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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운 집

소설 : 북쪽의 도시들 Northern cities | 5

by 성게 Mar 06.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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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시 반이 되기 몇 분 전 눈을 떴다. 로키는 7시쯤 전화를 달라고 했다. 정신을 차리기 위해 물을 마셨다. 새벽에 잠들었다 깼을 때처럼 몸이 무겁다. 뭐든 다시 하는 일은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 많은 힘이 든다. ‘관성의 법칙’은 성가시다. 하다가 멈출 때도 힘들고, 멈췄다가 하려면 더 힘들다. 진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여행은 잘 다니고 있어? 여긴 오늘 별로 안 추웠어. 거기도 그래? 있잖아. 어차피 간 건데. 달력이라도 해 볼래? 괜찮잖아. 나한테 보내주면 내가 알아서 할게. 싫다고 하지 말고. 여행경비는 넉넉할수록 좋아.’


‘걱정 마. 이제 저녁 먹으러 나가려고. 엄청 춥고 눈 비가 와.’ 


‘뭐? 그러지 말고 그냥 해. 고집부리지 말고. 감지덕지하기만 하면 되는 데. 뭐라도 찍었을 거 아냐. 여행만 다니면 뭐 해, 사진이라도 남겨.’ 


답을 하지 않자 그녀의 답답해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냥 해.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 어차피 니 사진으로 백 퍼센트 나간다는 것도 아닌데.’ 


금방 또 메시지가 왔다. 


‘잘 생각해. 난 이제 잘 거야. 안녕.’ 


진은 스무 살이 넘어 만났다. 사회에서는 친구를 만날 수 없다고들 하지만, 진은 기꺼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중학교 때 길을 지나가다 카메라에 걸려 엑스트라를 하게 된 것을 시작으로 사춘기를 뜬 구름 위에서 보냈다.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예술에 시달리며 상상도 안 되는 돈이 오가는 세계에서 갈피를 잡지 못했을 때 사진기를 집었다. 일찍이 예술에 종사해 먹고살겠다는 욕심을 버렸는지만 내가 찍은 사진은 꽤 좋은 평가를 받았다. 대학 동기인 진은 예술에 대한 독한 꿈을 품고 유학을 떠났다. 그곳에서 몇 차례 공모전에서 입상했고 악바리 기질을 발휘해 열정적으로 전시를 이어 나갔다. 그녀는 큰 열정 없는 나와 달리 예술과 삶을 사랑하며 멋지게 살고 있다. 진이라면 다이히토어할레의 전시장에서 배가 뒤틀려 하긴커녕 야심을 불태웠을 것이다. 내 사진은 철학이나 신조가 없는 것이 문제였다. 나는 내 사진에 대해 설명하지 못했다. 찍고 나서 왜 찍었는지 생각하는 방식이 문제가 됐다. 모름지기 작가 란 작품을 구상할 때부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는 거였다. 나는 그 방향성이 없었다. 진은 내가 오기를 부린다고 했다. 


‘네 말이 맞아. 처음부터 완벽한 컨셉이 어디 있겠어. 얄팍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렇게 욕을 할 땐 그냥 아무 말이라도 해 버려.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해 버리는 건 더 좋아. 누가 무슨 생각으로 뭘 찍었는지는 사실 너만 알아도 되잖아. 니 사진은 절대 평이하지 않아. 오히려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하는 게 있어. 사실 그게 문제지. 공감할 만한 것을 찾지 못하는 것.’


진의 작품은 힘이 있고, 강렬하며, 투지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그녀는 강력한 개성을 가지고 그것을 작품으로 만들어 내는 탁월한 재능이 있었다. 진이 유명세를 타면서 여러 프로젝트가 들어왔고, 그럴 때 그녀는 종종 나를 소개했다. 함께 가던 길을 혼자 가는 것에 대해 괜한 미안함을 느낄 필요 없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진은 그만두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미안함에 보답하기 위해 그녀의 아뜰리에를 종종 방문했고, 그녀의 전시를 도와주었다. 내겐 오히려 전시를 돕는 일이 훨씬 재미있었다. 이해할 수 있는 컨셉이 있는 일은 추진하기가 매우 쉽다. 갈피를 잡느라 고민할 필요 없이, 정해진 대로 순서에 맞게 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작가로서의 길을 포기했다. 그리고 이제는 여행을 하는 사람이 됐다.





