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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ㄹim Oct 08. 2018

옥상  。











커다란 무선전화기를 턱에 괸 채 옥상에 올라


빨래를 널면 좋겠다.  
 
 

따르릉. 따르릉.


전화기 넘어로 신호음이 울리는 동안


바닥에 내려놓은 라디오에서는


초미세먼지가 황사가 어쩌구 저쩌구 하는 이야기 말고,


가사는 첫 마디 밖에 모르지만 멜로디는 다 아는, 이를테면 문리버 같은 편안한 팝송이 흘러나오기를.  


 

대야에 든 수건을 탁탁 털면 상쾌한 세제향이 코 끝에 닿고,


공중에 머무는 찰나를 놓칠세라 흠-뻑 들이마셔야지.
 


마침내. 여보세요, 하고 연결이 되면 전화기를 반대편으로 바꾸어 괴고선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소소한 이야기를 참새처럼 조잘거리고 싶다.  
 


그러다가 찌직 찌익 거리면, 잠시만. 하고선 쇠젓가락 같은 안테나를 쭉쭉 뽑아도 보고


몇 발자국씩 옮겨 서보기도 하며. 아아 이제 잘 들린다 하며 까르르 웃고 싶다.


 
아래층에서 엄마가 뭘 이리 오래 걸리느냐 호통하면, 서둘러 전화를 끊고


안테나를 꾹꾹 눌러 넣으면서 어린애같이 입술을 삐쭉거리겠지.


  

가벼워진 대야를 품에 안고 옥상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방금 통화한 사람 목소리를 되새김질하며 괜스레 얼굴이 붉어지면.  




아.



그러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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