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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긍정 Jun 27. 2021

첫 가설, 첫 실험, 첫 회고

뽀시래기 인턴의 첫 발걸음

이 글의 BGM으로는 f(x)의 첫 사랑니를 권합니다.

이렇더라 저렇다 말들만 많지만
겪어보기 전엔 알 수가 없겠지
아야! 머리가 아플 걸, 잠도 오지 않을 걸
새로운 경험 Rum Pum Pum Pum
- f(x)의 첫 사랑니 가사 中






 처음이 주는 설렘

클래스101이 첫 직장은 아니지만, 입사 후 꽤나 설레는 마음으로 회사를 다녔었다. (지금은 애증의 관계)

아무래도 상품이 취미나 자기계발 콘텐츠라 보면 볼수록 내게 도움도 되고, 새로운 클래스가 매주 업데이트되다 보니 하루 종일 회사 홈페이지만 봐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고객분들의 귀염뽀짝한 실력(?)이 클원을 통해 그럴싸한 완성물로 나오는 과정들을 매일 보다 보면, 나도 같이 배움에 순수해지고 뿌듯해지는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회사를 다니는 매일이 반복과 익숙함 보단 처음과 설렘인 곳은 흔치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클원에서 인턴이자 PO로 일하며, 설레었던 나의 첫 순간들을 기록해보려 한다.





첫 플래그, 첫 월급, 첫 개인 법카

입금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하지

첫 월급으로 가족들 선물 살랬는데 놀랍게도 치과에서 다 써버렸다. 우리 모두 보험을 듭시다 ⇡▽⇡





첫 책상, 첫 예약, 첫 회의

같은 나, 다른 자리

최근 조직 개편과 동시에 창가 자리로 이사했다! 오롯한 내 자리에서는 분명 인턴인데, 내 이름으로 빌린 회의실에서는 우리 팀이나 해당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하는 Product Owner다. 오너십 갖고 일을 하다가도, 다른 PO들과 모인 회의에서는 너무나도 갈 길이 먼 햇병아리다.


매주 나의 부족함과 책임감의 경계에서 부담감은 밀려왔고, 그 감정의 파도들을 온몸으로 맞았다.

가끔 나의 결정이 우리 개발자들을 고생하게 만들 때, 옆에서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미안함으로 꼬박 밤을 새웠다. 그렇게 처음엔 휩쓸리다가, 그다음엔 계속 헤엄쳐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아 열심히 발버둥 쳤다.


이제 와서 느끼는 건, 힘을 좀 뺄 걸 그랬나 보다. 쉼 없이 허우적거렸더니 이젠 지쳐 자꾸만 아래로 가라앉는 기분이 든다. 이 또한 처음이라 겪는 진통일까? 당분간은 몸과 마음의 유연함을 기르려 한다. (나마스테-이시)





첫 깜짝 선물들

아버지는 말하셨지, 먹을거 사주는 사람이 쵝오.

회의 갔다 자리에 돌아오면 가끔 동료들의 쪽지나 깜짝 선물들이 놓여있다. 심쿵.





첫 아이데이션, 첫 와이어프레임

종이접기 시간 아님 주의.

Crazy 8s는 종이를 8등분으로 접은 다음, 하나의 목적을 갖고 8분 동안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8개의 아이디어나 퍼널을 그리는 아이데이션 기법이다. 고로 1칸을 1분 안에 그려야 한다. 말이 쉽지 막상 해보면 모두가 1분씩 8번을 우당탕탕 ʕʘ‿ʘʔ 그 와중에 신기하건 디자이너 동료는 손으로도 착착착 깔끔하게 잘 그려낸다. 이 아이데이션 기법의 포인트는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함께 해야 시너지가 난다는 점이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건 참으로 소중하고 즐거운 일이다.





 사내 도서 대여,  스테이징 테스트

스테이징에서는 나도 MD다. 배너는 내가 접수하겠어.

한 번은 점심 먹고 온 사이에 CX팀 동료가 추천한다며 [오늘도 개발자가 안 된다고 말했다]라는 책을 내 이름으로 빌려 자리에 두고 갔는데, 저 제목을 보자마자 우리 팀 개발자들이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 그날 안된다고 했던 모든 요구사항의 이유를 들어야만 했다. 워딩이 세서 그렇지, 저 책은 개발자들이 안된다고 하는 것은 제품의 안정성을 고려한 판단이라는 내용이다.


나는 참 운이 좋은 게 가장 많이 의지하는 개발자분들이 우아한형제들에서 PM으로, 코드스테이츠에서 개발자 부트캠프 강사로 일을 하셨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 자동으로 통역(?) 되어 온다. 개발자라고 해서 다 개발만 해왔던 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불친절한 개발자도 있다. 그럴 땐 지난 포스팅처럼 나를 좋아하는 연예인이라 생각하고 상황을 쉽게 설명해줄 것을 부탁한다. 조금이라도 모르는 것은 적어놓고 이해될 때까지 질문한다. 이렇게 직접 부딪히며 만들어가는 나만의 개발 용어 사전은 조만간 클원에서 전자책으로 판매될 예정이다 :')






밑밥이 길었다. 소속감과 책임감을 갖고, 팀과 맡은 프로젝트를 잘 이끌고, 여러 직무의 동료들과 원만하게 협업하는 것도 좋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고객이 겪는, 겪을 문제를 파악해 더 좋은 방향을 위한 가설을 수립하고 검증하는 것이 아닐까! 정말 부끄럽지만 가장 설레었던 나의 첫 실험에 대한 회고를 남겨보려 한다.