맵시 좋은 로키를 생각하니 괜히 잘 차려입고 싶었다. 날씨가 춥고 눈과 비가 바람에 섞여 날리는 날씨 때문에 두꺼운 외투를 걸쳤더니 뭘 입어도 방한복 차림이 되었다. 젖은 코트를 다시 입고 싶지 않아 레인코트를 꺼냈다. 장갑과 목도리를 하고 거울을 보니 꼭 한겨울 철새도래지 출사를 나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다시 옷을 갈아입을 시간은 없어 일단 빠르게 나와 로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로키, 아까 미술관에서 만난 임은입니다. 지금 호텔에서 나와서 가는 중이에요. Oberhafenkantine, Stockmeyerstraße 39, 20457 Hamburg 여기 맞죠? 지금 나가면 7시 10분쯤 도착할 것 같습니다. 곧 봅시다.’ 


로키에게 빠르게 답장이 왔다. 


‘맞습니다. 다리 앞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초록색 컨테이너는 함부르크의 무슨 랜드마크쯤 되는 모양이다. 페리도 로키도 똑같은 말을 했다. 우중충한 겨울과 어울리지 않는 연두 빛에 가까운 초록 컨테이너. 오래된 항구 도시에 현대적인 디자인 건물이 주는 상쾌한 맛이 있었다. 건너편에는 그라피티와 매연 때로 얼룩진 녹슨 철교가 있다. 불그스름하게 일어난 자리 옆으로 반짝거리는 진한 녹색의 금속 페인트가 칠해져 있었다. 


천장이 닫혀 짙은 그림자가 진 다리에 앉은 갈매기가 을씨년스럽게 울었다. 다리 밑으로는 거친 북해의 폭풍이 섞인 회색 파도가 거대한 덩어리로 움직이며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흐르는 것이 아니라 왔다 갔다 건들거리는 것 같아 보였다. 여차하면 다리 위로 솟아오를 정도의 막강한 힘을 숨긴 채. 여행객이 지나갈 만한 다리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건너가는 사람도 없고 거대한 물소리와 바람 소리만 울려 댔다. 나는 스마트폰을 열어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항구에는 다리가 많았기 때문에 잘못 들었을지도 몰랐다. 뒤돌아 서는데 다리 안 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여깁니다.” 


짙은 다리 그림자 속에 거대한 인영이 천장까지 닿아 있다. 나는 주먹을 쥐고 뒤로 물러섰다. 조금이라도 빛이 있는 곳으로 나가기 위한 본능. 로키가 그림자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며 나왔다. 검은 코트가 무릎 밑까지 덮고 있었다. 잘 재단된 검은 겨울 바지가 짙은 갈색 구두 위까지 각 잡혀 떨어졌다. 다리 속에서 나온 로키의 단정하게 빗어 고정한 머리 위에 눈송이가 내려앉았다. 


“저 쪽 건너편이에요. 여긴 좀 으슥하죠? 질척거리는 눈이 내리는 날엔 항구 주변 레스토랑은 인기가 없죠. 시내로 갈 걸 그랬나요?” 


로키가 가리키는 쪽에 노란색 불빛이 비쳤다. 다리 중간에 어떤 작은 오두막 같은 건물이 있었다.


“저겁니까?” 


내가 여전히 컴컴한 철교 위로 발을 올리지 않자 로키가 먼저 철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동차 몇 대가 지나갔다. 나는 로키를 따라 철교에 발을 디뎠다. 바람이 단단한 철교를 건드리는 소리가 났다. 


“폭풍이라도 오면 여긴 꽤 무섭겠는데요.” 


“폭풍이 올 땐 항구로 오면 안 되죠.”


 로키가 위협적으로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이런 데서 빠지면 시체를 찾는데 꽤 걸릴 겁니다. 물길이 많아서 물이 어디서 어디로 흘러가는지 파악하기 복잡하거든요.” 


빠르게 걸었다. 딱히 로키를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여행지에서 저녁을 한 번 먹는 정도로 범죄의 표적이 되는 일은 없다. 그런 확률 보다 한국어를 이토록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을 만날 확률이 더 낮다. 한국어는 아직 그런 확률의 언어다. 로키는 잠자코 내 뒤를 따라왔다. 키가 큰 로키에게 바다 쪽 난간이 매우 낮아 보였다. 다리의 연식과 높이를 보았을 때 독일인들의 키 평균이 이렇게 커 진 것이 몇 십 년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위협적인 파도가 치는 곳에 이런 낮은 난간을 만들었을까.


