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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열 Feb 19. 2019

'썸'과 자존감의 불편한 관계

생각

평소에는 목석같은 문어군. 하지만 그가 '썸'을 탈 때면 혼돈의 문어로 변신하곤 한다.

지난 주말 아는 지인들과 저녁 식사를 하다가 연애 이야기가 나왔다 (치킨을 먹었다). 그중 한 명의 말인 즉, ‘누군가와 을 타게 되면 지나칠 정도로 조급해진다’는 이야기였다. 애매한 관계가 시작되면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하고 그 관계를 서둘러서라도 어떻게 든 정리하고 – 또는 정의 내리고 – 싶어 한다고. 그리고 그에 따는 결과는 “항상 우울하다” (는 한숨 섞인 말과 함께 소주 한잔). 이러한 상황을 몇 번 거치다 보니, ‘나는 매력이 없는 사람인가 보다’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친구 왈, “너는 매력이 없는 게 아니라, 썸을 타면 갑자기 폭주 기관차처럼 상대방한테 돌진해서 문제다” (여기서 부연설명을 덧붙이자면 ‘행동적 돌진’이라기보다는 ‘감정적 돌진’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 그리고 그 돌진하는 마음을 스스로 가누지 못해 서두르게 된다 ). 


이야기를 풀어가다 보면 나를 포함한 그 자리에 앉아있는 지인들 그리고 이야기를 꺼낸 그 자신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다; 그가 최근에 탔던 썸이 어디서부터 탈선된 것인지. 그가 조바심을 가지지 않고 조금 더 천천히 행동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을 것이라 다들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푸념 (소주 한 잔을 더 들이키며) “그게 참 힘들다”. 한 친구는 “다 마음먹기에 달린 거야”라고 말하고, 또 다른 친구는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연애 경험을 더 해서 능숙해져라”라고 조언한다. 


다만 그 ‘심적인 여유’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에 반해서 의도적으로 가지기는 굉장히 어렵다. 더군다나 여유가 없다고 느낄 때에는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한 번쯤 물어보자, 왜 그는 여유가 없을까? 


잠깐, 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이 ‘심적인 여유’를 가진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조금 더 누군가의 관계를 필요 이상으로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 사람 없다고 세상에 만날 사람 없냐’와 같은 마음가짐일까. 아니면 ‘뭐 잘 될 것 같으니 오버해서 서두르지 않아도 되겠다’ 같은 자신감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말들을 반대로 돌려서 말하면, 여유가 없는 모습이란, ‘이 사람밖에 없다!’가 되고 ‘안 될 것 같으니 서둘러서라도 어떻게든 마음을 잡아야 한다!’와 같은 뉘앙스가 되는데, 솔직히 누구라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나가가면 상대방은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재열 씨, 그러면 ‘그럼 잘 될 것 같다!’,라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면 도움이 될까?”라고 다른 사람이 묻는다. 하지만 그 질문에 그는 “헛된 기대를 했다가 너무 실망이 커질까 봐 걱정이 된다”라고 이야기한다. 


앞서 말한 ‘이 사람밖에 없다’, 그리고 ‘아무래도 안 될 것 같다’가 적절한 예일지는 모르겠지만 잠깐 내가 어떠한 물건을 파는 가게 주인이라고 상상해보자. 고객이 물건을 사러 상점에 들어왔는데 – ‘이 사람이 아니면 살 사람이 없다’, 그리고 ‘아무래도 못 팔 것 같으니 어떻게든 서둘러서 이 고객을 잡아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고객 입장에서도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도대체 왜 나에게 이러면서까지 물건을 무리해서 팔려고 하는 걸까’. ‘물건에 문제가 있나?’라는 생각. 이런 상황에 놓이면 우리가 팔려는 물건의 품질을 떠나 의심부터 들게 된다. 


가게 주인이 물건을 못 팔까 봐 조급해하는 행동은 어찌 보면 단순한 이유다. 내가 파는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물건이 고객을 만족시키리라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의미를 그의 썸으로 치환해서 해석해보면, 나 자신 (판매하는 물건)이 상대방(고객)에게 부족한 존재다, 라는 전제를 무의식적으로 깔아 놓고 있다는 뜻이다.


결국 심적 조바심의 근원지는 나 자신에 대한 사랑 자존감의 결여가 아닐까?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려면 나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아마 사실 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내가 나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가? 에 대한 질문을 얼마나 자주 할지 모르겠다.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자존감이 낮아진 상태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첫째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에서 오는 이질감, 감정적 불편함 (emotional discomfort) 때문이고 둘째로 나 자신을 사랑하는 연습을 거의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항상 내담자들과 세션을 마칠 때 ‘자기 자신에게 친절해지는 연습’을 당부한다. 하지만 나에게 친절을 베풀면, 변화 없이 도태될까 두렵다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타인을 도태시키기 위해서 친절을 베푸는 것일까? 우리가 타인에게 친절을 베푸는 이유 중 하나는, 타인을 이해함을 표현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쩌면 친절과 사랑을 통한 이해심을 무조건적인 용서와 방관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오늘 내가, 나를 위해서, 나에게 한 가지 친절한 행동을 하나 할 수 있다면, 그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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