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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의 '어머니' 카르티니

by 박준영 Mar 14. 2025

인도네시아의 중심부에 위치한 모나스(MONAS, National Monument)에는 라덴 아증 카르티니(Raden Adjeng Kartini)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 동상은 전통적인 크바야(Kebaya) 의상을 입은 카르티니가 책을 들고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걸어가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 동상의 앞뒤로는 인도네시아 전통 춤을 추는 여성과 피에타 형태로 수유를 하는 여성의 작은 동상이 위치하고 있다. 모나스는 인도네시아의 독립과 국가 정체성을 기념하는 장소로,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불어넣는 중요한 역사적 공간이다. 이곳에 카르티니의 동상이 자리한다는 것은 그녀가 인도네시아에서 대표적인 여성 인물로서 기억되며, 동시에 모범적이고 전형적인 여성상을 상징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모나스 동편에 위치한 카르티니 동상 (출처: Detik news)

카르티니는 인도네시아 여성 인권과 교육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매년 4월 21일 그녀의 생일을 기념하여 카르티니의 날(Hari Kartini)로 지정됐다. 이 날은 여성의 권리와 평등, 교육의 중요성을 되새기는 기념일로, 그녀가 추구했던 이상을 이어받아 현대 인도네시아 여성들에게 큰 영감을 주고 있다. 카르티니는 단순히 역사적인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성의 권리와 교육을 논의하는 중요한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카르티니의 날(Hari Kartini)은 단순히 과거를 기리는 데 그치지 않고, 카르티니의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며 인도네시아 여성들의 사회적 역할을 격려하는 중요한 문화적 행사로 자리 잡았다.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방식으로 기념되는 카르티니의 날은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카르티니의 날을 맞아 여성들은 전통 의상인 크바야를 입고 직장이나 학교에 출근하며 그녀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기린다. 이는 단순한 복식의 재현이 아니라, 전통 속에서 여성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현대적 가치를 더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집니다. 연극과 예술 공연이 열려 카르티니의 사상을 창의적인 방식으로 표현하며, 인도네시아 문화유산을 재조명한다. 


카르티니의 날은 인도네시아의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인 수카르노(Sukarno)는 카르티니를 "인도네시아 여성 해방의 선구자"로 칭하며 그녀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이 날을 공식적으로 제정했다. 이후에도 많은 정치 지도자들은 카르티니의 정신을 계승하며 여성의 권리와 사회적 역할을 강조해 왔습니다. 특히, 전 대통령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Megawati Sukarnoputri)는 한 연설에서 "카르티니의 용기와 지혜는 오늘날 인도네시아 여성들에게 여전히 깊은 영감을 주고 있다"며 그녀의 비전을 높이 평가했다. 이처럼 카르티니의 날은 단순한 기념일을 넘어 여성들이 자신감을 갖고 사회적 역할을 확장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로 자리 잡았다.


카르티니는 1879년 자바 섬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는 네덜란드 식민지 하의 지역 행정관으로, 귀족 가문으로서의 지위 덕분에 그녀는 당시 여성으로서는 드물게 네덜란드식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그녀는 학교에서 서구 철학과 문학을 접하며 지적 호기심을 키웠지만, 12세가 되자 귀족 여성들에게 강요된 '이소라스(pingitan)'라는 전통 관습에 따라 집에 머물러야 했다. 이로 인해 공식적인 학교 교육은 중단되었지만, 카르티니는 독서를 통해 스스로 공부를 이어갔고, 네덜란드 친구들과의 편지 교환을 통해 여성 권리와 사회적 변화에 대한 사상을 발전시켰다. 그녀는 자신의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지식을 갈망하며, 여성들도 교육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음을 확신했다.


24세에 카르티니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라덴 아딥아티 조요디닝라트와 결혼했지만, 이는 단순한 순응이 아니었다. 그녀는 결혼을 여성 교육에 대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할 기회로 삼았다. 남편은 그녀의 지적 열망과 교육 활동을 존중했으며, 그녀가 자바 여성들을 위한 학교 설립 계획을 추진하는 것을 지지했다. 이는 당시 전통적인 결혼 생활의 역할을 넘어 여성의 권리 증진을 위한 협력의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 카르티니의 학교 설립 노력은 그녀의 생애 동안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녀가 사망한 이후 그녀의 이름을 딴 "카르티니 학교"가 설립되어 그녀의 꿈을 이어갔다.


카르티니는 여성 권리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편지와 글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널리 알렸다. 그녀의 편지들은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 내 여성의 억압된 현실과 변화를 향한 열망을 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녀의 글은 단순한 감정적 호소에 그치지 않고, 교육과 지식을 통해 여성이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음을 논리적으로 주장했습니다. 이 편지들은 사후 『어둠에서 빛으로(Habis Gelap Terbitlah Terang)』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어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이는 단순히 그녀의 사상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이후 인도네시아 여성 운동의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 잡았다.


카르티니의 책 어둠에서 빛으로(Habis Gelap Terbitlah Terang) 표지


카르티니의 삶은 짧았다. 그녀는 1904년, 첫 아이를 출산한 후 불행히도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유산은 그녀의 삶의 길이를 훨씬 뛰어넘는다. 그녀의 사상은 단순히 개인적인 경험에 국한되지 않고,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여성 권리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편적 메시지로 남았다. 오늘날 카르티니의 날은 단순히 그녀의 생애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 여성의 권리와 평등을 지속적으로 논의하고 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카르티니는 전통적인 틀을 완전히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그 한계를 넘어서려고 했던 혁신적인 인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사상을 급진적으로 강요하지 않고, 교육과 설득을 통해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했다. 이러한 점에서 그녀는 단순히 여성 교육과 권리를 주장한 활동가를 넘어, 사회적 변화와 진보를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녀의 이야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수많은 여성들에게 영감을 주며, 여성 권리 증진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에서 카르티니를 기념하는 것은 여성 교육과 권리 향상을 위한 그녀의 공로를 인정하는 의미를 가지지만, 동시에 전형적인 여성상을 정립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카르티니는 종종 이상적인 여성의 상징으로 묘사되며, 교육받고 품위 있는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가정과 사회에서 조화를 이루는 여성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이러한 이미지가 강조될수록 여성의 역할이 특정한 틀 안에서 규정될 가능성이 있으며, 다양한 배경과 개성을 가진 여성들의 경험과 목소리를 배제할 우려가 있다. 즉, 카르티니를 기리는 과정이 여성의 권리를 강조하기보다는 특정한 여성성을 이상화하는 방식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르티니의 상징적 의미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당시 전통적인 가치관이 지배적이었던 시대에 여성 교육의 중요성을 주장하고, 인도네시아 여성들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녀의 사상과 편지는 현대 인도네시아 여성 운동의 기초를 닦았으며, 여성들이 교육을 받을 권리와 사회적 역할을 확대하는 데 기여했다. 따라서 카르티니를 기리는 것은 단순히 전형적인 여성상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권리와 기회를 확대하는 지속적인 움직임의 일부로 해석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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