노란빛이 나오는 건물은 다리가 있기 전부터 있었는지 낮은 철교 지지대 옆에 바짝 붙어 있어 건너편에서 보면 마치 다리 중간에 철교 천장을 뚫어 지붕을 얹은 것처럼 보였다. 건물은 막 뒤로 넘어갈 듯 아슬아슬하게 기울어 있었다. 검은 벽돌로 지은 집이 이만큼 넘어갔다면 무너지는 것은 일순간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게다가 회색으로 소용돌이치는 북해 덩어리가 남실대는 오래된 제방 위라니, 마법 세계에나 등장할 법한 비밀의 집을 발견한 것 같았다.






믿기지 않도록 잔뜩 기울어진 2층 레스토랑은 좌석마다 손님으로 가득 찬 북독일 음식 전문점이었다. 오래된 칸막이 나무 좌석 위로 비뚤어져 걸린 작은 그림 액자들, 테이블마다 수직으로 떨어져 기울기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다정한 오렌지 빛 조명, 미끄러워질 듯 기울어진 맥주 잔과 수평을 유지하는 맥주거품, 좌석마다 한쪽 구석으로 몰려 앉아 있는 사람들. 요즘 유행하는 옷차림이 아니면 오래된 영화 속 한 장면이라고 착각할 만한 풍경이었다. 


앞치마를 하고 있는 거구의 중년 남자가 로키를 보고 바에서 나와 테이블을 안내해 주었다. 우리는 바 맞은 편의 테이블에 앉았다. 창가에 바짝 붙어 앉은 사람들의 기울어진 자세를 관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알스터봐써[1]도 있어요. 레몬 사이다랑 맑은 맥주를 섞은 거예요. 이걸로 시작할까요?” 


로키가 이것저것 설명을 하는 동안 앞치마를 한 남자는 다른 테이블의 주문을 받았다. 메뉴를 이해하려 시도했다.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림 없는 메뉴판은 관광객들에겐 영 쓸모가 없다. 관광객으로 보이지 않기를 바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대범하게 행동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었다.


“모르겠네요. 로키가 추천하는 걸로 하죠.”


로키는 눈치가 빠르고 행동에 굼뜬 기색이 없었다. 무슨 일이든 원하는 대로 신속하게 처리하는 스타일이다. 바깥에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미끄러운 제방에 회색 파도가 기어올라 기울어진 레스토랑을 쳐부수는 상상을 했다. 몇몇 사람은 2층 창문으로 탈출하지만 대부분은 건물과 함께 사라진다. 아마도 로키는 재빨리 저 건장한 팔을 휘저어 제방으로 헤엄쳐 나올 것이다.


“아까 다리 건너올 때 말이에요. 거기서 떨어지면 수영해서 건널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물속에서 눈을 뜨고 전투적으로 헤엄치는 로키의 모습이 오버랩 됐다. 


“이거 오늘 안 무너져요. 걱정 마세요.” 


로키가 농담 투로 웃으며 커다란 어깨를 들어 올렸다. 


“그러길 바랍니다. 함부르크에 온 지 하루 밖에 안 됐거든요. 여행이 그렇게 끝나는 건 너무 허무하니까.” 


“그렇지만 죽음이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올 수도 있는 겁니다.” 


로키의 눈이 반짝였다.






전채요리로 나온 납작하게 구운 빵은 여러 가지 재료가 올라간 것이 언뜻 피자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바삭바삭한 것이 빵이라고 하기보다는 크래커에 가깝다. 


“이건 슈만드에 베이컨이랑 양파가 올라갔고, 여긴 배, 염소치즈, 꿀, 호두가 올라갔어요.” 


“이걸 뭐라고 한다고요? 슈만..?” 


“슈만드, 사워크림이랑 비슷하지요. 베이컨은 슈펙이라고 하고, 양파는 쯔비벨이라고 하죠. 이 요리 이름은 크누스퍼플라덴입니다.” 


“너무 빨라서 하나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제대로 들어도 기억 못 하겠지만…. 어쨌든 이건 피자 같군요.” 


앞치마를 한 사람이 지나가면서 “이건 피자가 아니요.” 하고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하얗고 부서지는 염소치즈는 꿀과 호두와 정말 잘 어울렸다. 으깨지는 구운 과일 조각이 혀 위에 흩어져 녹는다. 로키는 꿀 쪽 조각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나를 위해 베이컨과 양파 쪽 조각을 남겨 두고 눈 내리는 창밖 깊숙한 곳을 노려보고 있었다. 로키가 지나가던 앞치마 남자에게 물을 주문했다. 


“탄산수 괜찮습니까?”


“가스가 들어간 물이요?” 


