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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이지만 지독히 현실적인

4. 부업에 충실하기

by 실타래 Feb 02. 2025
너네 집에 돈이 많니?

졸업을 앞두고 지도 교수님과 상담 중 취업이 하기 싫다는 내 말에 교수님은 이렇게 물었다. 아마 내가 반기업주의 사상을 갖고 있다고 판단하셨던 것 같은데, 그걸 감안하더라도 굉장히 편견 섞인 질문이 아니었나 싶다.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나왔다고 하자 최근 주변 사람들도 내게 동일한 질문을 했다. 물론 보다 간접적인 형태로. 부모님께 물려받을 재산이 있어 돈 걱정 안 하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아이로 봐준다면 나야 땡큐지만- 사실이 아니기 때문에 해명을 하고 가겠다.


부모님께 상속받을 재산은 땡전 한 푼 없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자면 학자금 대출을 받을 형편까진 아니었지만 국가장학금과 성적장학금으로 학비 대부분을 감당해야 했고, 20살 이후로 집에서 용돈 한 번 받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갚아야 할 빚 역시 없다. 현재까지 본가에 살고 있어 부모님께 드리는 약간의 용돈 외에는 크게 생활비도 나가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잃을 게 없어서 무모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무언가가 있어야만 꿈을 꿀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돈에 욕심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벌 수 있다면 많은 돈을 벌고 싶다. 소비욕도 있고, 여행을 좋아하며, 수준 높은 문화생활을 향유하고 싶은 바람도 있다. 그런데도 '왜 대체 대기업을 나와 그때 받은 돈의 반도 못 벌면서 살고 있냐'라고 한다면, 돈은 중요하지만 그게 나의 최우선 가치는 아니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일로, 특히 음악으로 밥 벌어먹고 살기 힘든 건 누구라도 아는 사실이다. 저작권료로 곡 하나에 일확천금을 벌었다는 얘기는 극히 소수만의 얘기고, 안정성이 없는 직업이라 곡이 픽스되지 않으면 오랜 기간 무급여로 지내야 한다. 특히 작사가는 작사학원을 통해서가 아니면 데모곡 받을 기회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한데, 학원비만 해도 주 1회 수강 기준 평균 3-40만 원이다. 직접 곡을 받기까진 최소 10개월~ 1년 이상 수강해야 하기 때문에 입문을 위해 수강료로만 최소 300만 원이 넘게 깨진다. 따라서 일반적인 작사가 지망생 혹은 작사가에게 부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퇴사하면서 돈 걱정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허나 과감히 말하자면 믿는 구석이 있었다. 먼저, 짧은 직장 생활동안 모아둔 비상금이 있었다. 동기들 다 사는 백 하나 안 사고, 여행 한 번 안 가며 이런 상황을 대비해 모아둔 돈이었다. 단 돈 천만 원. 그리 큰 액수도 아니고 당장 쓰지도 못할 돈이지만 통장에 천 단위의 액수가 찍혀있다는 게 꽤나 든든했다. 무슨 일을 시작하더라도 큰 자금이 되어줄 테니까. 또, 바로 알바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학원이 넘쳐나는 동네에서 영어 전공에다 과외 경험도 많은 젊은 선생님(=나)을 안 써 줄 리 없다고 확신한 것이다. 그리고 그게 그대로 먹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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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준 편지와 카네이션은 늘 내게 큰 힘이 된다 :)

제주에서 돌아와 바로 알바를 구했다.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영어학원 초-중등부 전임 강사직. 원장님도 좋은 분이셨고 아이들도 순하고 착했으나, 하루 6시간씩 풀근무를 하다 보니 막상 작사에 쏟을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껴져 1년 후 타 학원 파트타임 강사직으로 옮겼다. 학원일이 지루해지면 종종 식당 서빙이나 번역 등 재택 알바도 하며 알바와 작사 사이 균형을 찾아갔다. 예상보다 데뷔가 늦어지면서 학원강사로서의 삶도 길어졌다. 현재는 종합학원에서 초등-고1 영어 전담 강사로 근무 중이다. 집 앞 3분 거리에다 하루 4시간 근무, 페이도 높은 편이라 조건상으로 만족스럽고, 적성에도 잘 맞아 부담 없이 일하는 중이다.


단순히 작사를 이어가기 위해 시작한 일자리기에 이를 '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충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생각보다 난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내 이름을 걸고 '나의 수업'을 하는 것에서 직장인일 땐 느끼지 못했던 재미를 느꼈다. 책임감을 갖고 진심으로 가르치다 보니 성적 향상이라는 성과가 도출됐고, 학원가에서도 평판이 좋아 서서히 페이가 올랐다. 돌이켜보면 강사를 하면서 얻은 게 참 많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과정에서 보람을 얻었고, 작사에선 쉽게 얻을 수 없는 성취감을 맛봤다. 이는 작사를 꾸준히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아직 많이 모자란 어른이지만 '선생'이란 이름표를 달고 아이들 앞에 섰기에 더 좋은 어른이 되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인격적으로도 성장할 수 있었다(그들에게 오히려 긍정적이고 순수한 에너지를 많이 받았다).


사실 벌이만 보면 학원강사를 전업으로, 작사를 부업으로 쳐야 하는 게 맞지만 스스로 정체성을 작사가로 정의했기에 아직도 내게 강사는 부업이다. 아주 소중하고 애정하는 부업. 이 업을 통해 번 돈으로 생활을 하고, 작게나마 저축도 하며 지치지 않게 데뷔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물론 이전과 비교하면 금전적으로 충분치 않다. 작사로 언제 제대로 된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그래서 전에는 쉽게 사던 물건 하나, 자주 가던 여행 한 번이 어렵고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해야 할 때도 있다.하지만 난 그보다 소중한 시간적 자유를 얻었고, 일과 사람으로 받는 스트레스에서 해방됐다(적어도 월급을 받는다는 이유로 납득하기 어려운 지시를 따라야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찾았다.




현실에 꺾이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좇는 게 낭만이라면 난 영원히 낭만적인 사람으로 살고 싶다. 가수 이창섭 님이 <이영지의 레인보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서른이 넘으면 낭만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무르익는다". 30대가 되면 낭만을 좀 더 현실적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낭만을 쫓으며 살려면 그만큼 현실적일 줄도 알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포기해야 하는 게 응당 생기기 때문에 자신의 우선가치를 정하고 그에 따라 타협하는 방안을 추천한다. 아마도 난 내가 생각하는 자유와 꿈의 실현을 위해 평생 낭만과 현실 사이 줄다리기를 할 것 같다 .


독자 여러분, 오늘도 낭만 있는 하루 보내시길! 이후 회차부터는 작사에 좀 더 집중한 이야기를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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