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팔트로 된 횡단보도에서 흰색만 밟고 건너는 놀이는 놀랍게도 나만 해본 놀이가 아니다. 다 같이 하는 놀이도 아니고, TV나 인터넷에 퍼진 적도 없지만 나중에 얘기해 보면 다들 경험이 있다. 이 놀이에서 참가자인 ‘나’는 횡단보도의 검은색 부분은 밟으면 안 되고 흰색 부분만 밟아야 한다. 그렇게 가다 보면 언젠가는 검은색을 밟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괜찮다. 그때는 숨을 참으면 된다. 이 놀이에는 숨을 참는 동안에는 검은색을 밟아도 된다는 룰이 숨겨져 있다. 동심의 보편성에서 우러나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도시 지역 아이들의 소소한 이 놀이는 자연스럽게 시작했다가 중학생만 돼도 자연스레 하지 않게 된다. 그런 놀이는 어린 아이나 하는 거지 다 큰 어른은 당연히 하지 않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는 서른이 넘어서도 그와 비슷한 놀이를 하고 있다. 요즘 보도블록은 회색으로 된 사각형블록들 사이사이에 검은색 사각형과 흰색 사각형 블록이 마치 식빵 사이에 들어 있는 건포도처럼 하나씩 들어있다. 그 위에서 나는 회색 사각형 사이를 걸어가다가 흰색 블록을 밟았다면 그다음에는 검은색 블록을 밟아야 하고, 검은색 블록을 밟았다면 다음에는 흰색 블록을 밟아야 한다. 여기서 회색 블록은 아무리 밟아도 상관이 없다. 흰색 블록이나 검은색 블록을 연속으로 두 번만 밟지 않으면 된다. 나는 이런 말도 되지 않는 놀이를 서른이 넘어서도 하고 있다. 대신 성인이기 때문에 실제로 가서 밟지는 않고 눈으로만 따라간다. 가끔 흰색 블록 다음에 흰색 블록만 보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괜찮다. 그럴 경우에는 그다음에 검은 블록을 두 번 연속으로 밟으면 된다. 참가자를 구제해 주는 이 룰은 흰색만 밟는 놀이에서 숨을 참는 룰과 유사하다.
어린애들이나 하는 놀이를 아직까지도 즐기고 있다는 건 어떻게 보면 부끄러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얘기를 누군가에게 꺼낸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용기를 내서 나만의 하찮은 부끄러움을 얘기했을 때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자신만의 동심이 떠올랐다면, 그리고 그 동심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위안을 얻는다면, 나의 부끄러움 따위 아무렇지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