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 / 쑥 캐는 재미
지천에 널려있는 쑥을 보아도 감흥이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백설기는 먹어도 쑥떡은 좋아하지 않았다. 그 짙은 쑥색만 보아도 혀끝이 쓰다. 추석에 빚는 송편에도 쑥을 넣는 할머니 때문에 송편에도 영 손을 대지 않았다.
내 시골 동네에는 쑥이 많았다. 밭두렁에도, 논두렁에도 봄이 되면 어디서나 쑥이 돋았다. 그 쑥을 나는 단 한 번도 캐 본 적이 없다.
친한 동네 언니는 봄이 되면 쑥을 뜯으러 간다. 나야 시골 사람이라 쑥 캐는 걸 알지만, 서울 사람이 쑥을 뜯는다니! 몇 년 째 내게 쑥을 캐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지만,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먹지도 않는 쑥은 캐서 뭐하냐며.
우리 가족과 언니네 가족이 남편 외삼촌의 강원도 숲속 땅으로 캠핑을 하러 간다고 얘기하자 어머님은 쑥, 민들레, 냉이, 두릅을 따다 먹으라고 신신당부했다. '어머님 저 그런거 별로 안좋아해요~'라고 대답할 수는 없어 일단 "네~ 어머님"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래도 그것들은 따 먹을 생각은 별로 없었다.
두 가족의 식사 메뉴를 정하려는데 언니는 쑥을 캐다 튀겨 먹잔다. 엄마는 쑥으로 꼭 떡을 해줬는데, 기름에 튀겨 먹는다고? 튀김이니 먹을만하지 싶다.
둘째날 아침, 설거지를 마친 언니는 바구니와 칼을 챙겨서 아이들과 쑥을 캐기 시작했다. 첨엔 마구잡이로 뜯던 아이들도 점점 요령이 생겨 쓸만하게 쑥을 뜯었다. 앉아서 지켜만 보던 나도 덩달아 쑥을 캤다. 다들 한동안 말없이 쑥을 캤다.
튀김가루에 맥주를 넣어 갠 뒤 깨끗하게 씻은 쑥을 넣어 튀김 옷을 입힌다. 튀김냄비까지 산 언니 덕에 160도로 알맞게 뜨거워진 기름에 하얀 옷을 입을 쑥을 흔들어 넣는다.
바삭하게 튀겨진 쑥튀김은 건져 놓기가 무섭게 팔려 나갔다. 짙은 녹색의 쑥이 노릇하게 튀겨지니 보기에도 좋았다. 제일 먼저 튀긴 것은 언니 하나, 나 하나 나눠 먹었다. 바사삭 베어 무는 쑥튀김에서는 쑥의 향기가 은은하게 났다. 여태 봄의 맛하면 냉이를 넣은 된장찌개 정도만 떠올렸는데 이 쑥튀김에서도 향긋한 봄의 맛이 났다.
둘째 아들은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았고, 첫째 아들도 오며가며 쑥튀김을 집어 먹는다. 언니네 아이들도 하마입을 벌리고 받아 먹는다. 남편은 맥주를 한 캔 땄고, 나는 시원한 콜라를 꺼냈다. 온도가 올라간 기름에 튀긴 가지와 만두 역시 맛이 없을리 없다. 한참을 둘러 앉아 봄을 맛보았다.
쑥을 먹지 않을 때에는 바닥에 돋아난 쑥이 그 옆의 풀과 다르지 않았으나, 맛있게 먹고나니 이제는 혹여 밟을까 발걸음을 조심하게 되었다.
다시 봄이 돌아오면, 언니는 또 내게 쑥을 캐러 가자고 하겠지. 그럼 그때는 군말 없이 따라나서야겠다. 쑥떡은 됐고, 쑥튀김을 해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