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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24. 2024

7. 시골 아이들 1.

<소설>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 

할머니의 마지막 편지를 읽던 지아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할머니가 느꼈을 외로움이 진하게 전해졌다. 그리고 자신을 향한 할머니의 사랑과 애정을 글자마다 느낄 수 있었다. 지아는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사그라들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때 집 밖에서 달이가 왈왈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나야 나, 진우.”

“지아 언니~ 나도 왔어!”

지아는 반가운 목소리에 얼굴에 남아있는 눈물을 닦은 후 현관문을 열었다. 거기엔 키가 훌쩍 큰 진우와 진주가 서 있었다.  

“거봐, 지아 언니일 거라고 내가 말했지?”

진주가 진우의 옆구리를 찌르며 말했다. 

“정말 오랜만이야. 어서 들어와. 내가 온 건 어떻게 알았어?” 

“아까 할머니 집으로 차 들어오는 걸 진주가 봤대. 긴가민가 해서 와봤더니, 정말 너네?”

“언니, 언니는 더 이뻐졌네? 그동안 왜 이렇게 안 왔어~ 언니 많이 기다렸는데. 아참, 할머니는 어때? 안 그래도 온 동네 사람들이 우리 금자 할머니 걱정하고 있어. 그때 할머니가 텃밭에 있다가 쓰러지셨는데 우리 엄마가 옆에 있었거든. 119 부르고 난리도 아니었어.”

진주가 수지 않고 말을 쏟아내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 뒤를 따라 진우가 들어오더니 식탁에 가지고 온 물건을 내려놓았다. 

“집이 생각보다 시원한데? 혹시나 하고 먹을 거 좀 싸왔어. 할머니도 안 계셔서 집에 먹을 게 없을 것 같아서. 우리 엄마 이제 김치도 곧잘 해.”

“정말 고마워, 잘 먹을게. 우주도 잘 있어? 

“우주도 잘 있고, 금성이, 목성이도 잘 있어.” 

“금성이 목성이? 우주가 아가들을 낳은 거야?” 

“응, 몇 년 전에. 근데 아빠가 다른 집에 보낼 거래. 난 싫은데.”

“한번 보러 가야겠네. 우리 별이의 손자손녀들.” 

“넌, 옛날보다 얼굴이 좋아 보인다? 옛날엔 맨날 울상이었는데.”

“내가 언제 그랬어….”

“기억 안 나? 뭘 물어봐도 대답도 잘 안 하고. 아 그래도 여전히 예쁘네.”

진우가 지아의 눈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야, 오빠. 느끼하게 왜 그래? 언니 피곤하겠다. 집에 그만 가자. 언니, 우리 오빠 완전 바람둥이야. 넘어가지 마.” 

“야, 내가 무슨 바람둥이야. 너나 조심해.”

진우와 진주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지아는 씽긋 웃음이 났다.

“넌 또 왜 웃냐?”

“너희들 여전하구나.”

“뭐, 남매가 그렇지 뭐. 쟤 요즘 완전 바람 들었어. 가수 되겠다고 오디션 보러 다니잖아.” 

“어머, 정말? 진주 너무 멋지다.”

“멋지긴, 맨날 물 말아먹고 있어. 이 시골에서 빨리 도망쳐야 하는데 말이야.”

“진우 넌? 뭐 하는데?”

“나? 나 그냥 조그마한 가게하고 있어.” 

“우와, 사장님이야?”

“우리 오빠 아주 코딱지만 한 가게 사장이지.”

“야, 이 시골에서 우리 가게 없으면 할머니, 할아버지들 난리 난다고.”

“어련하시겠어~” 

진우, 진주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아이들을 처음 만난 날이 떠올랐다. 친구 하나 없던 지아에게 좋은 추억을 만들어준 시골 아이들이었다. 




"하이고 덥다. 조금 쉬었다가 진우네 집에 갈 건데, 지아도 같이 갈래?"

"왜요?"

"아, 할머니가 거 뭐시냐... 농촌 돌봄 봉사자거든."

"그게 뭐예요?"

"그게 뭐냐면.... 음.... 우리 지아도 한국 사람인데 이탈리아에 살지? 여기에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시집와서 사는 사람들이 있어. 이주민 여성이라고 하는데…. 아까 진우 봤지? 진우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거든. 그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잘 살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고, 나이 많은 노인들 집에 찾아가서 청소도 해주고, 반찬도 만들어 주고. 뭐 그런 거야"

”시집은… 할머니가 준 책이 시집 아니야?”