페리에게 들어 알고 있던 가스물을 떠올렸다.


“맞아요. 가스물.” 


“독일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나 봅니다. 가스물…” 


“어디서 또 들었습니까?” 


로키가 웃음을 참지 못하는 내 기분을 맞추려는 듯 대칭의 입꼬리를 잔뜩 올리고 물었다. 


“아, 저번에 포르토에서 누구를 만났는데, 그분도 가스물이라고 했거든요. 근데 제 입으로 말하기엔 아무리 생각해도 웃겨서요.” 


“포르토에 갔었군요.” 


로키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여전히 입꼬리가 올라가 있다. 로키의 얼굴이 사진에 어떻게 찍힐지 궁금했다.


“그러고 보니 그분도 한국어를 매우 잘하는데, 독일에서 오래 살았다고 했습니다. 독일에 사는 분들을 종종 만났네요. 요즘은 유학생도 많고, 독일에 계신 분들이 생각보다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포르토는 어땠습니까?”


“무엇보다 날씨가 정말 좋았습니다. 음식도 맛있었고, 편안하고 좋은 여행이었어요.”


“고기를 먹을 때 내장까지 다 먹는 사람들이니까 맛있는 걸 제대로 아는 도시죠. 그만큼 오래된 도시이기도 하고. 또.”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 함부르크 음식이 왔군요.”


불그스름한 정체불명의 것 위에 계란프라이가 올라가 있었다. 테이블 위에 비스듬히 내려온 전등 빛에 무언가 언뜻 반짝 빛났다. 신선한 빛깔을 한 푸르뎅뎅한 비늘이 달린 생선이 당근과 콩나물처럼 보이는 샐러드 위에 동그랗게 말려 올라가 있다. 과메기처럼 보였는데 시큼한 냄새가 났다. 


“여기야 말로 함부르크 최고의 랍스카우를 맛볼 수 있는 곳이죠.” 


“아 이게 그거 군요. 페리도 그 랍스크…” 


“랍스카우라고 합니다.” 


“아, 맞아요. 이 랍스카우를 먹어보라고 추천했거든요.” 


“페리라는 사람은 포르토에서 만났습니까?” 


로키는 나이프로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로스트비프를 자르며 말했다. 기름이 붙은 부분이 분홍색 살코기에 붙어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지는 듯했다. 


“이건 ‘칼트브라텐’이라고 합니다. 차갑고, 구웠다는 뜻이죠. 차갑게 구웠다. 저는 이 요리를 생각할 때마다 괜히 오싹한 기분이 듭니다.” 


로키는 왼손에 가볍게 포크를 들고 오른손에는 나이프를 묵직하게 쥐고 솜씨 좋게 고기를 잘랐다. 작은 고기 조각과 샐러드를 함께 올려 먹는 모습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커다란 고드름이 한 방울 씩 녹아 리드미컬하게 떨어지는 그런 자연스러움이 있었다. 그렇게 물 흐르듯 군더더기 없는 모습이야 말로 문화가 주는 기품일 지도 모른다. 


정갈하게 담긴 나물을 다른 주변을 전혀 건드리지 않고 완벽하게 집어 입속으로 넣는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왔다. 나는 실처럼 얇게 썬 고추 가락을 그것도 단 한 가닥만 집을 수 있다. 컨디션만 좋다면 참기름에 적신 깨 한 톨도 집을 수 있다. 무궁히 반복되어 온 동작들은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신비롭고 매혹적인 구경거리가 된다. 드디어 페리의 여행 방식을 이해한 것 같았다. 어떤 사람은 머나먼 나라의 미술관에서 유칼립투스 나무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생각에 잠겨 음식에 손을 대지 않자 로키가 말했다. 


“랍스카우는 식으면 맛이 없어요. 어서 먹어보세요.” 


동글동글 흰 바탕에서 빠져나올 것 같은 야들야들한 노른자 막을 터뜨렸다. 붉은 살코기를 마구 저민 듯한 더미 위에 노른자가 흘러내렸다. 포크로 덩어리를 푹 찔렀다. 푹신한 질감. 으깬 감자샐러드에 포크를 찔러 넣었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지만 감자 샐러드처럼 매끈한 표면이 아니라 어딘 지 북어를 잘게 찢었을 때처럼 가는 섬유질과 작은 야채조각 같은 것이 한데 섞여 있다. 포크를 들어 코끝에 대자 따뜻한 온기를 품은 비릿하고 담백한 냄새가 동시에 풍겼다. 혓바닥으로 천장에 누르는 것 만으로 묵직하면서도 잘게 흩어지는 질감의 요리. 간 고기와 무 같은 것일까. 비릿하면서 담백한 이 맛은 낯설었지만 친숙한 데가 있다. 


