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욕보다 더 했던 라틴어 신부님의 인신공격형 질책
라틴어는 영어와 달리 명사와 형용사, 동사가 주어와 시제에 따라 자꾸자꾸 변했다. 무엇보다 동사는 변화무쌍하게 변했다. ‘사랑하다’라는 동사의 원형이 amare(아마레)다. 이 동사가 가장 기본적인 직설법 능동태 현재 시제에서만 단수, 복수 6가지로 변했다.
amo(아모) 나는 사랑한다
amas(아마스) 너는 사랑한다
amat(아마트) 그는 사랑한다
amamus(아마무스) 우리는 사랑한다
amatis(아마티스) 너희들은 사랑한다
amant(아만트) 그들은 사랑한다
여기에다 현재 완료도 6가지로 변한다. 과거와 과거완료, 미래 시제가 또 각각 6가지로 변한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수동태도 그만큼 변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1학년들은 하루 종일 각종 동사 변화를 입으로 중얼거리며 다녔다. 뒤 호주머니에 꽂아둔 동사 변화표를 꺼내 수시로 확인해 가면서. 1학년 기숙사 화장실 변기에 앉으면 누군가 붙여 놓은 동사 변화표가 눈높이에 맞게 딱 붙어 있기도 했다.
변화가 워낙 심하다 보니 동사 하나를 배워 활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반대로 기본적인 변화만 잘 외워 놓으면 문장을 해석하기는 오히려 쉬웠다. 영어처럼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해석할 수도 있는 문장은 없었다. 동사만 보면 누가, 언제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여기에다 명사와 형용사 변화만 알면 어떤 문장이라도 쉽고 정확하게 해석이 가능한 것이 라틴어였다.
물론 그날 수업할 부분에 나오는 새로운 동사의 변화와 단어를 성실하게 공부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것이었다. 영어처럼 대충 두드려 맞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미리 공부하지 않으면 금방 표가 났다. 해병대 출신의 성질머리 많으신 라틴어 신부님이 가만있으실 리 없었다.
“일어나!”
짧고 굵은 신부님의 목소리에 잔뜩 주눅 든 학생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병든 닭처럼 비실비실 일어나 선다.
“어느 교구야?”
라틴어 신부님의 첫 번째 질문은 늘 똑같았다. 물론 어느 교구 신학생인지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은 아니었다. ‘어이쿠, 이 머저리 등신 같은 놈아, 그래 가지고 어떻게 신학교에 왔냐?’라는 말의 축약 의문형이었다.
당시 대구 신학교에는 대구교구, 마산교구, 청주교구, 안동교구 신학생들이 공부했다. 참고로 가톨릭 신학교는 교구별로 가는 학교가 정해져 있다. 자기 마음대로 신학교를 골라 갈 수 없다. 이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OO 교굽니다.”
신학교에 입학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을 그때, 난생처음 부모님의 집을 떠나 이불 보따리 싸 들고 신학교 기숙사로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대구교구 신학생들이야 지척에 집이 있었지만, 그 외 교구 신학생들은 집이 멀었다. 집도 멀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되면서 이미 몸과 마음이 많이 피폐해져 있는 그 불쌍한 신입 신학생에게, 그것도 세속적인 출세를 위해 들어온 신학교도 아니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하느님의 어린양들을 돌보는 사제직에 헌신하겠다는 비장한 각오로 신학교 입학을 결정한 장한 신학생이었다. 그런 신학생에게 라틴어 신부님은 인정머리 없으시게도 너무나 가혹하셨다. 겨우 라틴어 문장 하나 제대로 읽고 해석하지 못했다는 그 죄로.
“너, 그렇게 해 가지고 어떻게 신학교에 왔냐?(한심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너(같은 놈) 공부시킨다고 헌금하는 교구 신자들이 불쌍하다, 불쌍해(진정 신자들이 불쌍해 죽겠다는 말투로).”
“(창밖을 가리키며) 날씨 좋은데 짐 싸는 게 어때?(여차하면 방으로 데리고 가서 짐 싸는 것을 도와줄 것 같은 표정으로)”
“너 어차피 신부 되기 힘들어. 교회에 손해 끼치지 말고 얼른 새길 찾는 게 좋을 거야(진심으로 걱정이 돼서 하는 말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
“너 그렇게 공부해 가지고 2학년 땐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어차피 3학년 못 올라갈 텐데 시간 낭비하지 말고 미리 잘 생각해 봐(여차하면 진지하게 자퇴와 진로 상담을 동시에 해 줄 것 같은 분위기로).”
