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안돼요!"가 아니라 "어머 저 돼요!"라고 크게 말해야지
'요가 선생님은 나를 보자마자 '히이익!'하고 놀랐다.'
코로나19로 인해 수영도, 줌바도, 스피닝도 못 하게 된 지 6개월이 넘어갔다. 내가 그나마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은 영혼이 나갈 정도로 뛰고, 혼절하기 직전까지 흔들어제끼는 유산소 운동이었다. 아쉬운 대로 홈트레이닝 영상을 틀었으나, 틀자마자 지루함이 밀려왔다. 출근하자마자 퇴근하고 싶은 사람의 표정을 지으며 점핑잭(팔 벌려 뛰기) 20개를 시작했다. 몇 개월째 방치된 수영복과 줌바 스커트를 아쉽게 바라보느라 자꾸 오른발이 매트 바깥쪽으로 삐져나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라는 생각이 들어 운동할 수 있는 공간 여기저기를 뒤져보다 한 맘카페에서 집 앞 요가학원을 찾아냈다. 주 4회 기준, 월 8만 원이라는 저렴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선생님이 기가 막히게 속근육을 만들어준다는 호평이 자자했다. 난생처음 11자 복근을 봤다는 규민맘 님의 후기도 있었다. 단, 초심자는 첫 수업 후 일주일 정도 걷지 못할 수 있다는 경고성 후기에 등록을 조금 망설였지만, 숙련자들이 겁주는 멘트겠거니 싶어 가볍게 여기고 용감하게 한 달을 등록했다.
선생님은 사근사근한 말투로 그렇지 못한 행동을 주문(?)했다. 인간을 고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 분명한 자세를 취하게 하고는, 짧게는 10초 길게는 30초씩 멈춰있기를 요구했다. 버티는 것도 버티는 건데, 문제는 자세였다.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고개를 들면 어깨가 말리고, 어깨를 펴면 엉덩이가 나오고, 엉덩이를 집어넣으면 허리가 굽었다. '흠, 내 몸이 어떤 의미에서는 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지만, 사람들은 그걸 '뻣뻣하다'라고 표현한다는 것을 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수강생들의 자세를 한 명씩 봐주고 교정해주던 선생님이 내 자리로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와서 저 좀 봐주세요 아니 그냥 오지 마세요 아니다 와주시긴 해야 할 것 같은데...'를 반복했다. 다른 수강생들은 다리를 벌리고 앉은 채, 불가사리처럼 바닥에 납작하게 배를 붙이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자세는 '박쥐 자세'라는 자세였다) 나는 혼자 우두커니 앉아서 팔만 허공에 뻗고 있었다.
모두에게 공평한 관심을 나눠주는 친절한 선생님은 내 자리에 와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보더니 아주 작게 “히이익! 세상에!”라고 말했다. 악의가 전혀 없는 순도100%의 놀람 및 당황스러움의 표현이었다. 선생님은 뒤에서 내 등을 꾸욱 누르면서 “회원님 한참 더 내려가셔야 해요!”라고 했고, 나는 나도 모르게 세상 단호한 목소리로 “안돼요!!!”라고 크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자기주장이 강한 사람인 줄 나도 몰랐다.
'유산소 운동 vs 무산소 운동'
그간 내가 주로 했던 유산소 운동(런닝, 수영, 스피닝 등)은 적당한 강도의 스트레스를 정해진 시간 동안 견디는 것만으로 큰 고통 없이 끝낼 수 있는 운동이었다. 순간적인 에너지 폭발보다는 일정한 심박수를 일정한 기간 동안 유지하는 것이 효과적이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옆 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준의 일정한 속도'로 달리기를 권유하기도 한다. '헬스장에서 런닝머신만 하지 마세요'라는 말은 들었을 때 몹시 뜨끔했지만, '런닝머신이라도 하는 게 어디냐'라고 속으로 혼자 대들며 적당한 강도로 즐길 수 있는 유산소 운동만을 찾아다녔다.
반면, 무산소 운동(요가, 필라테스, 등산 등)은 체지방이 연소된 공간에 단단한 근육을 채워 넣기 위한 운동이다. 생전 안 쓰던 근육을 유연하게 하고, 없는 근육을 새로 만들기 위해서는 순간적으로 폭발적인 자극이 필요한데, 그 단련 과정이 몹시 고통스러웠다. 특히 제일 고통스러운 날은 운동 첫날이 아니라 그다음 날이었는데, 기타를 처음 배운 다음 날 줄에 손가락을 갖다 대기만 해도 따갑듯, 등산 다음날 뻐근한 종아리 때문에 계단을 내려갈 때 '악'소리가 나는 그 고통이 눈물 나게 싫었다.
