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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17. 2024

6. 너는 꽃, 나는 나비

<소설>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

"자, 이제 시 낭송을 해보겠습니다. 누가 먼저 해볼까요?"

"제가 먼저 할게요."

"네. 우리 홍일점, 홍 이장님. 먼저 시를 낭송해 보시겠습니다. 다들 눈 똥글, 귀 쫑긋. 아시죠?"

"아따, 우리가 유치원생도 아니고 뭔 말이 많아요. 선생님. 얼렁 하씨요."

아까부터 말이 많던 곱슬머리 할머니가 말했다.

"네네. 만옥 씨 우리 홍 이장님 다음에 만옥 씨 준비해 주세요. 자 그럼 홍 이장님 앞으로 나오시죠."

홍 이장님이라는 할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더니 노트를 펼치고 읽기 시작했다.

 

"제목: 너는 꽃, 나는 나비.

너는 장미꽃 나는 호랑나비
너는 붉고 붉은 장미꽃
나는 얼룩덜룩 호랑나비
꽃을 찾아 날아든 나비는
꿀만 쪽쪽 빨고 가버린다.
장미꽃은 떠나버린 나비가 서운해
붉은 이파리 하나 둘 떨어뜨린다.
나비는 그것도 모른 채
그 옆에 있는 채송화 꽃으로 가버린다.
아~ 아~ 아~
너무한 님아
나는 꽃, 너는 나비"


홍 이장님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금자 씨를 한번 쳐다보더니 노트를 덮었다.


"자, 모두 박수~~ 홍 이장님 표현이 살아있어요. 은유법도 정말 잘 쓰셨고요. 메타포라고 하죠? 너무 잘 쓰셨습니다. 역시 우리 홍일점. 홍이장님."

시 선생님이 박수를 치며 칭찬을 쏟아냈다.

"아 뭐시여. 바람둥이여? 여기 갔다 저기 갔다 꿀만 쪽쪽 빨아먹고 가는 게 바람둥이 아니고 뭐시여?"

"뭐여? 이 할망구가 말이면 단 줄 아나."

"아, 만옥 씨, 우리 감상평은 서로 좋은 말로, 긍정적인 언어로 해주기로 했잖아요. 그쵸?"

"아니 근디 바람둥이 영감들은 다들 몹쓸 놈들인 게 그라지요. 우리 영감이 그래가지고 내가 얼마나 맘고생을 했는디."

"아, 그러셨구나.... 자 그럼. 우리 만옥 씨 준비 되셨나요?"

"아 네. 저도 한번 낭독해볼게요이."

이번엔 곱슬머리 할머니가 앞으로 나가더니 노트를 펼쳤다.



"제목 : 호랑나비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밭으로 날아왔다
그런데 도대체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하루 이틀 기다려도 사람이 없다
호랑나비야 날아올라라
하늘 높이 날아올라라
구름 뒤에 숨어라
나와 함께 놀자, 호랑나비야."



"아 뭐시여. 앗싸 호랑나비 베낀 거 아니여? 그러다 김흥국이한테 고발당하네."

이번엔 홍 이장님이 만옥 씨를 향해 소리쳤다.

"뭔 소리여? 호랑나비 그 노래랑 내가 쓴 시가 뭐가 같다고 그래. 그냥 쪼까 참고만 한 거구만."

"그게 뭔 참고하는 거여? 완전히 베껴 쓴 거구만. 거 뭐시냐.... 거 있잖아, 거 막 가수들도 노래 막 베껴서 만들어가지고 막 난리들 나잖어. 거... 뭐더라...."

"표절이요?"

"아 맞아요. 역시 선생님 똑똑하당께. 표절이지 표절."

"아니 이 영감탱이가 말이면 단 줄 아나. 표절이라니!!"

"자자자. 또 왜 그러실까. 우리 함께 긍정적으로 감상평 하기로 했잖아요. 그쵸? 홍 이장님? 이건 표절이 아니라.... 음....  아, 오마주. 맞아요 오마주라고 보면 되겠네요."

"뭐?? 오마주? 그게 뭐대요, 선생님?"

조용히 듣고 있던 구옥 씨가 물었다.

"오마주는 그러니까.... 존경하는 사람의 작품에 영향을 받아서 그.... 약간 비슷하게? 쓰는 걸 말해요. 우리 만옥 씨는 그러니까 김흥국 씨의 호랑나비 노래를 오마주 한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아, 맞아요. 오마주."

"에잇, 오마주가 아니라 오미자나 먹어라."

"아니, 이 바람둥이 영감탱이가 뭐라는 겨??"

홍 이장님과 만옥 씨가 말끝마다 싸우는 바람에 구옥 씨와 금자 씨의 시는 들어보지도 못하고 수업이 끝났다. 금자 씨는 아쉬운 듯 노트를 가방에 넣고 지아의 손을 끌었다.


"지아야, 가자. 짜장면 먹으러."

"할머니, 끝났어?"

"응, 뭐 저기서 둘이 싸우고 있으믄 끝난 거야. 저러다가 또 엄청 친한 척하고 그래. 맨날 저래."

금자 씨는 앞에 앉은 구옥 씨에게 손을 흔들고는 교실을 나갔다. 에어컨 바람이 강한 교실에 있다 나오니 머리가 띵했다. 지아는 이렇게 시끄럽고 정신없는 시 수업에 할머니가 왜 다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할머니."

"응?"

"왜 여기 다녀?"

"왜 시 수업 듣느냐고?"

"응."

"응, 할머니 꿈이 시인이었거든."

"할머니도 꿈이 있었어?"

"그럼, 있었지. 근데 할아버지랑 결혼하고, 네 엄마 낳고 먹고 사느라 바빠서 시도 못 쓰고 살았지. 근데 지금은 시간도 많으니까. 할머니가 죽기 전에 꼭 시인이 되볼라고 그래."

"아...."

"우리 지아는 꿈이 뭐야?"

"꿈?"

"응, 꿈. 바라는 거. 하고 싶은 거. 되고 싶은 그런 거?"

"꿈... 손뇨....Sogno...."

"손녀? 할머니 손녀는 우리 지아인데?"


"아 할머니 꿈을 이탈리아 말로 '손뇨' 라고 말해."

"그래? 거 참 신기하네. 손녀는 한국말로 우리 지아가 할머니 손녀인데. 우리 지아가 할머니 꿈인가?"

금자 씨는 지아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 말이 괜시리 좋아서 지아도 빙그레 따라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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