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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숲섬 Oct 09. 2024

미안해, 용서해, 고마워, 사랑해

{숲섬타로} 어린 고양이를 위한 열아홉 번째 편지


  {숲섬에서 묻고 답하다 시즌1}의 <29화. 결코 거절할 수 없는 너라는 우주 https://brunch.co.kr/@jungmari/116>편에서 고사리와의 첫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 지난 며칠 전 이제 제법 고양이답게 자란 고사리는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습니다. 보고 싶은 맘을 담아 이 편지를 씁니다.





 

  어린 고사리에게



  여긴 좀 전부터 비가 오네. 주룩주룩 많이도 오는 걸 보니, 어쩐지 네가 가까운 어딘가에 다시 태어났을 것만 같다. 다시 생명을 선물 받고 어느 엄마고양이 뱃속에 다시 생겨났을 것 같다고 믿게 되는 오후구나. 엄마를 그토록 그리워하고 언제나 부르고 같이 있고 싶어 하더니, 다음 생은 엄마랑 헤어지지 말고 늘 같이 있는 날들이면 좋겠다. 생각만 해도 흐뭇해지고 행복해지는 풍경이네.



  고사리란 이름은 밟혀도 절대 죽지 말고 건강하게 살란 뜻이었는데, 이름 탓이었을까? 다람쥐처럼 재빠르고 날랜 네가 N의 발에 꽉 밟히기도 하더니 며칠 전엔 갑자기 범백(고양이 범백혈구감소증)에 걸려 힘겨워하다 세상을 떠나고 말았구나. 아직 믿어지지가 않아. 부르면 부르는 대로 대답하고 또 대답하던 너, 집 밖에서만 데리고 있겠단 결정 때문에 늘 집안에 들어오고 싶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던 너, 나비도, 개구리도, 바퀴벌레도, 낙엽도, 나뭇잎도 똑같이 사랑하던 너, 주방 뒷문 밖에서 사랑스러운 아기고양이의 모습을 제대로 많이도 보여주던 너, 정말 보고 싶구나...




  우리가 같이 지낸 시간은 겨우 85일 밖에 안 되는구나. 그 시간이 밖에서 여름을 보낸 너에겐 너무나 덥고 습하고 힘들었을 시간일 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겐 정말 멋진 추억을 많이도 나누게 한 감사한 시간이었어. 밥 먹을 때마다 욤욤욤욤, 소리 내며 매번 행복해하고, 사냥에 성공해서 사냥감을 보란 듯이 늘어놓고 의기양양하던 모습, 산책이나 외출 나갈 때마다 대문 옆 담장에 올라가 늘 우릴 기다리던 너, 널 싫어하던 누나고양이 모모를 누가 봐도 "누나가 너무 좋아" 하며 줄기차게 쫓아다니던 모습, 안아주면 작은 팔을 내밀어 우리들 목을 꼭 끌어당기던 모습까지... 어느 하나 특별하지 않은 순간이 없네. 지금 우리 집의 고양이 둘도 새끼고양이던 때가 있었지만, 그때 녀석들은 어쩐지 저절로 컸던 것 같아. 넌 매번 매 순간 존재 자체만으로도 N과 나를 자주 놀라게 기쁘게 만들었단다. 밖에서만 지내게 해서 정말 미안해. 모모와 미얀이가 스트레스받을까 봐(이전에 같은 일로 둘 다 심하게 아픈 적이 있었거든) 그리한 건데, 너만 밖에 두는 것이 늘 마음에 걸리고 미안했어. 내가 뭐라고 모두를 위한다고 그런 결정을 하고 확신했던 걸까 되돌아보게 된다.



  토요일 오후 병원에 데려갔을 때만 해도 뭘 잘못 먹어 토하고 기운이 없는 줄만 알았어. 오래 기다리면서도 분명 나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고. 범백에 걸렸던 말에 그제야 심각한 줄 알고 걱정이 되었지만 병원에 입원하면 분명 나을 거라 믿었어. 작별인사도 못해서 마음에 걸려. 그게 마지막일 줄 미처 몰랐으니까. 다음날은 병원 휴일이었고, 다른 의사 선생님이 전화를 주셨다고 들었어. 전염병이라 사체는 병원에서 처리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셔다고. 오후에 널 데려오고 싶어 병원으로 전화해 봤으나 휴일이라 그런지 전화를 아무도 받지 않았어. 데려오지 못해 정말 미안해. 이후론 네가 사라졌다는 것만 절절하게 실감하는 시간... 혹여나 다른 고양이들이 전염될까 집안 안팎으로 소독하고 바닥에 낀 이끼까지 싹싹 닦아내며 네 흔적을 억지로 몰아내는 것 같아 마음이 많이 아팠어. 어려서부터 특히 허약했던 너인데, 그런 널 데려다 키울 거면 예방접종도 하고 신경을 많이 썼어야 하는데 너무 무심했어. 잠들면 네가 발밑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꿈을 꾸고, 아침에 일어나면 늘 새벽부터 기다리던 밥 달라고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눈물이 났어. 새로 장만했지만 두어 번 밖에 사용 못한 네 새 밥그릇에 밥을 수북이 담아두고, 초를 켜두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흐르고. 그러다 문득 알게 되었지. 넌 분명 다시 태어날 거라고. 넌 특별한 우리의 고사리니까! 지금도 밖에 나가면 너부터 찾으며 두리번거리는 미얀이와 모모와 BB를 볼 때마다 생각해. 그 애들이 고사리 바로 너라는 사실 말이야. 산다는 것, 살아있다는 게 뭘까. 그건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만질 수 있고 서로를 감각하고 사랑할 기회가 있다는 뜻이겠지. 그 기회는 어느 날 결국 끝나게 될 마지막 날이 올 거란 거. 있을 때 더 사랑하라고  말 한마디 없이 네가 절절히 가르쳐주는 것만 같다.



 



  언제나처럼 조용히 널 생각하며 타로를 펼쳐봤어.

  네가 우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뭐였을까, 하고.


Q : 병원에서 혼자 힘들었지? 많이 아프지 않았어?

A :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그냥 온몸을 맡겼어요. 그 과정 또한 처음 하는 여행처럼 신기했어요.

Q : 우리 집에 시간 있는 동안 넌 어땠어?

A :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쁘고 행복했어요. 모두가 날 챙기고 생각해 줬거든요.

Q : 지금은 어떠니?

A : 제가 해야 할 일들의 마지막 고비를 넘기고 있어요. 완성을 향해 다가가는 중이에요.

Q :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은 뭐니?

A : 내가 해오던 일들을 이제 끝낼 거예요. 실망스럽고 맘이 아프겠지만, 그러지 말아요.

엄마, 형제들의 다양한 경험과 감정들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기뻐요. 우린 하나로 녹아들어 세상의 찬란한 에너지와 조화를 이룰 거예요. 사랑할 수 있어서, 사랑하게 해 줘서 고맙습니다.





  이제 와서 그런 생각을 해. 늘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하던 널 강아지처럼 데리고 다녔다면 어땠을까 하고. 그런 생각을 처음부터 했음에도 하던 습관대로 널 키우고 대했단 생각이 뒤늦게 드네. 잃어버리기 전에 내게 주어진 모든 것들이 얼마나 특별한지 늘 알아차리고 싶구나. 네 생각이 날 때마다 지금 내 앞에 존재하는 일상의 특별함을 알아차려볼게. 보고 싶던 널 민난듯이.

 


  언제까지나 사랑해, 나의 고사리!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이든 늘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기도할게!




 * 숲섬에서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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