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산업의 진짜 모습
음악 외주 작업. 특히, 편곡 작업을 하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젊은 시절에 떠올렸던 멜로디 혹은 어느날 번뜩이며 떠올린 멜로디를 시장에서 통용되는 수준의 노래로 완성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이런 분들은 보통 머릿속에 떠오른 멜로디 하나만 가지고 "이걸 제대로 된 노래로 만들어 주세요!"라고 의뢰를 주신다. 여기까지는 좋다!! 본인이 못 하는 것을 타인과의 협업을 통해서 완성을 시킨다는 과정은 너무나 당연한 과정이니까! 하지만, 작곡된 멜로디를 노래로 완성시킨다는 것은 편곡 → 세션 섭외 → 레코딩 → 믹싱 → 마스터링 → 음원 발매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작업이 필요하다.
혹여라도, 작곡, 편곡, 레코딩, 믹싱, 마스터링의 단계를 모르시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으니
잠시 간단하게 설명해드리자면,
작곡: 흔히 가수가 부르게 되는 멜로디에 해당된다. 우리가 노래방가서 노래하는 멜로디라고 볼 수 있다.
편곡: 가수가 부르는 멜로디를 제외한 모든 악기들의 음계.박자를 만드는 작업으로 흔히 반주라고 부르는 것을 만드는 작업이다.
레코딩: 가수의 목소리와 각 악기들의 소리들을 담는 작업이다.
믹싱: 각기 다른 녹음이 된 소리들을 톤 조절하고 볼륨 조절하는 작업으로, 대중들이 어느 환경의 어느 디바이스로 듣던지 최적의 소리를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현대 음악 산업에서는 믹싱이 알파요 오메가에 해당된다.
마스터링: A 라는 노래를 듣다가, B 라는 노래를 들었는데 볼륨이 작게 느껴지면 어떻게 될까? 대중들은 바로 다음 곡 버튼을 누른다. 그렇게 되지않기 위해 시장에서 통용되는 볼륨 최적화 작업이 마스터링이다.
나는 이런 작업들을 진행하면서, 내 노동력과 시간을 대한민국 법정 최저 시급으로 계산해 견적을 내어 설명드리곤 한다. 거기에 더해, 앞으로 겪게 될 각종 시행착오, 수정 요청, 프로젝트가 엎어졌다 다시 시작되는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까지 포함하면 당연히 어느 정도 금액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다이소 가격일리는 없지 않는가?!
가격을 말씀드리면 거의 대부분의 반응은 똑같다.
"왜 이렇게 비싸요?"
그리고 이어지는 황당한 인맥 자랑이 시작된다.
"제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음원만 나오면 그 친구한테 부탁해서 어떻게든 해볼 수 있거든요!"
"이것만 잘 나오면, 저작권료로도 충분히 수익이 나지 않을까요?"
제발, 프로모션은 알아서 하시고… 그냥 곡비를 주세요.
이런 분들의 기본적인 논리는 이렇다.
"나랑 같이 작업하면, 꽤나 반향을 일으킬테고 그로 인하여,
네 저작권료도 두둑하게 나올텐데 왜 곡비까지 받아???"
이런 말을 듣다 보면 정말 기가 막힌다.
분명 타인의 노동력과 시간이 본인의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겠다는 태도다.
세상천지에 사람 부려먹고 돈을 짜게 주는 판은 많아도, 아예 돈을 안 주려는 건 음악판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작.편곡가인데, 왜 기획과 제작자의 프로모션 비용까지 내가 고려해야 하는가?
왜 프로모션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내가 감당해야 하는가?
그래서 나는 이런 분들에게 단 한 문장으로 대답한다.
"해당 곡에 대한 저작권료, 다 드릴 테니까 그냥 곡비만 주세요."
1️⃣ 나는 프로젝트에 투입될 내 시간과 노동력에 비례될 인건비만큼은 받아야 한다.