그렇게 무산소 운동은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하고 싶었는데, 코로나19로 인해 반강제로 요가를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다. 물론 한 달만에 배에 복근 같은 건 생길 리 만무했다. 여전히 나는 다들 앉아있는데 혼자 서있고, 다들 누워있는데 혼자 앉아있는 열등생이다.
게다가 요가는 확실히 유산소 운동을 끝냈을 때의 쾌감과 성취를 따라가지도 못했다. 런닝이나 스피닝, 줌바나 스피닝을 할 때는 약간 '땀 흘리는 나 자신'에 심취하는 경우도 있었고, 컨디션이 좋아 엔도르핀이 폭발하는 날에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 : 운동 시 발생하는 행복감. 심장박동수가 1분에 120회 이상 30분 정도 달리면 느낄 수 있음)'를 느끼기도 했다. 격한 수영 후, 1시간 만에 0.6kg가 빠진 날에는, 빠져나간 게 대부분 수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흐뭇함을 숨기지 못하고 실실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한 달 차 요린이(요가+어린이)의 깨달음'
요가는 한 달만에 몸매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지도 못했고 몸무게를 크게 줄여주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주 약간의 변화가 있긴 한데, 그건 단단해서 접히지도 않던 옆구리살이 아주 조금 말랑해졌다는 것이며, 고통에도 아주 조금 익숙해져서, 조금 더 버텨보겠다는 오기를 부리는 여유도 가끔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교적 점점 가벼운 마음으로 요가학원에 갈 수 있는 이유는 선생님이 '히이익!'하고 놀라는 횟수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는 작은 뿌듯함 때문이기도 하고, 하루치의 고통을 아침에 모두 느껴버리고 나면 조금 어른이 된 것 같은 근거 없는 성취감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이유는, 뭔가 단단한 근육 비슷한 게 채워지고 있긴 한 것 같다는 아주 희미한 감각과, (그로 인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제 먹은 치킨이 뱃살로 변하는 속도가 아주 조금 더뎌졌다는 사실 때문이다.
옆사람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적당한 속도로, 견딜 수 있을 만큼 힘들게 유산소 운동을 하듯 살아온 내 삶의 대가는 아주 정직했다. 마치 뛰는 만큼 빠지고, 먹는 만큼 찌는 체지방처럼 말이다.
'이 정도면 됐다' 싶을 만큼 공부하고 일하고 최선을 다했으며, 딱 내가 노력한 만큼의 성적표를 손에 쥐었다. 수학 점수가 안 나오면 수학을 더 열심히 해야 했지만, 매번 맨 마지막 야자시간으로 미뤘고, 친해지고 싶은 친구가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으면 헐레벌떡 마음을 접었기에 결국 그 친구와는 영영 친해질 수 없었다.
빈자리에 무언가를 채우지 않으면, 관성에 의해 그 자리는 결국 또 빼야 하는 무언가로 채워졌다. 비워내기에 급급했을 뿐, 채워야 할 대상과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하지 않았기에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지금 당장 나를 둘러싼 체지방을 비워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을 무엇으로 채울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결국 엇비슷한 것을 넣었다 뺐다만 반복하는 셈이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비워낸 공간에 어떤 것을 채워야 하는지, 채우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요가는 어렴풋이나마 그 답을 알려주고 있었다. 가끔은 사흘을 갈지, 일주일을 갈지 모르는 막연한 통증을 견뎌야 그 자리에 굳은살처럼 근육이 자리 잡는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처음 요가 수업을 마치던 날'
정신없이 따라 하다 보니 어느새 50분이 지나있었던 한 달 전, 첫 수업 날이 생각난다. 갓 태어난 기린처럼 다리를 후들거리며 매트를 정리하는데 선생님이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회원님 괜찮으세요? 많이 힘드셨죠? 하다 보면 나중엔 익숙해지셔서 잘하실 거예요. 여기 계신 분들도 처음에는 다 힘들어하셨는데 지금은 보시다시피 너무 잘하세요!”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할지는 잘 모르겠다는 생각에 막막함을 잠시 느꼈지만, 오래 방치한 만큼 예열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뭉근하게 천천히 데우는 것 말고는 특별한 왕도가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어떤 식으로든 요기스 하이(Yogi's High)를 발견해내는 건 결국 나의 몫이다.
근데 지금은 꿈쩍도 하지 않는 엉덩이를 하늘 위로 높이 들어 올릴 수 있는 날이 오긴 올까? 다른 의미에서 선생님을 '히이익!'하고 놀라게 만들고 싶다는 작은 꿈이 생겼다. 그때는 "안돼요!"가 아니라 "어머 저 돼요!"라고 크게 말해야지.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