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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Oct 31. 2019

다시 1년 후, 난 퇴사한다.

남 탓을 했던 1년, 내 삶을 통제하는 1년

2018년 10월 31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년 전. 퇴사하기로 결정했다. 딱 1년 후. 오늘.


https://brunch.co.kr/@mumaster82/1



1년이 지났다. 성공했나?

난 열심히 일 하고 있다. 밀려드는 일을 처리해서 넘기고 또다시 밀려오는 일을 쳐내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상사의 인정에서 벗어났나 싶어 조금 방심하다 인정받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상사가 아닌 나를 위해서 회사를 다니다 어느샌가 책임지지 않기 위해 쓸데없는 일을 만들어내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회사를 위한 시간과 나를 위한 시간을 분리하여 사용하기로 했지만 어느샌가 조금씩 시간을 바닥에 버리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너무 많은 것을 하려 했나?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었나? 내 능력을 너무 과신했나? 그저 할 수 있다고 외치고 마음먹으면 다 될 줄 알았나?


조급함

날 힘들게 했던 것은 조급함이었다. 남들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느낌, 너는 어떻게 매일매일 글을 쓸 수 있냐는 시기, 시간이 없어 도저히 물리적으로 할 수 없다는 남 탓, 나는 왜 못하고 있냐는 자책이 날 조급하게 만들었다. 조급함이 날 불안하게 만들었다. 과도하게 목표를 잡았다. 해내지 못하면 자책을 했다. 자책을 하니 조급해졌고 더 힘을 내서 과도한 목표를 잡았다. 음의 되먹임 고리가 내 숨통을 꽉 조이고 있었다.


처음엔 산뜻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생전 처음 고요함을 느꼈다. 아침 일기를 쓰고 그 일기가 쌓여가는 모습에 스스로 대견했다. 추운 겨울, 새벽에 달리고 들어오면 성취감을 느꼈다. 매주 글을 쓰니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았다. 퇴사를 목표로 회사를 다니니 사람들이 점점 나를 인정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고요함에 지겨움이 조금씩 파고들었다. 대견함은 당연함으로 바뀌었다. 나는 마약을 하는 것처럼 더 큰 성취감이 필요했다. 뭐라도 된 줄 알았지만 실상 보잘것없어 보였다. 인정 욕구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자꾸 인정하니 인정받지 못할까 두려워졌다.


그렇다. 결국 나는 작았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장했다. 그러나 그 성장이 곧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나에게 돈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렇다. 결국 나는 믿었다. 시작만 한다면 내가 대단한 사람이 될 거라 믿었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 내가 버린 시간은 너무 많았다. 그 시간을 메우고 영향력을 발휘하기에 1년이라는 시간은 짧았다.


결국 모든 문제는 '나'였다.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해보고 자기 자신을 이해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내 삶을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으로 이어진다. 이 통제감은 내 삶을 내가 이끌어 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된다. 그 자신감은 성공으로, 만족으로, 성취로,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나는 '나'를 알고 있는가? 잘 이해하고 있는가?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TV를 보고, 유튜브를 보고, 넷플릭스를 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했으니까?


내 삶을 통제한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있는가? 내 삶을 내가 통제하려 해 봤는가?


시도조차 해보지 않았다. 내 삶은 당연히 내가 통제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난 모든 것을 남 탓, 상황 탓으로 돌리는 사람이었다. 그 어떤 상황도 내가 통제해보려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그런 거였다. 하루하루를 살았고, 남 탓을 하고 너 때문이야 라고 말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리고 남들이 네 탓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그 말을 듣기 위해 술자리에 갔다. 가서 위선을 떨기도 하고 짐짓 불쌍하지만 그렇지 않은 척을 했다.


신해철은 언젠가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소명을 가지고 태어난다고요? 태어나는 목적이 있다고요? 아닙니다. 태어나는 게 목적입니다. 당신이 목적입니다. 태어나는 순간 당신의 소명을 다 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정도의 표현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에는 별 의미 없이 넘겼다.


퇴사를 결심한 지 1년. 그리고 그 결심을 이루지 못한 지금 이 순간 왜 이 말이 생각나는지 모르겠다. 


난 누군가의 목적, 어떤 절대자의 목적을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나는 목적 그 자체이다. 그 어떤 소명도 난 가지고 있지 않다.


일기를 쓰고, 책을 읽고, 글을 쓰며 나 자신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목적 그 자체'로의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가끔 조급함에 불안함에 휩싸인다. 그런 나를 조금은 떨어져 바라보게 된다. 밀려오는 파도와 밀려가는 파도 중 하나를 멈추려는 바보 같은 노력을 하지 않는다. 부정적인 감정을 더 이상 느끼고 싶지 않다며 이를 없애버리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예전 같았으면 그저 짜증 내며 화내고 그 핑계로 술 마시고 다음 날 아픈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났을 테지만.


조금씩 내 인생을 내가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이 생긴다. 퇴직을 목표로 지나온 1년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준 건 이건가 보다. 1년간의 조급함과 불안감이 나에게 준건 바로 '나'였던 듯하다. 뭐... 확실치는 않다. 근데 이거라도 받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조금 슬프기도 할 것 같다. 뭐... 내면의 성장 그런 거겠지. 조금 컸으니 다시 한번 퇴사를 목표로 살아보자. 2020년 10월 31일. 난 퇴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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