직접 귀로 들은 이야기 중에 생각나는 것들만 적어 보았다. 눈이 부리부리한 해병대 출신의 신부님은 찬바람이 쌩쌩 도는 목소리로 그렇게 무자비한 펀치를 날렸다. 5분에서 10분 동안. 신부님의 심기가 불편한 날에는 남은 수업을 중단한 채 그 신학생을 완전히 녹다운시켜버렸다. 창피하기도 하고, 분이 나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을 것이 분명한 그 신학생은 복잡 미묘한 표정을 한 채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라틴어 문장 하나 제대로 읽고 해석하지 못하는 것이 앞으로 사제직을 수행하는데 무슨 큰 결격 사유가 된다고 그렇게 무자비한 킥을 날렸을까? 굳이 좋게 해석하자면 ‘다른 신학생들도 열심히 공부하라는 본보기 의미였을까?’ 그것 말고는 도대체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저 형제를 희생제물 삼아 지옥불을 건너뛰게 해 주시옵고....
짐작했겠지만 나와 같이 입학한 동기는 58명이었다. 그들 중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았다. 14명이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군대도 갔다 온 사람들이었다. 대개 나이가 20대 후반이었다. 직장 생활도 좀 해보다가 ‘이게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 출가하듯 신학교에 온 사람들이었다.
나머지 44명은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입 시험을 거쳐 들어온 학생들이었다. 그들 중에는 나처럼 고등학교 때 담배도 피우고 술도 마시고, 뒷골목에서 주먹질도 좀 했던 이른바 까진 학생도 있었지만(나중에 알고 보니 나밖에 없었다) 대부분은 이른바 범생이들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러니까 엄마 손을 잡고 성당에 다니던 대여섯 살 때부터, 애가 똘똘하고 그 부모란 사람들이 제법 많이 배우고, 교양도 있고, 덩달아 돈도 좀 있어 성당에 헌금도 많이 하고, 그러다 보니 본당 신부님이 성당 마당에서 그 애를 만나기만 하면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넌 커서 신학교에 가서 신부가 되어야 한다’라는 덕담을(애 입장에서는 악담이었을 수도 있지만–넌 장가도 가지 말고 신부가 되라고 했으니-엄마와 아빠 입장에서는 분명 덕담이었을 것이다) 했던 그런 친구들이었다.
그런 친구들은 대개 중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공부 잘하고 착한 학생일 가능성이 컸다. 따라서 어릴 때부터 들었던, ‘커서 신학교에 가서 신부가 되어라’라고 했던 그 덕담이 그때도 유효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공부도 못하고, 철도 없고, 못돼 처먹은 학생을 보고 ‘너 신학교 가서 신부님 해라’라고 말하는 가톨릭 신자는 적어도 대한민국에는 없다.
결국 신학교에 올 정도의 학생이라면 그동안 딱히 크게 야단 같은 것을 맞지 않고 유년 시절과 청소년 시절을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물론 나 같은 예외도 있다는 사실은 끝까지 기억하기 바란다. 그래야 이 글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런 학생이, 라틴어 문장 하나 제대로 해석 못 했다고 생전 받아 본 적이 없는 인신공격성 질책을 받았다고 생각해보라. 그것도 동료 신학생들이 보는 가운데 완전히 녹다운될 때까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라틴어 신부님의 인신공격성 질책은 그런 ‘범생이류’의 인간들이 감당하기에는 비현실적일 정도로 강도가 셌다.
쌍욕보다 더 한 인신공격성 질책을 당하는 것은 서 있던 그 불쌍한 신학생이었지만 앉아 있던 다른 신학생들이라고 평화로웠을 리 없다. 범생이류 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보니 몸만 앉아 있었을 뿐 같이 인신공격을 당하고 있는 것 같은 표정들을 하고 있었다.
그 불쌍한 신학생이 ‘엄마도 보고 싶고, 집에도 가고 싶다'는 표정으로 인신공격을 당하고 있는 와중에도 나는 ‘얍샵’했다. 왜? 나는 범생이류가 아니었으니까. 슬쩍슬쩍 시계를 보면서 얼른얼른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도했다. 그 신학생이 야단을 길게 맞으면 맞을수록 내 차례가 돌아와 문장을 읽고 해석하고, 그러다가 잘못해 쌍욕보다 더한 인신공격성 질책을 당할 가능성이 점점 낮아졌기 때문이다. 그 점에 대해 나도 모르게 하느님께 감사하고 있었다. ‘저 형제를 희생 제물 삼아 지옥 불을 건너뛰게 해주시옵고...’라는 기도 문구가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에서 마구 조합되기도 했다.
그날 그 불쌍한 신학생은 선 채로 남은 수업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의 살신성인 같은 희생 덕분에 나를 포함해 제대로 예습을 해 오지 않아 조마조마했을 몇몇 신학생들은 자기 차례를 맞이하지 않아도 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