”시만 써 놓은 책도 시집이고…. 거 뭐시냐…. 시집온 걸 뭐라 말해야 하지? 결혼, 여자가 결혼하는 걸 “시집간다” 그러고 남자는 “장가든다”라고 하는 거야. “

”결혼인데 왜 시집을 간다고 해? “

”어… 아따 우리말 진짜 어렵네. 그냥 생각 없이 막 쓰던 말을 설명할려니까 진짜 어렵네. 선생은 아무나 하는 거시 아니네.

"근데 왜 도와줘?"

"왜냐믄…. 우리 동네 사람이니까 도와주는 거여. 그리고 돌봄 봉사자 신청하면 나라에서 돈이 쪼금 나오거든. 놀면 뭐 해. 할머니는 아직 건강하니까 이런 일이라도 하믄서 사람도 도와주고, 돈도 버는 거여. 진우 엄마도 한글 공부할 때 내가 도와줬어. 처음에 왔을 때 한국말을 하나도 못했거든. 지금은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지아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금자 씨에게 질문을 쏟아내며 엄마와 아빠가 이탈리아에 처음 왔을 때를 떠올렸다. 엄마와 아빠도 이탈리아 말을 전혀 못 한 채 이탈리아에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살아내기 위해 언어를 배우는 일은 생존의 일이었다. 일상적인 일도 생존과 연결되면 즐거움을 훌쩍 넘어 의무와 책임이 진하게 따라왔다. 지아는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썼을 진우네 엄마가 궁금해졌다. 

“네, 나도 갈게요.”

지아가 별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무표정으로 묻는 말에도 대답을 잘하지 않던 지아가 먼저 질문을 쏟아내니 금자 씨는 마음이 몽글몽글 해졌다. 

“지아야, 할머니가 쓴 시 들어볼래?”

금자 씨가 손가방에서 노트를 꺼내 펼치며 지아에게 내밀었다. 지난 수업 시간에 쓴 시였다. 홍이장님과 만옥 씨가 다투는 바람에 발표할 기회를 놓친 서운한 마음을 손녀 앞에서 달래 볼 참이었다.

“할머니가 읽어볼까?”

“네.”

금자 씨는 목을 흠 흠 가다듬더니, 여러 청중 앞에서 낭송하듯 공손하게 노트를 펼치고 시를 읊었다. 



제목: 사람과 꽃


한평생 꽃 한번 피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울고 웃고 싸우고 사랑하고 

그 끝에 피어난 찰나의 꽃 같은 청춘은 

열매를 맺고 키우느라 

하나 둘 떨어지는 

꽃잎을 알아채지 못하고 

나를 닮은 씨앗이 바람 따라 나비 따라 저 멀리 옥토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다시 떨어지는 꽃잎에도 아랑곳없다


그것이 꽃의 시간 

이것이 사람의 인생



지아는 금자 씨의 나지막한 소리를 들으며 금자 씨가 앉아있는 벤치 너머로 복숭아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진 못했지만, 거기엔 할머니의 인생과 엄마의 인생이 모두 담긴 것 같았다. 

"브라바, 판타스티꼬!"

지아가 수줍게 말했다. 

"으잉? 판타스틱하다고? 좋은 말인 거 같은데?"

"엄청 좋다는 뜻이에요."

"아따, 부끄럽네. 손녀 앞에서 할머니가 진짜 웃기지."

"할머니 멋있어. 진짜 시인 같아요."

"그래? 고맙네. 우리 손녀." 

금자 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천천히 노트를 덮고 가방에 살며시 밀어 넣었다. 


늦은 오후, 뜨거웠던 햇살이 부드럽게 변할 때쯤 금자 씨와 지아는 진우 집으로 향했다. 금자 씨 집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다섯 번째 집이 바로 진우의 집이었다. 금자 씨는 익숙하게 집 대문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진우야, 진주야~"

금자 씨의 부르는 소리에 누군가가 창문을 빼꼼히 열고 쳐다보았다. 

"진주아, 엄마 있어?"

"할머니, 엄마 식당에 일하러 갔어요."

"아빠는?"

"아빠는 논에 갔어요."

"오빠는? 아직 안 왔어?"

"예."

"진주 혼자 있는 거야?"

"네." 

진우와 눈매가 닮은 여자 아이가 큰 눈을 끔뻑이며 지아와 금자 씨를 쳐다보았다. 

"자, 김치. 냉장고에 넣어둬. 엄마는 언제 오는데?"

"모르겠어요." 

"심심하면 할머니 집에 갈까? 여기 언니도 있는데." 

"어.... 모르겠어요." 

"가자. 할머니네 가서 저녁 먹자. 혼자 저녁까지 어찌 기다리려고. 할머니가 엄마한테 연락할게. 

"네."

조금 후에 진주가 슬리퍼를 끌며 금자 씨를 따라나섰다. 이 작은 마을에서 십 대는 진우와 진주 두 아이뿐이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에는 모든 마을 사람들이 진우와 진주를 돌봐주다시피 했다. 필리핀 사람인 엄마를 닮아 외모가 다른 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몇십 년 만에 이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에겐 자랑이자 희망이었다. 