“고등어예요.” 


로키가 작은 샬롯을 포크로 찍어 입에 넣으며 말했다. 로키가 작은 양파를 씹는 모습이 개운하게 보였다. 샐러드를 포크로 찍었다. 채 썬 당근과 콩나물처럼 보이는 것들이 드레싱에 적셔지지 않아 포슬포슬했다. 그 옆에 번쩍이는 비늘을 둥그렇게 만 생선이 놓여 있다. 갓 잡아 올린 듯 비늘 자리가 선명한 생선을 맛본다. 나름대로 가장 능숙한 손짓으로 포크를 찔러 넣으니 중간에 단단한 것이 걸렸다. 커다랗게 반쪽으로 갈랐더니 오이 피클이 들어 있다. 생선살이 작은 오이 피클 조각을 둥그렇게 말고 있었다. 로키가 무언가 말을 하려는 순간 겁 없이 큰 조각을 집어 먹었다.

 

표정관리를 하려 애를 썼다. 시큼한 오이 피클이 식초에 단단하게 굳은 비릿한 생선 맛을 더욱 극대화하는 조화였다. 로키가 맥주잔을 가리켰다. 내가 물을 마시려고 하자 고개를 저었다. 


“맥주를 마셔요. 알스터봐써가 더 나은데, 어쨌든 맥주가 낫습니다.” 


나는 맥주로 간신히 생선 토막을 삼켰다.


“랍스카우는 매니아적인 음식이군요.” 


나는 식초인지에 절여진 오이를 감싼 생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게 바로 노르딕 청어랍니다. 함부르크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그래도 사실 함부르크는 햄버거의 도시지요. 그걸 발명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거든요. 물론 처음엔 생선이었고요.” 


호텔 바 유리 진열대 속 샌드위치를 포기했다.


“사실 미국에는 알게 모르게 남아 있는 독일어가 많죠. 다들 그걸 영어식으로 발음하고 있지만. 어떤 영화에서 주인공 둘이 월도프 호텔에서 만나자고 하는데, 만약 한쪽이 발도르프 호텔이라고 했다면 그 둘은 만날 수 없었을 겁니다.”


독일어 발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그냥 듣고 있었다. 발음을 잘못해서 만날 수 없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허무하다. 언어의 체계야 말로 세계를 나누는 경계인가. 결국 랍스카우를 반쯤 남기고 말았다. 접시를 걷어가는 동안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레스토랑 홀 어디에도 음식을 남기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맛있게 음식을 먹는다. 


“청어가 올라간 보드카 하러 갈래요?” 


로키가 웃으며 물었다. 


“청어, 보드카요?”


“청어를 입에 넣은 다음 보드카와 함께 삼키는 겁니다.” 


“다음에 먹어 보죠.” 


“뭐 좀 더 마실까요?” 


청어의 맛을 잊고 싶어 음료 카드를 유심히 살폈다. 로키는 진 토닉을 주문했다. 바깥에는 눈이 쌓여 갔다. 가로등 밑에 하얀 눈이 오렌지 색으로 빛났다. 지나가는 자동차 때문에 눈이 황금빛으로 빛났다. 창가에 켜 둔 몇 개의 촛불이 꺼졌다. 찬 바람이 따뜻한 홀을 날카롭게 비집고 들어와 여기저기를 누비는 것이 느껴졌다. 로키가 뒤를 돌아보았다. 홀을 돌던 남자가 뭐라고 말했다. 


“환기한대요. 전 에스프레소와 케이크를 시키려고 하는데요.” 


“아니요. 전 괜찮습니다.” 


로키가 메뉴를 흔들며 물었다.  


“그럼,” 


로키는 굳이 한 번 더 권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초콜릿 크림과 과일, 바닐라 봉봉이 박힌 상아색 크림이 올라간 디저트가 나왔다. 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디저트를 먹는 시간이었다. 신중하게 후식을 고르던 페리가 떠오른다. 로키는 초콜릿 크림을 크게 한 숟갈 떠 넣었다. 맛을 음미하는 가 싶더니 에스프레소를 반 잔 정도 들이키고 다음 한 숟갈 만에 남은 초콜릿 크림을 다 먹어 치웠다.


“뮌스터에는 무슨 일로 가십니까?”


