었다. 음악을 들으면 가사 한 줄에, 영화를 보면 대사 하나에, 책을 읽으면 작가가 선택한 단어 몇 개에 마음을 흠뻑 빼앗기고 위로받는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언어를 다듬어 내어주고 싶었다.
작사 학원부터 등록했다. 학원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영어학원에서 알바를 하며 100개가 넘는 시안을 써서 제출했다. 그렇게 2년이 흘렀고 나는 서른이 됐다.
무슨 일 하세요?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나거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을 보면 다들 내게 무슨 일을 하냐고 묻는다. 처음엔 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하기엔 나이가 꽤 찼고, 작사가라고 하기엔 아직 데뷔도 하지 못했는데. 얼렁뚱땅 둘러대며 남들 앞에 작아지는 나를 느낀 건 하루이틀이 아니다.
명절에 만난 친척들은 다들 혀를 끌끌 차며 걱정을 한다. 멀쩡히 대학 나와서 왜.. 좋은 직장 관두고 왜.. 사서 고생을 하냐는 말이다. 잔소리가 듣기 싫어 얼굴을 비추지 않은 적도 몇 번 있지만 이젠 스스로에게 당당해지려고 한다. 아니, 뻔뻔해지려고 한다. 데뷔 좀 못하면 어때? 지망생으로 살면서 분명히 성장했고 내 삶은 자라났다.
제 직업은 지망생입니다.
지망생으로 고군분투하며 살아가는 저의 작은 여정에 여러분을 초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