"진주야 여기는 할머니 손녀, 지아 언니야. 언니랑 같이 놀면 되겠네."

"언니, 안녕." 

진주는 호기심 어린 눈을 크게 끔뻑거리며 지아를 쳐다보았다. 

"어, 안녕." 

“언니 어디서 왔어?”

“나? 난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왔어.”

“좋은 동네 사네. 언니 근데 몇 살이야?”

“9월에 생일 지나면 15살이야.”

“어, 우리 오빠랑 동갑이네?”

“동갑이 뭐야?”

“동갑은 말이야 나이가 같다는 거야. 언니 한국말 잘 모르는구나?”

“응, 난 밀라노에서만 살았거든.”

“아하, 나도 엄마는 필리핀 사람인데 필리핀 말 잘 못해. 난 언니보다 2살 어려.”

지아와 진주가 재잘거리는 동안 집에 도착했다. 거기서 별이를 발견한 진주는 신이 나서 별이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왜 이름을 별이라고 지었는지, 어디서 살다 온 것인지, 무슨 종인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별이와 함께 노는 동안 어색했던 공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야, 노진주!"

집 대문으로 진우가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며 진주를 불렀다.

"어, 노진우다.”

"여기서 뭐 해?"

"나? 놀아. 별이랑, 지아 언니랑. 넌 왜 인제 오냐?”

진주의 질문에 진우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별이를 보며 말했다. 

"별이? 어? 강아지가 있네? 나 이 강아지 며칠 전에 봤는데. 왜 할머니네 집에 있지?"

"어.... 우리 키우기로 했어. 주인이 없는 것 같아서...."

"아~ 그래? 이름이 별이야?"

진우가 자연스럽게 대문을 넘어 마당을 가로질러 안으로 들어왔다. 지아는 타인과의 경계가 매우 분명한 곳에서 나고 자랐기에 이런 불분명한 넘나듦이 어색했다. 하지만 여기는 지아의 집이 아니라 할머니의 집이었다. 불편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지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 눈이 별 같아서."

"안녕, 별아.”

진우가 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이탈리아에서 왔다며?"

"응? 응."

"근데 학교 안 다녀?"

"응... 학교는 방학이야."

" 6월인데 벌써 방학이라고? 우리는 아직 한 달이나 더 남았는데."

"우린 6월부터 방학이야."

"좋겠다. 방학도 빨리 시작하고. 근데 여기 왜 왔어?"

"응, 그냥. 할머니 보러...."

"그럼 방학 끝나면 가겠네?"

"응? 응... 아마도."

"언니, 언니 걸그룹 누구 좋아해?"

"어... 난 BTS... 걸그룹은 잘 몰라."

"이탈리아에서도 BTS 알아?"

"요즘 조금씩 인기 좋아지던데."

"거긴 학교 어때?"

"학교?"

"응. 거기도 학교 거지 같냐?"

"음... 거지 같은 게 엄청 안 좋다는 말이지?"

"응, 지랄 같다. 뭐 그거랑 비슷하지."

"응, 뭐.... 학교가 다 그렇지 뭐."

"언니 나랑 토요일에 코노 갈래?"

"그게 뭐야?"

"코노 몰라?"

"그게.... 뭐야? 영어야?"

"오빠, 코노가 영어야? 코인 노래방…. 코인은 영어 맞는데 노래방은 영어가 아니고. 이거 뭐지? 아 암튼 이 언니 코노를 모르다니. 큰일 날 사람이네. 그리고 우리 영어 잘 못해.”

"아,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고 해서 영어 잘하는 줄 알고...."

"언닌 한국 사람인데 한국말 잘 못 한다며."

“야, 노진주. 말 막 한다.”

"언니, 미안."

"아니야. 사실인데 뭐.”

“근데 말 잘하는데?

"말은 해. 읽고 쓰는 게 어려워."

"그렇군. 언니 일단 코노를 터야 해. 오빠 같이 갈래?”

“미쳤냐? 내가 거길 왜 가?”

“언니, 같이 가자. 응? 언니가 간다고 하면 우리 엄마도 허락할걸?”

"어... 할머니한테 물어보고." 

“오케이, 금자 씨부터 꼬셔야지.”

“야, 노진주. 작작 좀 해라.”

“뭐, 같은 동네 언니동생이 얼마나 그리웠다고~~ 우리 동네엔 나랑 오빠뿐이거든. 진짜 짜증 나!”

"얘들아, 밥 먹자. 진우도 왔네? 어서 들어와."

금자 씨의 말에 지아와 진주, 진우는 손을 털고 일어났다. 뜨거운 태양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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