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
"자, 이제 시 낭송을 해보겠습니다. 누가 먼저 해볼까요?"
"나가 먼저 할라요."
"네. 우리 홍일점, 홍 이장님. 먼저 시를 낭송해 보시겠습니다. 다들 눈 동글, 귀 쫑긋. 아시죠?"
"아따, 우리가 유치원생도 아니고 뭔 말이 많아요. 선생님. 얼렁 하씨요."
곱슬머리 할머니가 말했다.
"네네. 만옥 씨 우리 홍 이장님 다음에 만옥 씨 준비해 주세요. 자 그럼 홍 이장님 앞으로 나오시죠."
홍 이장님은 셔츠 앞에 꽂혀 있던 선글라스를 빼 들어 쓰면서 앞으로 나왔다. 무더운 날씨에 베레모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모자 주변으로 검은색 머리카락이 가지런하게 나와 있었다. 베레모 모자와 얇은 여름 바지를 깔맞춤 했는지 모두 진한 고동색에 스트라이프 무늬가 있었다. 홍 이장님은 노트를 펼치고 금자 씨를 향해 윙크를 하더니 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제목: 너는 꽃, 나는 나비.
너는 장미꽃 나는 호랑나비
너는 붉고 붉은 장미꽃
나는 얼룩덜룩 호랑나비
꽃을 찾아 날아든 나비는
꿀만 쪽쪽 빨고 가버린다.
장미꽃은 떠나버린 나비가 서운해
붉은 이파리 하나 둘 떨어뜨린다.
나비는 그것도 모른 채
그 옆에 있는 채송화 꽃으로 가버린다.
아~ 아~ 아~
너무한 님아
질투에 눈이 먼 그대여
나를 다시 불러주오.
가시 돋친 그대의 두 팔과
그대의 불타는 꽃잎에
나의 정열을 바치겠소.
내가 가시에 찔려 쓰러지더라도
그댈 향한 내 연모는 쓰러지지 않으리
언제쯤 이 마음을 알아주련가?
나는 꽃, 너는 나비
격정적인 목소리로 시를 읊은 홍 이장님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노트를 덮으며 금자 씨를 한번 더 쳐다보았다.
"자, 모두 박수~~ 홍 이장님 표현이 살아있어요. 은유법도 정말 잘 쓰셨고요. 메타포라고 하죠? 정말 잘 들었습니다. 정열이 느껴지는 아주 뜨거운 시였습니다. 역시 우리 홍일점. 홍이장님."
시 선생님이 박수를 치며 칭찬을 쏟아냈다.
"아 뭐시여. 바람둥이여? 여기 갔다 저기 갔다 꿀만 쪽쪽 빨아먹고 가는 게 바람둥이 아니고 뭐시여?"
"뭐여? 이 할망구가 말이면 단 줄 아나."
"아, 만옥 씨, 우리 감상평은 서로 좋은 말로, 긍정적인 언어로 해주기로 했잖아요. 그렇죠?"
"아니 근디 바람둥이 영감들은 다들 몹쓸 놈들인 게 그라지요. 우리 영감이 그래가지고 내가 얼마나 맘고생을 했는디."
"아, 그러셨구나.... 그래도 긍정적인 피드백 한 마디씩, 우리 시교실 규칙 아시죠? 자, 만옥 씨부터 긍정적인 감상평 부탁합니다.
홍 이장님을 눈을 흘기며 보던 만옥 씨가 흠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 저…. 뭐시냐…. 한 편의 드라마를 본 것 같았습니다. 거 아침드라마 있지라? 여자들끼리 한 남자를 사이에 두고 머리채 잡고 싸우는 거 있잖아요. 아 근디 지고지순한 남정네의 사랑이 까시에 찔려도 막 직진하는 것 같았습니다요.”
“와우, 만옥 씨 감상평도 너무 좋았습니다. 자 다음은 구옥 씨?”
왼쪽 편에서 가만히 앉아 있던, 새하얀 파마머리의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 그라니께…. 좋았습니다.”
“음… 어떤 부분이 좋으셨어요?”
“그냥, 다 좋았습니다.”
“워메 답답한그. 아따 형님. 그냥 다 좋아다고 하면 안 된다니께요. 뭐시 좋았는지 딱딱 구체적으로다가 말하라고요.”
“아 몰라. 그냥 다 좋게만 들립디다.”
“네네. 싸우지들 마시고요. 우리 금자 씨는 어떠셨어요?”
“아 네. 저는요, 우리 홍 이장님께서 오늘 시를 발표하시려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딱 준비하셨나? 생각했지요. 마치 호랑나비 한 마리처럼 준비를 하시고요, 또 낭독할 때 목소리도 아주 질주하는 사자처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셔서 훨씬 더 생동감 있었습니다.”
