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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량 Apr 24. 2024

7. 지아와 진주

<소설> 나의 시인 할머니 금자 씨 

집에 도착하니 별이가 꼬리를 흔들며 뛰어왔다. 지아는 그런 별이를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요놈, 벌써 우리 집이 니네 집 된 것 같네? 밥도 다 먹었네. 우리 지아 친구가 둘이나 생겼네." 

금자 씨가 벤치에 앉으며 말했다. 

"하이고 덥다. 할머니 조금 쉬었다가 진주네 집에 갈 건데, 지아도 같이 갈래?"

"왜요?"

"아, 할머니가 거 뭐시냐... 농촌 돌봄 봉사자거든."

"그게 뭐야?"

"아, 그게 뭐냐면.... 음.... 우리 지아도 한국 사람인데 이탈리아에 살지? 여기에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시집와서 사는 사람들이 있어. 이주민 여성이라고 하는데…. 아까 진주 봤지? 진주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거든. 그 사람들이 우리 동네에 잘 살 수 있게 도와주기도 하고, 나이 많은 노인들 집에 찾아가서 청소도 해주고, 반찬도 만들어 주고. 뭐 그런 거야"

”할머니 시집은… 할머니가 준 책이 시집 아니야?“

”아, 시만 써 놓은 책도 시집이고…. 거 뭐시냐…. 시집온 걸 뭐라 말해야 하지? 결혼, 여자가 결혼하는 걸 “시집간다” 그러고 남자는 “장가든다”라고 하는 거야. “

”결혼인데 왜 시집을 간다고 해? “

”어… 그러니까…. 하이고 우리말 진짜 어렵네. 그냥 생각 없이 막 쓰던 말을 설명하려니까 진짜 어렵네. 선생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

"근데 왜 도와줘?"

"왜냐면.... 뭐 우리 동네 사람이니까 도와주는 거야. 그리고 돌봄 봉사자 신청하면 나라에서 돈이 쪼금 나오거든. 놀면 뭐 해. 할머니는 아직 건강하니까 이런 일이라도 하면서 사람도 도와주고, 돈도 버는 거지. 진주 엄마도 한글 공부할 때 내가 도와줬어. 처음에 왔을 때 한국말을 하나도 못했거든. 지금은 얼마나 잘하는지 몰라."

지아는 어린아이가 된 것처럼 금자 씨에게 질문을 쏟아내며 엄마와 아빠가 이탈리아에 처음 왔을 때를 떠올렸다. 엄마와 아빠도 이탈리아 말을 전혀 못 한 채 이탈리아에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살아내기 위해 언어를 배우는 일은 생존의 일이었다. 일상적인 일도 생존과 연결되면 즐거움을 훌쩍 넘어서서 의무와 책임이 진하게 따라오는 일이었다. 지아는 낯선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를 썼을 진주네 엄마가 궁금해졌다. 

“네, 나도 갈게요.”

지아가 별이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지아야, 할머니가 쓴 시 들어볼래?”

금자 씨가 손가방에서 노트를 하나 꺼내 펼치며 지아에게 내밀었다. 수업 시간에 쓴 시였다. 홍이장님과 만옥 씨가 다투는 바람에 발표할 기회를 놓친 서운한 마음을 손녀 앞에서 달래볼 참이었다.

“할미가 읽어볼까?”

“네.”

금자 씨는 목을 흠흠 가다듬더니, 여러 청중 앞에서 낭송하듯 공손하게 노트를 펼치고 시를 읊었다. 


"제목: 사람과 꽃

한평생 꽃 한번 피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울고 웃고 싸우고 사랑하고 
그 끝에 피어난 찰나의 꽃 같은 청춘은 
열매를 맺고 키우느라 
하나둘 떨어지는
꽃잎을 알아채지 못하고 
나를 닮은 씨앗이 바람 따라 나비 따라 저 멀리 옥토에 떨어져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다시 떨어지는 꽃잎에도 아랑곳없다
그것이 꽃의 시간 
이것이 사람의 인생"



금자 씨의 나지막한 소리를 들으며 금자 씨가 앉아있는 벤치 너머로 복숭아꽃이 떨어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시의 내용을 모두 이해하진 못했지만, 거기엔 할머니의 인생과 엄마의 인생이 모두 담긴 것 같았다. 

"브라바, 판타스티꼬!"

지아가 수줍게 박수를 치며 말했다. 

"으잉? 판타스틱하다고? 좋은 말인 거 같은데?"

"응. 엄청 좋다는 뜻이에요."

"아이고 부끄럽네. 손녀 앞에서 할머니가 진짜 웃기지."

"할머니 멋있어. 진짜 시인 같아요."

"그래? 고맙네. 우리 손녀." 

금자 씨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소중한 보물을 다루듯 천천히 노트를 덮고 가방에 살며시 밀어 넣었다. 

늦은 오후, 뜨거웠던 햇살이 부드럽게 변할 때쯤 금자 씨와 지아는 진주 집으로 향했다. 금자 씨 집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다섯 번째 집이 바로 진주의 집이었다. 금자 씨는 익숙하게 집 대문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진주야, 진우야~"

금자 씨의 부르는 소리에 누군가가 창문을 빼꼼히 열고 쳐다보았다. 