2️⃣ 어차피 프로모션 비용 몇백만 원으로는 제대로 홍보할 수도 없고, 이런 경우 저작권료는 월 10원도 안 나올 가능성이 크다. (농담이 아니다.)
3️⃣ 인맥 자랑해봤자, 결국 자기 한 몸 건사하기도 바쁜 사람들이 많다.
프로모션 비용 없이 도와줄 사람은 없다.
4️⃣ 만약 만든 곡이 대박이 나도, 나한테 돌아오는 돈은 저작권료의 20%뿐이다.
(저작권료는 판매액의 10%이고, 이 10% 에서 작사 40% 작곡 40% 편곡 20% 비율이다.
쉽게 예시를 들어서, 음원 판매액이 1만원어치 팔렸으면 저작권료는 1천원이고,
작사가에게 400원 작곡가에게 400원 편곡가에게 200원이 돌아간다.)
5️⃣ 타인의 시간과 노동력을 개똥으로 보며, 인건비를 지급하지 않는 고용인은 여기저기서
법적 소송을 받을 가능성이 높고 그 간접적 피해를 내가 받을 수 있는 확률이 농후하다.
음악 작업이나 음반 발매의 과정을 경험하지 않은 분들의 가장 큰 착각은 바로
"노래만 좋으면 시장에서 알아서 뜰 것이다." 라는 믿음이다.
"이 노래만 완성되면 차트인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런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답한다.
"차트인을 하고 싶다면, 최소 '억' 단위 이상의 프로모션 비용이 필요합니다."
상업 음악 시장은 ‘노래만 좋으면 뜬다’가 아니라 ‘노래가 좋은 건 기본’ 이다.
누구나 출발선은 같다. 그런데 다른 아티스트보다 더 앞서 나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은 '돈'이다.
남들보다 더 많은 프로모션 비용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만 한명이라도 더 듣게 만들 수 있다.
이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모든 음악 시장의 공통된 룰이다.
그런데도 이런 현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 노래만 나오면 성공할 거다" 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나에게 작업을 의뢰한다.
사실, 억 단위 프로모션 비용이 책정된 프로젝트들은 애초에 나한테 1:1로 의뢰가 오지도 않는다.
억 단위 프로모션을 돌릴 수 있는 제작사들이라면 이미 작곡가, 퍼블리셔, 기획사, A&R, 마케팅 팀들이 붙어 있다.
그런데 현실은 냉혹하다.
※ 만약 차트인에 실패하면?
▶ 저작권료는 판매액의 10%이다.
▶ 저작권료 배분을 받고 나면 내가 투자한 시간과 노동력은 몇십 원 수준일 수도 있다.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 만약 차트인에 성공해도?
▶ 대다수의 대중들은 스트리밍으로만 듣기 때문에 저작권료는 월 100만 원도 안 될 가능성이 높다.
이래도 저작권료만 받고 일해야 할까?
그러므로 나는 프로모션 비용이 책정되지 않는 프로젝트에 한해서,
"저작권료 다 드릴 테니, 곡비는 받아야 한다." 는 원칙을 고수한다.
현재 하루마다 10만 곡이 발매되는 음악 시장(참고 기준: UCI 코드 발급 사이트로 대한민국에서 앨범을 발매하려면 무조건 등록되어야 하는 코드 발급 사이트)에서 내 노래를 돋보이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돈"
그뿐이다.
작곡가가 무료로 곡을 제공하면 그 노래가 뜰 가능성이 높아질까?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돈을 프로모션에 투자한 프로젝트가 차트에서 경쟁력을 갖는다.
그러니 음악을 하려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음악이 예술이라고 해서, 경제 논리를 무시하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노래는 기본적으로 좋아야 한다.
하지만, 돈이 없으면 그 좋은 노래도 아무도 모른다.
차트인을 위해서는 막대한 프로모션 비용이 필요하다.
스트리밍 서비스가 대세인 시대에서, 저작권료만 받고 작업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그러니 제발, 곡비를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