준비물까지 챙겨주는 온라인 클래스

홈페이지를 방문한 유저는 검색이나 추천 등을 통해 2000개가 넘는 다양한 클래스들을 마주하게 된다. 몇 번 살펴보다 관심 없는 유저라면 바로 [창닫기]를 누를 테지만, 본인도 모르게 스크롤을 내리고 있다면? 여러 커리큘럼이나 후기들을 보며 '나도 한번 해볼까?' 고민하게 된다.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고민이 시작되면,

수업의 난이도, 커리큘럼 구성, 사용하는 툴, 수강생 만족도, 사진으로 된 후기와 크리에이터님의 미션 피드백 댓글 등 상세페이지에 노출된 정보들을 보며 자신만의 클래스 결정 기준이 세워진다. 이때 직접적으로 클래스를 미리 볼 수 있는 [무료 공개] 콘텐츠를 클릭하거나, [수강 옵션 구경하기]라는 결제 유도 CTA를 클릭하면 로그인 또는 회원가입 유도 창을 만나게 된다.


2021년 4월 기준 클래스101 로그인, 회원가입 유도창

내가 입사한 당시, 클원은 비로그인 유저를 신규 회원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기본 카피는 "준비물까지 챙겨주는 온라인 클래스"라는 클래스101의 대표 서비스 소개 문구였는데, 이젠 '머니'나 '커리어'등 준비물이 없는 클래스들도 많기에 카피 자체에 개선의 여지가 있어 보였다.


21만원 상당의 클래스 체험권
vs 총 12만원의 쿠폰팩


먼저 세팅된 두 카피를 보며 나는

보통 한 클래스의 가격이 약 15~20만 원인데, 12만원 할인 쿠폰이나 한 클래스의 무료 체험권을 준다.. 비로그인 유저를 신규 회원으로 전환시킨다는 목적만 놓고 보면 첫 가입과 구매는 쉽게 유도할 수 있어도, 그 이후 리텐션은 가격에 대한 허들이 기존 고객보다 더 커지기 때문에 되려 어려워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카테고리 별 2만원씩 6개를 담은 쿠폰"팩" vs 인기 클래스들의 "한 챕터씩을 묶은" 클래스 체험권이 무료였던 것이다. 처음엔 속았다는 생각과 함께, 우린 이런 거 안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를 했다. 나는 서비스가 지닌 선한 가치 보다, 고객들이 쿠폰팩과 체험권을 먼저 경험하게 되는 게 진심으로 안타까웠다. 나처럼 속았다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로 이 쿠폰팩에 대해 '상술'이라고 비난하는 블로그 후기를 보기도 했다.


그럼 스테이시가 고객이라면
어떤 혜택이 가장 좋을 것 같아?

1. 결국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건 실질적인 금전적 도움을 주는 할인이나 체험권이 아닐까?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움'은 결핍이자 궁극적인 문제 해결을 도와주는 '성장'이 답이 아닐까?

3. 진짜 내 돈 15만원을 들여 클래스를 결제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4. 이걸 고객처럼 상세페이지를 다 본 후 관심이 생겨 해당 CTA를 누른 상황이고,

5. 이때 내게 어떠한 가입 혜택을 준다면?!


그리곤 결국 적은 금액이라도, 내가 원하는 클래스를 할인받을 수 있는 쿠폰이 가장 좋을 것 같았다.

이때 처음으로 단순히 재밌고 센스 있는 카피가 아니라 결국 고객은 무엇이 필요한지, 그걸 3초 안에 어떻게 설명하고 설득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위 실험은 진행되었다. (입사 4일째 되는 날이었는데, 첫 실험을 돌리고 집에 가는데 벌써부터 결과가 궁금해서 총총 뛰어가던 기억이 난다.)





레드벨벳이 부릅니다. 빨간 맛.

빠빠 빨간 맛. 궁금해 HONEY

내 인턴 일기에서 자세한 기간과 모수 등을 밝힐 순 없지만.. 엄청 졌다. 99% Loser ㄴʕʘ‿ʘʔ ㄱ

할인 혜택보다 단순한 서비스 소개 문구가 더 전환율이 높다는 사실이 충격적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내게도 기회가 찾아왔다.






 나의 첫 가설


그럼 '다른 곳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하는 궁금증이 생겼고, 온라인 클래스를 포함한 20곳이 넘는 서비스들의 회원가입 유도 창을 살펴보았다. 어떤 것들을 어떻게 어필하고 유도하는지 다양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었고, 그중 클원에 녹일 수 있을만한 요소들을 모아 5가지로 정리하고 팀원들에게 공유했다.


