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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텃밭회상일지9

6월의 토마토

by 구름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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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텃밭이 제일 풍성했던 때는 6월 말 즈음이었다. 작물들이 부지런히 결실을 맺었고 집으로 올 때면 비닐봉지를 든 나의 한 손이(두 손은 아니다..) 꽤 묵직했다. 성장이 느렸던 가지도 주렁주렁, 토마토도 주렁주렁. 오이도 주렁주렁. 늦게 심은 미니단호박과 애플수박도 소중한 열매를 달아주었다. 하나씩이지만...



6월 말 : 병의 출현


텃밭에서 토마토만큼 눈을 즐겁게 하는 작물이 있을까. 지금도 텃밭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주렁주렁 끝없이 달려 추욱 늘어진 방울토마토다. 이렇게나 많이 달린다고!?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고 열매가 달리는 와중에 끝에는 또 꽃이 피고. 방울토마토를 보고 있으면 부자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나의 자랑이었던 방울토마토를 정작 맛있게 먹은 기억은 크지 않다. 방울토마토가 하나 둘 익어가기 시작할 무렵, 텃밭에 병이 돌기 시작했으니까...


6월 24일. 토마토 하나가 시들어 있었다. 열매가 이제 막 홍조를 띠기 시작했는데... 검색해 보니 시들음병? 비슷해 보였다. 균이 흙을 통해서 옮기기 때문에 발병했을 때는 이미 늦다고... 바로 뽑아 버릴까 했지만 혹시 몰라 처음엔 그냥 두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른 토마토도 같은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속이 쓰리지만 더 번지지는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병든 토마토를 뽑아 버렸다. 하지만 이 불길한 예감이란... 결국 나는 밭에 갈 때마다 토마토를 하나씩 뽑아 버려야 했고 그렇게... 토마토는 모두.. 사라졌다. 이웃들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루는 옆옆밭 처음 뵙는 어르신이 정중하게 물으셨다. "사모님, 우리 집 토마토 왜 이러는지 아시나요?" 나는 병이 어쩌고 저쩌고 대충 아는 걸 말씀드렸다. 그러자 어르신은 가던 길 가시며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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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토마토는 꽤 극단적인 면이 있다. 어릴 때에도 어떤 해는 토마토가 넘쳤고 어떤 해는 하나도 없었다. 넘칠 때는 손이 안 가고 없으면 이상하게 찾게 되는 게 토마토였다. 그때의 토마토는 대체로 설탕에 절여 먹거나 갈아먹는 게 다였는데 그래도 남으면 엄마는 토마토잼을 만들었다. 찐득하게 졸아져 집고추장 같은 검붉은 색에다 오독오독 씹히는 씨까지. 어린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결국은 냉장고에 오래 남아 엄마만 먹는 게 토마토잼이었다. 이제 엄마는 토마토잼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토마토가 남으면 끓이고 갈아 냉동실에 넣어뒀다 우리에게 보내준다. 우린 그걸로 파스타를 만들고 피자를 만들고 라자냐를 만든다. 토마토의 활용은 전보다 다양해졌지만 그래도 가끔 생각나는 건 토마토설탕절임의 달달한 국물과 오독오독 달큼새큼, 맛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잘 모르겠는 토마토잼을 먹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다. 쓰다 보니 외면했던 그 토마토잼이 다시 먹고 싶어진다. 지금이라면 내 입맛에 꽤 맞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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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일 년 동안의 텃밭생활을 돌아보며 쓰고 있습니다.

초초초초보의 일지이니 틀린 정보가 있을 수 있고 전문가에게는 난이도가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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