“워매, 금자 씨. 눈치챘는갑내요. 오늘 나가 쪼까 신경 좀 썼는디.”
“아따 그 할배 더워죽겄구만 그런 모자를 쓰고 와서 난리여.”
“뭐여? 이 할망구가 패션을 알어? 어?”
“자자, 싸우지들 마시고. 다음 만옥 씨 낭독할 준비되었나요?”
"아 네. 저도 한번 낭독해 볼게요이."
이번엔 곱슬머리 할머니가 앞으로 나가더니 노트를 펼쳤다.
"제목 : 호랑나비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밭으로 날아왔다
그런데 도대체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하루 이틀 기다려도 사람이 없다
호랑나비야 날아올라라
하늘 높이 날아올라라
구름 뒤에 숨어라
나와 함께 놀자, 호랑나비야."
"아 뭐시여. 앗싸 호랑나비 베낀 거 아니여? 그러다 김흥국이한테 고발당하네."
이번엔 홍 이장님이 만옥 씨를 향해 소리쳤다.
"뭔 소리여? 호랑나비 그 노래랑 내가 쓴 시가 뭐가 같다고 그래. 그냥 쪼까 참고만 한 거구만."
"그게 뭔 참고하는 거여? 완전히 베껴 쓴 거구만. 거 뭐시냐.... 거 있잖아, 거 막 가수들도 노래 막 베껴서 만들어가지고 막 난리들 나잖어. 거... 뭐더라...."
"표절이요?"
"아 맞아요. 역시 선생님 똑똑하당께. 표절이지 표절."
"아니 이 영감탱이가 말이면 단 줄 아나. 표절이라니!!"
"자자자. 또 왜 그러실까. 우리 함께 긍정적으로 감상평 하기로 했잖아요. 그쵸? 홍 이장님? 이건 표절이 아니라.... 음.... 아, 오마주. 맞아요 오마주라고 보면 되겠네요."
"뭐?? 오마주? 그게 뭐대요, 선생님?"
조용히 듣고 있던 구옥 씨가 물었다.
"오마주는 그러니까.... 존경하는 사람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서 그.... 약간 비슷하게? 쓰는 걸 말해요. 우리 만옥 씨는 그러니까 김흥국 씨의 호랑나비 노래를 오마주 한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아, 맞아요. 오마주."
"에잇, 오마주가 아니라 오미자 엿이나 먹어라."
"아니, 이 바람둥이 영감탱이가 뭐라는 겨??"
“뭐? 바람둥이? 이 할망구가 말이면 단 줄 아나?”
홍 이장님과 만옥 씨가 말끝마다 싸우는 바람에 구옥 씨와 금자 씨의 시는 들어보지도 못하고 수업이 끝났다. 금자 씨는 아쉬운 듯 노트를 가방에 넣고 지아의 손을 끌었다.
"지아야, 가자. 짜장면 먹으러."
"할머니, 끝났어?"
"응, 저 둘이 싸우고 있으믄 끝난 거여. 저러다가 또 엄청 친한 척하고 그래. 맨날 저래."
금자 씨는 앞에 앉은 구옥 씨에게 손을 흔들고는 교실을 나갔다. 에어컨 바람이 강한 교실에 있다 나오니 머리가 띵했다. 지아는 이렇게 시끄럽고 정신없는 시 교실에 할머니가 왜 다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할머니."
"응?"
"왜 여기 다녀?"
"왜 시 교실 다니냐고?"
"응."
"으응, 할머니 꿈이 시인이었거든."
"할머니도 꿈이 있었어?"
"그럼, 있었지. 근디 할아버지랑 결혼하고, 네 엄마 낳고 먹고 사느라 바빠서 시도 못 쓰고 살았제. 근디 시방은 시간도 많고, 할 일도 없고. 할머니가 죽기 전에 꼭 시인이 되볼라고 그러는 거여.
"아...."
"우리 지아는 꿈이 뭐대?"
"꿈?"
"응, 꿈. 바라는 거. 하고 싶은 거. 되고 싶은 그런 거?"
"꿈... 손뇨.... Sogno...."
"손녀? 할머니 손녀는 우리 지아인데?"
"아, 꿈을 이탈리아 말로 '손뇨'라고 말해."
"그래? 아따 거 참 신기하네. 손녀는 한국말로 우리 지아가 할머니 손녀인데. 우리 지아가 할머니 꿈인가?"
금자 씨는 지아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 말이 괜스레 좋아서 지아도 빙그레 따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