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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 12. 29 월

여덟 살의 동네, 이웃, 사교

by 던다

과천

5살 정도부터 9살까지 과천에 살았다. 과천은 당시 신도시였다. 제5공화국에 땡전뉴스가 나오던 시절이었지만 나의 동네, 나의 세계는 깔끔하고 쾌적했다. 우리 동네는 종종 아침방송에 부녀회에서 꽃을 심고 거리를 정돈하는 모습이 나오는 그런 희망찬 곳이었다. 우리 집은 연탄을 떼지 않아도 되고 언제든 따뜻한 물이 나오는 신식 5층짜리 아파트였다. 18평에 방 3개 집이었는데 어린 나에게는 부족함 없이 넓은 곳이었다.


앞 집 이웃

앞 집 얘기를 해 볼까. 앞집엔 60대 초반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셨고 큰 아들 부부와 둘 사이의 ‘보한’이라는 딸이 있었다. 우리는 거의 대문을 열어놓고 산 듯한 느낌이었다. 당시에 우리 집에 컬러 TV는커녕 전화기도 없었는데 보한이네 전화기를 통해 전화를 받았다. 종종 어린 보한이네 놀러 가면 보한이 할머니는 낮잠을 자자면서 손녀와 나를 나란히 눕히고 주무셨다. 그런데 나는 항상 말똥말똥한 눈으로 시계 소리를 듣고 있었다. 곧이어 보한이네는 동생을 가져 연년생으로 둘째 딸 ‘수지‘를 얻었다. 그 작은 집에 3대가 어찌 복닥복닥 살았는지 궁금하다.


인형집

어릴 적 일기장을 보니 그때 살던 공간이 와르르 떠올랐다. 여덟 살의 나는 꽤 먼 거리의 친구집에 혼자 놀러 가기도 하고 친구도 놀러 왔다. 지은이라는 친구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책으로 만든 집은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 저학년생을 위한 그림책들은 보통 얇고 하드커버였다. 그 커버를 세우고 눕혀서 집 모양을 지었다. 집에 한두 개 있던 헝클어진 금발 머리의 인형을 두며 놀았다.


무난하게

학원도 다니지 않고 키즈카페도 없던 때, 무엇보다 볼거리가 현격하게 부족하던 때였다. 엄마들끼리 얘기해서 누구와 ‘놀리게 ‘ 해 주는 것도 없었다. “지은이네 집인가요? 전 지은이 친구 던다인데요. 통화할 수 있나요?”라는 어른들께 배운 대사대로 수화기에 말한 뒤 통화를 해서 성사된 만남이었다. 친구를 잘 못 사귄다느니 관계가 어그러져서 힘들어한다느니 그런 것도 없이 초1의 친구관계를 둥글둥글 보내며 나의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알아서 잘 지낸 여덟 살 던다야!
너무 대견하다. 그게 어디 쉬운 일이야.
지루한 방학도 지루한 줄 모르고
잘 보내고 있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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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