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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설 Feb 23. 2024

기울어진 저울



  "숲 속에 앉아 새 소리를 듣고, 초록색 나무들과 파란 하늘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어요."

  심리상담 시간, 일주일 만에 만난 그녀는 혼자 캠핑을 다녀왔다고 했다. 딱히 하고 싶은 게 없다며 무력감을 호소하던 이전과는 달리, 얼굴에 한층 생기가 돋아 있었다. 그녀가 바라본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나도 그런 곳에 가고 싶어졌다.



  가족들은 몇 년 전부터 캠핑에 다니곤 했다. 그러나 나는 무엇하러 고생스럽게 캠핑을 가냐며 동행하지 않았다. 노동은 노동대로 하면서, 허리 배겨가며 잠을 자야하고, 화장실도 불편한데 굳이 왜 가냐고 했다. 자연이 좋다면 숙소를 잡고 돌아다니거나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게 더 좋은 선택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캠핑 이야기를 들으니 캠핑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여럿이서 왁자지껄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자연 속에서 어떤 방해도 없이 홀로 있는 시간이 너무나 좋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반려견과 둘이 살기 시작한 이후로 여행이 어려워졌기 때문에 여행이 고픈 상태이기도 했다. 캠핑 유튜버 영상을 보니 그들은 반려견과 함께 캠핑을 다니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여행을 향한 갈증도 달랠 수 있을 것 같았다.


  캠핑 장비들을 찾아보며 구매 버튼을 누르려는 충동을 참고, 우선 캠핑을 경험해보기로 했다. 가족들의 캠핑 장비로 엄마와 둘이 캠핑을 갔다. 그 당시 나는 생산적인 무언가를 하고 있지 않은 시간이 무척이나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졌었다. 그런데 캠핑을 가니 무언가를 더 채워야 할 것 같았던 일상과는 달리, 가만히만 있어도 충분히 좋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서 멍을 때려도 마음이 선선해졌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자연 속에서의 평화로운 시간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첫 캠핑 후, 예상대로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이 충만해졌다. 일상을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의욕마저 샘솟았다.


  한동안 상담센터 이전 준비와 인테리어 공사로 매우 정신없고 바쁜 시간들을 보냈다. 자연 속 여유로운 시간이 그리워 짬을 내서 공원을 산책하기도 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매일 같이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있고, 돌발 상황도 발생하면서 계속해서 긴장한 상태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렇게 이사까지 모두 마친 주말, 나와 반려견 둘만 캠핑을 떠났다.



  캠핑장에 도착해 텐트를 치고 그 앞에 의자와 테이블을 펼쳐 놓고 앉아 있으니 바쁘고 마음 졸였던 시간들은 어느새 머나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지금, 여기에는 나만 존재할 뿐이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푸르른 하늘과 숲을 바라보고, 반려견을 품에 안고 있으니 그렇게 평화로울 수가 없었다. 방해하는 것 없이 한껏 나를 품어주는 자연 속에 있는 경험, 바람이 나뭇잎에 스치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 새와 풀벌레 소리에 잠을 깨는 경험. 이번에도 또다시 큰 활력이 생겼다. 지친 마음은 사라지고 좋아하는 일을 더 잘해볼 의욕이 생겼다.


  캠핑의 즐거움과 충만함을 한껏 느끼게 되니, 점점 캠핑에 빠져들고 말았다. 한 달 동안 무려 세 번이나 캠핑을 떠났다. 갈 때마다 캠핑 장비가 몇 개씩 늘어나서 차 트렁크가 꽉 차고 넘치기 시작했다. 더 큰 문제는 평일에 시간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휴일에 하지 못한 빨래나 청소, 장보기와 같은 집안일을 주중에 해야 했고, 또 다음 캠핑도 준비해야 했다. 업무에는 지장이 없었지만, 일을 더 잘하기 위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졌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늘 바랐지만, 글쓰기는커녕 책을 읽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캠핑 중에 책을 읽거나 글을 써보려고도 했지만, 집에서만큼 오랜 시간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사람이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균형'이라고 생각해 왔다. 일과 휴식, 직장과 가정, 타인과 나. 언제나 균형을 맞추는 게 필요한데, 그 균형을 오래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이를 테면 이런 거다. 일을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하다 보면 어느새 일만 하고 있게 되고, 지쳐서 쉬다 보면 어느새 놀고만 있다. 캠핑이 좋아서 열심히 다니다보니 어느새 일상에 지장이 생기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타인에게 너무 맞추려 하면 나의 감정이나 욕구는 무시하게 된다. 내가 원하는 대로만 하다 보면, 타인을 배려하지 않게 된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마치 양팔 저울 위를 계속해서 오가며 빼고 더하는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두 가지로 '일'과 '사랑'을 꼽았고, 훗날 여기에 '놀이(여가)'도 추가했다. 일과 사랑, 놀이라... 내 저울이 수평을 유지하는 게 이다지도 어렵다니. 당신은 어떤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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