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성향의 사람과 그럭저럭 지내는 방법은 그러려니 하는 것임을 그때도 알았다. 그것이 겉으로는 평온한 척 지내는 유일한 방법임을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살얼음 같은 상태는 상대가 먼저 도발하면 쉽사리 깨지기 마련이다.
분교에서 1•4•5 학년 아이들 각각 한 명씩을 한 반에서 가르치는 3 복식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수업을 했었다. 3개 학년의 교과서를 동시에 펴고 정신없이 가르쳤다. 2층 건물 교실 12칸을 세명의 아이들과 청소하다 보니 매일매일이 대청소였다. 치워도 치워도 끝이 없는. 넓은 운동장 잡초제거는 퇴근까지 해야 할 무한반복 노동이었고.
이 넓은 공간에 나와 아이들 셋만 있었다면 차라리 수긍하고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은 학교에는 나 외에도 5살 남짓 나이가 많았던 유치원교사 1명, 내 또래 일반직 직원이 1명 더 있었다.
일반직 직원과는 나름 대화도 하고 일도 함께 했다. 문제는 다른 1명의 유치원 교사였다. 유아들이 쓰는 교실 외에는 그 어떤 일도 돕지 않았다. 내가 마셔야 할 우유는 자기 아들 입으로 넣기 일쑤였고 학교 전화는 집전화처럼 사작으로 써서 전화요금이 4만 원에 육박하게 만들었다.(정확히 이전 요금의 두 배가 나왔다.). 분교 예산을 관리하는 나로서는 적잖이 거슬렸다.
"난 교실안에 있는 유아용 변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쓰지도 않는 여자화장실 청소는 못하겠어요."
더 말을 섞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에 세 명의 아이들과 남자화장실 & 여자화장실을 모두 청소했다.(이 분이 여자 화장실 쓰다가 내 눈에 띈 게 한두 번이 아니었음에도)
장학지도랍시고 장학사가 오는 날에는 넥타이를 셔츠 주머니에 꼽고 과일을 씻고 깎아 접대 준비를 홀로 해야 했다. 장학사가 교문을 벗어나기 무섭게 접대용으로 준비했던 과일을 이 교사께서 웃으면서 먹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올라 할 말을 잃었다.
'그러려니...'
이게 내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었다. 그렇게 참으며 버티는데 본교 교감이 잠깐 들어오란다. 교감왈 왜 OO교사가 분교생활이 힘들다고 하냐고 따지듯 묻는다.
'유치원교사? 교감? 둘 중 어느 쪽 정신이 나간 걸까?' 싶었다.
결국 참아왔던 인내심에 금이 갔다. 허나 이제껏 있어왔던 일을 하나하나 까발리자니 내가 저 여자와 같은 레밸로 추락하지 싶어 딱 한마디만 했다.
"저도 이제부터 제대로 한번 터트릴까요?"
본교 유치원에서도 이 작자는 혀를 내두르는 사람이었고 교감도 모르지 않았다. 난 조금 별날 것이라고는 각오했으나 내가 감당할 범주를 넘어설 줄은 미처 몰았다.
그날 이후로 이 사안에 대한 어떤 언급도 상급자들로부터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난 달라져 있었다. 그 교사와 형식적으로 주고받던 인사도 끊었다. 급식으로 나오는 우유는 내가 마시지 않으면 보란 듯이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무선 전화기가 분교 교무실 책상에 없으면 전원코드를 뽑아버렸다.(무선 전화기는 전원이 차단되면 작동하지 않는다.)
그리고 알았다. 내 아량은 간장종지 사이즈란 사실을. 살다 보면 늘 나와는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이들을 마주할 수밖에 없다. 그냥 아는 사람 정도라면 신경 쓰지 않으나 이런 부류와 일로 얽히게 되면 어찌해야 할지 여전히 막막하다.
아직 이 자를 능가하는 이를 만나지 않아 잘 참으며 지내고 있으나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은 없다. 15년도 넘은 일이지만 아직까지도 해결책을 잘 모르겠다. 세상살이 사람이 제일 어려웠고 앞으로도 어렵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