이때 레퍼런스-테이시 라는 별명이 생겼다.


그리고는 서비스 소개 문구인 A와 더불어
실험군 B는 비회원으로 이용하면 제한되는 좋은 기능을 (가치), 실험군 C는 완강률과 환급금을 (수치) 어필하자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다른 PO는 내게 아래와 같은 말을 하고 갔다.



솔루션이 아니라
가설에서 출발하면 좋을 것 같은데



아. 가설 없는 검증이라니, 되게 부끄러운 계획이었다. 혼자 바보냐고 얼마나 자책했는지 모르겠다. 좋아 보이는 것을 뒤쫓다 보니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놓치고 시작을 한 셈이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떤 마음이 들면 가입할까, 왜 그런 마음이 들까? 등 애꿎은 모니터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실험군 B는 요즘 이런 거 할 줄 알아야 한다던데, 이런 게 유행이라던데 하는 불안함을 "자극한다"

실험군 C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고퀄리티의 클래스를 통해 잘 배우고 발전하고 있다며 불안함을 "해소한다"로 2차 아이데이션을 했다.


고객들이 갖고 있는 여러 불안함을 자극하면, 미리 해소하면 회원가입을 할 것이라는 가설을 세웠다. 그리고 다른 팀원들에게 의견을 구하며 검증하고 싶은 것에 초점을 두어 카피를 다듬었다.


예시_ 업계를 이끌어가는 크리에이터의 비밀 노하우를 배워보세요.






 나의 첫 실험

그리고 나의 첫 가설을 검증하기 위한 첫 실험이 시작되었다.  

이전보다는 훨씬 긍정적인 추세라 유의미한 결과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머지않아 하나의 이슈가 생겼다. 클래스101은 Korea / USA / Japan. 현재 총 세 국가의 스토어 홈페이지를 따로 운영하고 있는데, 그중 Korea에서는 또다시 영어나 일본어로 언어 변경 설정이 가능하다. 그래서 알고 보니 그동안 Korea store에서 영어나 일본어로 언어 설정을 변경한 사람들도 포함해 실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Japan Cell에서 해당 문구를 오류로 인식하고, 이를 바꿔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좌 : CLASS101 JAPAN  /  우 : CLASS101 KOREA의 일본어 설정 (실험군C)

생각지도 못한 변수에 우선 실험을 멈추어야 하는지, 긍정적인 지표인데 유의미함이 검증될 때까지 지켜봐야 하는지 결정해야 했다. 실험만 놓고 보면 다른 언어로 변경하여 가입한 수치는 적었으나, 해당 셀에게는 언어가 뒤바뀐 100%의 문제였다. 그렇게 해당 실험은 아쉽지만 마무리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추가적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기존 대조군인 서비스 소개 문구와 비교했을 때, 전환율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첫 회고

같이 실험을 진행했던 PO 동료가 회고를 제안했다. (그는 위 본문에서 crazy8s를 접고 있는 예쁜 손의 주인공이다.) 그리고는 "앞으로 스테이시가 실험을 한다면, 누구부터 어떻게 설득해야 할까?"라고 물었다. 선행된 실험이 졌기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후속 액션을 내가 함께 했을 뿐. 그의 말대로 앞으로 내가 실험을 진행하려면, 어떤 직무의 동료부터 어떤 지표를 개선하기 위함이라고 설득해야 할까?부터 고민해야 한다.



조금 더 개인적인 생각을 회고하자면..

다른 서비스의 레퍼런스보다는 우리 서비스의 고객들이 언제 회원가입을 많이 하는지부터 살펴봤어야 했다. 또 이러한 실험을 진행할 것이라고 회원가입 창에 영향을 받는 직무의 동료들에게 최소한의 공유도 했어야 했다. 무엇보다도 어떠한 실험을 진행하기 위해 가설을 세우거나 새로운 기획을 준비하기 전, 우리 서비스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것이 선행되었어야 했다. 당시 서비스의 어드민 조차 잘 보지 않으면서, 회원가입을 유도하려 했다니.. 뭐랄까.. 부끄럽지만 얕은 내 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본문에서 첫 월급을 치과에다 썼다고 했는데, 해당 실험 이후 의사 선생님께서 사랑니를 빼야 한다며 해주신 말씀이 기억이 난다. "저는 통증도 없는데 안 뽑으면 안 될까요?"라고 물었더니 "그 주위 치아들이 영향을 받아요. 내가 지금 안 아프다고 해서 방치해두면 안 돼요. 뺄 건 뿌리째 뽑아야, 다 같이 균열감있게 살아가는 거예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게 우글우글 가글을 뱉어내며 생각했다.


겪어보기 전엔 정말 알 수가 없는군!

아쉽지만 뿌리째 뽑혀버린 나의 첫 가설, 첫 실험, 첫 회고 마침.

이렇더라 저렇다 말들만 많지만
겪어보기 전엔 알 수가 없겠지
아야! 머리가 아플 걸, 잠도 오지 않을 걸
새로운 경험 Rum Pum Pum Pum
- f(x)의 첫 사랑니 가사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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