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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건 May 12. 2024

안전을 배달해 드립니다. (2)

[Memories in Fire] 글로 떠나는 여정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후 사고원인과 문제점, 그리고 개선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공청회가 국회에서 열렸다. 대한민국의 안전이 통째로 무너졌다는 참담함에 마음이 편치 않았던 나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안들이 제시되는지를 들어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국회로 향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내용의 이야기들이 오고 갔고 항상 그렇듯 특별한 해결책 없이 마음의 짐을 떨쳐 버리지 못한 채로 공청회는 마무리되었다. 그날 발표자 중 한 사람이었던 경향신문 기자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되었고 이후 그와의 만남에서 아주 특별한 제안을 받게 되었다. 


안전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시점에 혹시 1년 동안 경향신문에 소방칼럼을 기고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사실 이제까지 칼럼이라는 것을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었고, 그것도 일회성이 아닌 일주일에 한 편씩 해서 모두 52주를 채워야 하는 결코 쉽지 않은 프로젝트였다. 게다가 중앙 일간지라는 큰 무대는 자칫 실수하면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는 문제여서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소주가 한 잔 두 잔 들어가고 알코올은 나에게 막연한 희망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항상 그랬듯 오케이 하고는 그와 헤어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부터 어떤 것들을 말하면 좋을지에 관해 주제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치 마라톤을 뛰기 전 어떤 운동화를 신어야 할지 선정해야 하는 것처럼 매우 신중함이 필요한 순간이기도 했다.  


매주 월요일마다 기사를 송고했어야 했으므로 하루하루가 고민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사 한 편을 송고하고 나면 곧바로 다음 주 주제를 무엇으로 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경향신문 <이건의 소방이야기> 칼럼 7번째 이야기


모두 52편의 칼럼을 마무리하는 날. 나는 생각 외로 무덤덤한 심경이었다. 더 이상 마음의 부담을 갖지 않아도 된다는 후련함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소방을 향한 내 마음이 식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도 존재했다. 


경향신문 <이건의 소방이야기> 칼럼


글과 함께 떠났던 소방 여정. 그 일 년 동안 나는 단 한 편의 칼럼도 마감시간을 어긴 적이 없었다. 그런 사실에 스스로를 칭찬해 주기도 했었지만 세상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지 칼럼 몇 편으로 인해 그렇게 쉽게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냉혹한 사실도 잘 알게 되었다.


경향신문 <이건의 소방이야기> 마지막 칼럼


그동안의 소회를 담은 글을 마지막 칼럼에 채우고는 나는 마치 기도를 끝낸 사람처럼 눈을 떴다. 글을 쓰는 내내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이 안전하기를, 그리고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다치지 않기를 기도했는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모든 사람이 일 년 동안 칼럼을 쓸 수 있는 기회를 갖지는 못할 것이다. 심지어 돈을 내고 쓰겠다고 해도 어려울 것이다. 


내가 전문작가도 아니고 누군가의 눈을 사로잡을 만한 재미가 있거나 아니면 매우 스타일리시한 필체를 가진 것도 아닌데, 나에게 이런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은 소방관으로서 대한민국이 더 안전할 수 있도록 메시지를 잘 전달해 달라는 당부였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안전을 배달했고 더 깊이 소방을 만났다. 


#소방관 #이건선임소방검열관 #주한미공군오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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