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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Feb 20. 2024

풀리지 않는 매듭

  심리상담소는 대체로 겨울이 비수기라 시간이 여유롭다. 이번 겨울에는 글쓰기에 빠져 있어서 남는 시간에 글을 쓰거나 책을 읽고 필사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지만, 작년 겨울까지만 해도 몇 해 동안은 뜨개질에 빠져있었다. 추운 계절 따뜻하고 보드라운 털실을 만지는 촉감이 좋아서, 다른 계절보다 유독 겨울에 뜨개질을 시작하게 되기도 한다. 손재주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어서 뜨려고 했던 것을 완성하고 나면 흥미는 금방 떨어진다. 그래도 매해 겨울이 돌아올 무렵부터는 다시금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에 그간 몇 가지 작품을 떴다. 가장 뜨기 쉽다는 목도리부터 시작해서, 무릎을 모두 덮고도 남을 만한 포근한 담요나 컵 받침대, 모자 따위를.  


  뜨개질을 하다보면 처음에는 집중해서 시작하게 되지만, 반복적인 작업을 계속 하는 까닭에 집중력이 이내 떨어지기 일쑤다. 그럴 땐 이따금씩 한 코를 빼먹는다던지 두 코를 한꺼번에 떠버리는 실수를 하고야 만다. 바로 알아차리면 참 다행이지만, 한 단이나 몇 단을 지나치고 나서야 알아차리기도 한다. 안타깝지만 그동안 떠 온 얼마간의 부분을 풀고 다시 뜨는 편이 낫다. 실수를 발견했는데도 그 상태로 계속 뜨개질을 한다면 완성했을 때 실수한 부분이 유달리 눈에 띄고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날에는 바늘에 걸려있는 코가 빠지지 않도록 신경 쓰면서 뜨개질을 하고 있었는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실을 당겨도 잘 당겨지지 않기에 실타래를 살펴보니 어느 순간부터 엉키고 있었던 것이다. 뜨던 것을 멈추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갔다. 하지만 그럴수록 털실은 더욱 엉킬 뿐이었다. 인내심을 발휘해야 할 때였다. 바늘은 내려두고 엉켜 있는 털실을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다 풀어갈 때쯤, 결국 털실의 한 중간에 매듭이 생기고야 말았다. 손톱으로 그 매듭 사이에 틈을 내려고도 하고, 바늘을 이용해보기도 했는데 매듭은 어느새 꽁꽁 묶여 풀리지 않았다. 엉켜진 실타래와 매듭을 풀기 위해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였는데도 매듭은 결국 풀리지 않았다. 고작 작은 매듭 때문에 뜨개질을 하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져 버렸다. 결국 상자 안에 털실과 바늘, 뜨던 편물을 담아둔 채 수납장 한 편에 밀어 넣어 두었다. 


  그러고 몇 주 정도 지났을까. 또다시 심심해진 나는 그 상자를 다시 열어보게 되었다. 매듭을 보니 한동안 실랑이를 벌였던 시간이 떠올라 한숨이 나왔다. 지금 다시 매듭을 풀어보려 한들 풀리지 않을 게 분명했다. 다시 상자를 닫아둘까 생각했지만, 무료했고 딱히 할 일도 없었기에 뜨개질이라는 그 반복적인 행위라도 하고 싶었다. 매듭 때문에 완성품이 마음에 안들 수도 있겠지만, 완성품에 대한 기대는 내려놓고 그저 뜨개질을 하고 싶었던 거다. 풀리지 않는 매듭을 그대로 둔 채 뜨개질을 다시 시작해나갔다. 그런데 어느 순간 살펴보니, 계속 거슬리기만 했던 그 매듭이 편물 사이에 숨겨져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눈에 보기에는 어디에 매듭이 있었는지 그 흔적조차 찾기가 어려웠다. 뜨개질 작품 전체를 망쳐버린 것만 같았던 매듭이, 한동안 뜨개질을 중단하게 만들었던 그 매듭이 사실은 풀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다. 


  약간은 허무하기도 하고 또 다행스러운 마음으로 뜨개질을 끝까지 하고나니 마음에 드는 가방이 완성되었다. 매듭이 계속 신경 쓰여 상자 안에만 처박아 두었다면 끝내 만들지 못했을 가방이었다. 가방을 어깨에도 맸다가 손에도 들어보며 기쁜 마음을 만끽하려는데, 문득 우리 삶도 이 뜨개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자면, 해결할 수 없는 고통에 온갖 마음을 쏟다보면 진이 빠져, 현재 삶에서 해야 하는 것들을 놓칠 수 있다.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내 삶은 계속되고 있으며, 그것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할 텐데 말이다. 그렇기에 어떨 땐 엉켜있는 실타래를 푸는 정도까지만 애를 쓰고 풀리지 않은 매듭은 그냥 둔 채 삶을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면 그 고통은 어느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를 테니까. 마치 편물 속에 감추었던 매듭처럼.



  이혼 후 좌절하고 힘들었던 마음을 가진 채로 내 삶을 살아나갔다. 고통스러운 마음을 돌보는 것과 동시에,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하는 일들을 함께 해나갔다. 때로는 벅차기도 하여 쉬어가야 할 때도 있었지만, 종국엔 내 삶이 만족스러워졌다. 고통도 사라지고 말았다. 그 이야기를, 그리고 혼자서도 잘 사는 이야기를 이 책에서 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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