"진우아, 엄마 있어?"

"엄마 식당에 일하러 갔어요."

"아빠는?"

"아빠는 논에 갔어요."

"누나는? 아직 안 왔어?"

"예."

"진우 혼자 있는 거야?"

"네." 

진주와 닮은 남자아이가 큰 눈을 끔뻑이며 지아와 금자 씨를 쳐다보았다. 

"자, 김치. 냉장고에 넣어둬. 엄마는 언제 오는데?"

"모르겠어요." 

"진우 혼자 안 심심해?"

"어... 게임하고 있는데요."

"어.... 그래... 심심하면 할머니 집에 갈까? 여기 누나도 있는데." 

"어.... 모르겠어요." 

"가자. 할머니네 가서 저녁 먹자. 혼자 저녁까지 어찌 기다리려고. 할머니가 엄마한테 연락할게. 

"네."


조금 후에 진우가 슬리퍼를 끌며 금자 씨를 따라나섰다. 자연스럽게 금자 씨의 손을 잡는 모습이 하루 이틀 본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작은 마을에서 유일하게 초등학생인 진우는 모든 마을 사람들의 아이나 다름없었다. 그전에는 진주가 그랬었다. 필리핀 사람인 엄마를 닮아 외모가 다른 건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몇십 년 만에 이 마을에서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에겐 자랑이자 희망이었다. 

"진우야 여기는 할머니 손녀, 지아 누나야. 누나랑 같이 놀면 되겠네."

"누나 안녕." 

진우는 호기심 어린 눈을 크게 끔뻑거리며 지아를 쳐다보았다. 

"어, 안녕." 

두 사람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쳐다보며 인사했다. 

집에 도착한 후 별이를 발견한 진우는 신이 나서 별이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왜 이름을 별이라고 지었는지, 어디서 살다 온 것인지, 무슨 종인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별이와 함께 노는 동안 어색했던 공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야, 노진우!"

집 대문으로 진주가 고개를 빼꼼히 들이밀며 진우를 불렀다.

"어, 누나."

"여기서 뭐 해?"

"나? 놀아. 별이랑, 지아 누나랑. 그치 누나?"

"별이? 어? 강아지가 있네? 나 이 강아지 며칠 전에 봤는데. 왜 할머니네 집에 있지?"

"어.... 우리 키우기로 했어. 주인이 없는 것 같아서...."

"아~ 그래? 이름이 별이야?"

진주가 자연스럽게 대문을 넘어 마당을 가로질러 집 안으로 들어왔다. 지아는 타인과의 경계가 매우 분명한 곳에서 나고 자랐기에 이런 불분명한 넘나듦이 어색했다. 하지만 여기는 지아의 집이 아니라 할머니의 집이었다. 불편한 마음을 애써 외면하며 지아는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어.... 별이야. 눈이 별 같아서."

"안녕, 별아. 난 진주 누나야."

진주가 별이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넌 이탈리아에서 왔다며?"

"응? 응."

"근데 학교 안 다녀?"

"응... 학교는 방학이야."

"와, 6월인데 벌써 방학이라고? 우리는 아직 한 달이나 더 남았는데."

"응. 우린 6월부터 방학이야."

"좋겠다. 방학도 빨리 시작하고. 근데 여기 왜 왔어?"

"응, 그냥. 할머니 보러...."

"그럼 방학 끝나면 가겠네?"

"응? 응... 아마도."

"너 걸그룹 누구 좋아해?"

"어... 난 BTS... 걸그룹은 잘 몰라."

"이탈리아에서도 BTS 알아?"

"요즘 조금씩 인기 좋아지던데."

"거긴 학교 어때?"

"학교?"

"응. 거기도 학교 거지 같냐?"

"음... 거지 같은 게 엄청 안 좋다는 말이지?"

"응, 지랄 같다. 뭐 그거랑 비슷하지."

"응, 뭐.... 학교가 다 그렇지 뭐."

"우리 엄마 필리핀 사람이야."

"응." 

"별로 안 놀라네."

"응, 이탈리아에 많아."

"그래? 너 나랑 토요일에 코노 갈래?"

"그게 뭐야?"

"코노 몰라?"

"그게.... 뭐야? 영어야?"

"야, 나 영어 못한다니까 그러네."

"아, 엄마가 필리핀 사람이라고 해서 영어 잘 하는 줄 알고...."

"야, 넌 한국 사람인데 한국말 잘 못 한다며."

"어, 그래. 미안."

"뭐 나한테 미안할 건 없고. 근데 한국 말 잘 하는 것 같은데?"

"말은 해. 읽고 쓰는 게 어려워."

"그렇군. 코노를 모르다니... 그럼 일단 나만 따라 와."

"어... 할머니한테 물어보고." 

"얘들아, 밥 먹자. 진주도 왔네? 어여 들어와."

금자 씨의 말에 지아와 진주, 진우는 손을 털고 일어났다. 뜨거운 태양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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