로키가 물었다. 그 물음이 어딘 지 부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어떤 확실한 의미를 가지고 뮌스터에 가겠다고 한 것이 아니어서 대답할 말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포르토에서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하기라도 했나요? 뮌스터와 관련된.” 


그는 후식을 끝내고 이제야 본격적인 대화로 들어가자는 듯 단도직입적이었다. 로키가 유리잔을 들어 남은 진을 단번에 비웠다. 


“포르토에는 볼 것이 많지 않습니까?” 


로키는 사실 훨씬 더 많은 양을 먹을 수 있는 것 같았다.


“도시 쪽으로 들어오는 전차를 타면 반석교회가 보이는데, 그게 가장 인상 깊었죠. 그 교회는 꼭 도시 전체를 지키는 고대의 거대한 암석 관문처럼 보이더군요.” 


로키가 그제야 말이 통한다는 얼굴을 하며 대칭의 반듯한 미소를 지었다. 


“두로 강을 바라보며 먹는 대구구이 맛이 좋았어요. 지금은 배가 부르지만.” 


“물빛 성당들이 예쁜 도시고요.” 


“밤의 어둠이 짙은 골목이 많은 곳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골목골목 길을 모르더라도 길을 잃지 않는 잘 정비된 도시이기도 하더군요. 어디든 두로 쪽으로 내리막이 져 있으니까요.” 


나는 자못 알은체를 했다. 로키가 조용히 말했다. 


“포르토의 골목에서 길을 잃은 사람을 수도 없이 봤습니다. 길을 잃지 않는다는 건 오만입니다.” 


로키는 나의 눈을 정확하게 주시하며 말했다. 


“그건 옛날 수사든 현대인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영영 길을 잃는 수가 있죠. 그곳 골목들이 모두 두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은 맞습니다. 종종 몇몇 길 끝이 두로의 깊은 곳으로 곤두박질치도록 이어져 있는 것이 문제지만.” 


로키가 경고하듯 말했다.


“여행 중에는 우연이 시도 때도 없이 일어나니까요. 어떤 길을 만나든 자기 운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인 사람이 많지요. 포르토에서 좋은 일이 많았던 모양입니다.”


“네, 노을과 구시가지 풍경, 맛있는 디저트. 여러 가지로 추억할 만한 여행이 됐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우연 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가장 큰 행운 아니겠습니까. 오늘 로키를 만난 것처럼요.”


로키의 입꼬리가 한쪽으로 치우쳤다 내려갔다. 


“맞습니다. 그런 인연이 오래 지속될 수 있다면 더욱 그렇죠. 하지만 조심해야 할 겁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사실 그의 일상으로 돌아갔을 땐 정 반대 일지도 모르는 거 아닙니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얘기 몰라요?” 


로키의 입에서 그런 속담이 나오는 것이 마냥 신기했다. 정확한 억양과 악센트, 타이밍에 맞춰 한국어를 구사하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한국어를 곧잘 하는 외국인들이 있긴 하지만 로키에 비하면 턱도 없다. 


“오늘은 이제 슬슬 돌아가죠. 참, 혹시나 대마초 같은 것에 관심이 있는 멍청이는 아니죠? 여행을 와서는 그런 이상한 걸 묻는 정신 빠진 인간들이 많아요.” 


로키가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그런 인간이라면 다시는 상종 않겠다는 태도로 지갑을 꺼냈다. 


“저녁은 제가 사겠습니다. 제가 소개한 식당인데, 랍스카우를 반이나 못 먹었잖아요.” 


로키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일어나 계산대로 걸어갔다. 로키는 나보다 어려 보였고 여행지에서 빚을 지고 싶지 않다. 게다가 독일에서 장기간 여행을 하면 언제 로키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몰랐다. 공짜가 없는 사회에서 살아남으려 애썼던 사회생활의 경험을 발휘해 여유로운 표정으로 로키를 안심시켰다. 로키가 코트를 입으며 말했다. 


“내일 점심 살게요. 함부르크를 더 보고 싶으시다면요.” 


일 없는 백수이자 돈과 시간이 여유로운 여행자 신분을 마음껏 누리기로 했다.


         

          


[1]

Alsterwasser 

알스터호수의 물이란 뜻으로 함부르크 도심의 호수를 말한다 여기서는 함부르크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의 별칭이다.







작가의 말 :

오늘은 실습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올라가네요. 

저는 감기에 걸렸습니다. 올 겨울에만 몇 번 째인지 모르겠어요. 

모두 감기 조심하세요. 그럼 다음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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